리처드 파인만은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힌다.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남겼지만, 그의 가장 큰 성과는 과학의 대중화. 과학도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의 저서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에서도 알 수 있듯 파인만은 정말 농담도 잘했다고 한다.
“구내식당에 앉아 있는데 어떤 녀석이 어슬렁거리다가 공중에 접시를 던지더라고요. 접시가 공중으로 올라가면서 흔들거리는 게 보였죠. 나는 접시 위에 새긴 코넬대학의 붉은색 상징이 빙글빙글 도는 걸 홀린 사람처럼 한참을 봤어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회전하는 접시의 움직임을 생각하기 시작했죠.”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 장면을 본 파인만은 접시 흔들림의 방정식을 계산했다. 상대성 이론, 전기역학, 양자 전기역학에 파고들었고 전자 궤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했다. 파인만은 양자 전기역학의 규격화에 기여한 공로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젓가락 행진곡. 피아노 잘 치는 친구 옆에서 같이 건반을 두드렸던 기억을 간직한 사람도 적지 않다. 최초의 작곡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설로 굳어진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로 보로딘은 1886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 작품은 아주 우습게 만들어졌다네. 어느 날 딸이 나한테 피아노를 같이 치자고 하지 뭔가. 내가 말했지. 너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잖니? 그런데 딸이 대답하길 ‘아뇨, 할 수 있어요’라는 게 아닌가.”
이후 보로딘은 피아노를 칠 줄 몰랐던 딸과 함께 연주했던 이 곡을 바탕으로 패러프레이즈(Paraphrases)를 작곡한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
과학과 예술은 닮았다. 둘을 관통하는 단어는 창조다. 수많은 과학자가 자신들의 과학적인 생각과 행위를 예술가의 그것과 동일시했다. 아인슈타인은 “오직 직관만이 교감을 통하여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의 성과는 면밀한 의도나 계획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했다. 아르망 트루소는 더 분명하게 결론을 내렸다.
모든 과학은 예술에 닿아 있다. 모든 예술에는 과학적인 측면이 있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이런 점에서 과학자와 예술가는 이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통찰은 느낌과 직관의 영역에서 발생해 동일한 창조적 경로를 거쳐 의식 속에 출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과학자와 예술가를 하나로 묶는 보다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 도대체 그 무기는 무엇일까?
『생각의 탄생』은 이런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선다. 그 무기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단련되며, 끝내는 우리의 삶과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결과(과학적 연구결과, 혹은 예술품)로 이어졌는지 보여준다. 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셸 루트번스타인(이름에서 눈치챘겠지만 둘은 부부다)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위 창조적인 작업을 할 때 과학자나 수학자, 예술가들은 우리가 생각을 위한 도구라고 부르는 공통된 연장을 사용한다. 이 도구들 속에는 정서적 느낌, 시각적 이미지, 몸의 감각, 재현 가능한 패턴, 유추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상상을 동원하는 모든 사람은 이 생각 도구를 가지고 얻어낸 주관적인 통찰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공식적인 언어로 변환하는 방법을 배운다.
환상과 실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
저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과학자와 예술가는 환상(상상)과 실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다. 예술가의 작업을 들여다보자. 사진, 드로잉, 글은 잉크로 얼룩져 있는 종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실재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이러한 사물이 상징하는 감각적, 정서적, 경험적인 느낌을 재창조하는 기술에 달려 있다.
화가 폴 호건은 이렇게 설명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과학자의 작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생각의 도구다.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인 결과를 낸 사람들은 이런 환상과 실재를 결합하기 위해 생각의 도구를 이용했다. 저자들은 이러한 결론을 바탕으로 13가지 생각의 도구를 제시한다.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다.
이 13가지 생각의 도구는 하나로 모인다. 바로 상상력이다. 환상과 실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이 상상력의 유무(有無), 혹은 많고 적음이다. 생각해 보라. 지구 밖으로 단 한 뼘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지구의 크기를 재고(그것도 나무막대 하나로),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측정하는 일이 어찌 상상력 없이 가능하겠는가. 눈으로 보이지 않고,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던 원자와 전자의 움직임을 파악해 공식까지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상상이 사실보다 더 진실하다”?
피카소는 상상이 사실보다 진실하다고 믿었던 예술가 중의 한 명이다. “예술은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말”이라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피카소는 황소 연작물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황소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사실적인 그림이 오히려 진짜 황소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조금씩 황소를 지우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황소의 몸을 이루는 대부분의 요소가 사라지고 선만 남거나 머리만 남았다. 그래도 우리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황소라는 사실을 안다. 오히려 황소의 본질에 접근한다. 13가지 생각의 도구 가운데 ‘추상화’가 가져온 힘이다.
전동기와 발전기를 발명한 니콜라 테슬라는 ‘형상화’에 익숙한 과학자였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머릿속에서 즉시 그것의 기본 모양을 상상으로 그려본다. 상상 속에서 그것의 구조를 바꿔보기도 하고 한번 작동을 시켜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실물이나 형체 없이 그 모든 것을 상상 속에서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리처드 파인만이 회전하는 접시를 통해 양자 전기역학 방정식의 아이디어를 얻고, 보로딘이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딸의 연주에서 젓가락 행진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힘은 놀이다. 파인만은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있는 짓이 쓸데없이 느껴졌지만 결국 그게 중요한 것이 되었다. 내게 노벨상을 안겨준 연구성과라는 것도 알고 보면 춤추는 접시와 함께 놀았던 그 시절에서부터 시작된 거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한 13가지 생각의 도구가 절대적이라고 보진 않는다. 사실 패턴인식과 패턴 형성, 몸으로 생각하기와 감정 이입, 차원적 사고와 모형 만들기는 구분이 모호한 측면도 있다. 그렇더라도 상상력과 창조의 원동력이 될 13가지 생각 도구가 쓸모없어지진 않는다.
사무실 책상에 이 책을 꽂아놓고 있다. 가끔 일이 턱까지 차오르거나 머리가 꽉 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할 때 아무 페이지나 잡히는 대로 펼쳐본다. 그렇다고 없던 상상력과 창조적 사고가 샘물처럼 솟아나진 않는다. 다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만나는 이런 문구는 적지 않은 위안이 된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아무 힘이 없다. 그림이 나에게 할 일을 지시한다. (화가 조안 미첼)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리처드 파인만)
원문: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