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전작입니다. 미국에서 2011년 개봉했습니다만 한국에선 아직도 개봉 예정이 없습니다.
영화는 2시간 3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갖고 있을 정도로 꽤 깁니다. 하지만 감독이 원래 만든 영화는 2시간 45분짜리였다고 합니다. 2007년에 이미 완성된 영화를 영화사가 너무 길어서 절대 안 된다며 거부했고 이에 마틴 스콜세지와 편집감독 델마 슌메이커가 중재에 나서 영화를 150분으로 재편집한 끝에 2011년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가 공개된 후 감독은 185분짜리 감독판을 내놓기도 했지요. 개인적으로는 2시간 30분도 조금 긴 느낌이었습니다. 중간에 더 잘라도 됐을 장면들이 보였거든요. 특히 고속촬영으로 거리 이미지가 반복되는데 의도는 알겠으나 너무 길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는 매우 훌륭합니다.
이 영화는 최근 본 영화들 중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영화가 일종의 부조리로 가득 차 있어서입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처럼 이 영화 역시 의도하지 않은 비극적 죽음으로 이야기가 발화합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죽음 이후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면, <마가렛>은 죽음의 원인을 놓고 자기 뜻대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리사 코헨이라는 10대 소녀입니다. 아주 오래 전 <피아노>(1993)의 꼬마 소녀, 요즘엔 <엑스맨>의 로그 캐릭터로 더 잘 알려진 안나 파퀸이 연기합니다. 그녀는 어느날 교통사고의 목격자가 됩니다. 버스에 치인 여성 모니카(앨리슨 자니)가 자신의 무릎 위에 누워 죽어가면서 딸 이름을 부르는데 그 이름 역시 리사입니다. 경찰이 찾아와 유일한 목격자인 리사에게 당시 상황을 묻습니다.
“신호등이 무슨 색이었나요? 빨간색? 초록색?”
리사는 그 순간 버스 기사 제랄드(마크 러팔로)와 눈이 마주칩니다. 자신의 증언에 따라 버스 기사를 해고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버스 기사를 위해 초록색이었다고 거짓 증언을 해줍니다.
이 사고의 최초 원인 제공자는 리사 그 자신입니다. 리사가 버스 문을 두드리며 기사에게 자꾸만 말을 시키려 했거든요. 버스 기사가 쓰고 있던 카우보이 모자가 탐이 났기 때문입니다. 버스 기사는 전방 대신 자신에게 자꾸 말을 거는 10대 소녀에게 한눈을 팔다가 결국 사고를 낸 것입니다.
버스 기사는 살인의 의도가 없었고, 리사 역시 버스 기사가 똑바로 운전 못하게 만들 의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 겹쳐 애꿎은 한 여성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리사는 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처음 경찰에게 거짓 진술한 것에 대해 사망자에게 죄책감에 시달리고, 급기야 버스 기사를 직접 찾아가기까지 합니다. 거기서 발뺌하는 버스 기사를 보면서 악의를 품습니다. 애초에 감싸줄 필요가 없는 사람을 감싸줬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녀는 자신의 분을 풀기 위해 이 남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리사는 부조리한 교통 사고 사건을 세상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으로 재단하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를 유태인 학살, 아랍인 테러리스트 등에 비유합니다.
“신은 아이들이 파리를 다루듯이 우리 인간을 다루고 있어. 신은 인간을 장난 삼아 죽이지.”
영화 속 교사는 셰익스피어의 이 문장을 던집니다. 그러자 수업 시간에 난상토론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리사는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겐 분명하게 보이는 옳고 그름이 상대적일 수 있다는 다른 학생과 교사의 주장에 리사는 수업 시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이후 리사는 친구의 남자친구를 빼앗으려 하고, 자신의 잘못을 눈 감아준 선생(맷 데이먼)이 쿨하다며 유혹합니다. 그리고 버스 기사를 해고시키기 위해 죽은 모니카의 친구 에밀리(제니 벌린)와 모니카의 유일한 혈육인 사촌과 함께 법정 소송을 제기합니다.
엄마와의 관계가 멀어질 정도로 버스 기사 해고에 열중합니다. 하지만 사촌은 버스회사로부터 합의금을 받아내는 것 외에 기사 해고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에 리사는 다시 자신이 믿는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게 됐다고 느껴 좌절합니다.
자신이 믿는 것만 보는 리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를 삽입합니다. 리사의 엄마 조안(J. 스미스 카메론)은 라몽(장 르노)과 데이트할 때 이 오페라를 봅니다.
오페라가 낯설었던 조안은 이 오페라에 감동하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선 라몽 대신 딸 리사와 함께 이 오페라를 봅니다. 이 영화의 라스트 신은 독특한데요, ‘호프만의 이야기’ 내용을 아시는 분은 리사라는 아이와 이 오페라가 어떻게 겹치는지 짐작이 가능할 것입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작곡가 오펜바흐가 유작으로 남긴 대작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오페라는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액자구성으로 프롤로그, 3막, 에필로그로 나뉘어집니다.
3막에는 호프만이라는 시인인 계략에 빠져 사랑을 잃는 세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1막에서 호프만은 인형 올림피아와 사랑에 빠졌다가 인형이 부서지게 되고, 2막에서 호프만은 노래할 수 없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여인을 잃습니다. 3막에서 호프만은 자신의 그림자와 사랑을 맞바꾸지만 여자는 도망가버립니다.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는 사랑의 욕망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잃은 남자를 노래하는데,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다가 세상에게 버림받은 이야기는 리사의 마음을 울립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펑펑 우는 모녀의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영화의 제목 ‘마가렛’은 극중 문학교사(매튜 브로데릭)가 낭독하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시인 제라드 만리 홉킨스의 시 ‘Spring and Fall: to a young child’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마가렛, 너 울고 있니?
잎새 지는 황금숲을 보았구나.
너는 사람들이 아끼는 물건들처럼 잎새를
신선한 마음으로 아낄 수 있지 않니?
아! 가슴이 늙어갈수록
그런 것에 무심해진단다.
그러다 보면 한숨조차 없어져.
희미한 숲이 온통 떨어지는 낙엽부스러기에 묻혀 있어도
너는 여전히 울면서 이유를 알고 싶어하겠지.
아가, 무엇이라 이름지어도 상관없어.
슬픔의 원천은 다 같단다.
가슴이 듣고, 혼이 짐작하는 것들이
입이나 머리로 표현된 적은 없단다.
슬픔의 원천은 인간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네가 슬퍼하는 것은 바로 그런 운명의 마가렛이란다.”
리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열정적이었지만 그 열정은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힌 세상에 의해 꺾입니다. 시 속 마가렛처럼 리사 역시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 순간 순응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를 낭독한 문학교사는 시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편협함으로 가득 찬 캐릭터입니다.
리사가 학교에서 만나는 교사들은 이처럼 편협하거나, 편협한 리사를 배격하거나, 맷 데이먼처럼 이중적입니다. 리사의 엄마는 연극에 빠져 사는 캐릭터이고, 리사의 아빠는 리사와 자주 통화하지만 정작 리사가 필요로 할 때 함께 사는 것은 거부합니다.
어쩌면 리사가 이토록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보게 된 것이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이 모든 상황들이 겹쳐져 만들어진 우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이해 관계들을 묶은 것이 운명으로 포장되고 있는지도요.
거리에는 수많은 리사들이 돌아다닐테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살아갑니다. 10대 소녀를 통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영화 <마가렛>이었습니다.
마가렛 ★★★★
믿는대로 보는 소녀의 욕망과 편견.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원문: 유창의 무비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