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기업은 바쁘다. 혼자서 온갖 일을 처리해야 하다 보니 늘 바쁘다. 그러다가도 문득 걱정될 때가 있다. 이렇게 일에 치여 지내다가 역량이 딸려 도태되면 어쩌나? 그래서 따로 독서도 하고, 대학원에도 등록하고, 전문가 모임에도 나가면서 자기계발에 힘써보고자 한다. 그러나, 인사팀에서 관리해주지 않는 자기계발 계획을 혼자서 수행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많다(물론 자기 회사 인사팀의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대단히 기대하는 사람도 없다).
자기계발을 소홀히 할 수도 없다. 1인기업의 유일한 자산은 자신뿐이다. 일에 치여 자신을 내버려 두면 언젠가 무시무시한 시간의 위력, 스스로의 감가상각을 절감하게 된다. 사람에게 감가상각 어쩌고 하는 비유를 들이대니까 듣기 거북하다는 의견이 없진 않지만 사람을 물건에 비유함으로써 감정을 배제하고 냉철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사람의 미래 역량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 바가 있다.
Future Competence = Present Competence ⅹ(1+SEI)n
이때 S는 학습(Study), E는 경험(Experience), I는 몰입도(Immersion)다. 즉 미래 역량은 현재 역량을 원금으로 하고 학습, 경험, 몰입도를 이자율로 쳐서 구한 미래가치다. 이 미래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감가상각이라고 표현했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학습이 필요하다. 조직에 속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지만 이런 공식은 1인기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조직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환경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서 쌓는 학습에 비해,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내면서 역량도 쌓아야 하는 1인기업의 학습은 접근법이 좀 다르다.
1인기업으로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생각보다 자기계발에 쏟아부을 시간이 많지 않다. 시간이라기보다 심리적 여유가 많지 않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그렇다고 자기계발을 게을리하면 10년차 1인기업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한 내 해결책은 비교적 단순하다. 바로 120%를 수주하는 것이다.
120%를 수주하라
나는 컨설팅, 연구용역, 강의, 기고 등을 ‘수주’해서 수입을 창출하는데, 매번 내가 가진 역량보다 조금 더 큰 사업을 수주하려고 노력한다. 일이 내 역량보다 크다는 얘기는 과거에 해보지 않은 일이나 전보다 난이도가 높은 일을 의미한다. 단순하게 일의 양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많기만 한 일은 체력을 소진하면서 정신력을 강화할 뿐이다. 또 ‘조금 더 큰’ 정도를 대략 120%라 표현하는데, 일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 학습의 정도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 하는 정도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혁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왜 120%냐고? 자기 역량의 100%에 맞는 일을 수주하면 딱 그만큼만 일하게 된다. 일은 편하고 성과도 안정적으로 나오지만, 장래 발전할 가능성을 스스로 좁히는 꼴이다. 세상에는 ‘자연성장률’이 있다. 경제학에서 쓰는 ‘경제성장률이 노동(인구)증가율과 같아져서 완전고용을 보장하는 성장률’ 개념과는 좀 다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 발전하는 것이 자연적인 대부분의 분야에 적용된다. 그러니 현재 수준에서 만족하고 그것만 지키려 하면 시간이 갈수록 뒤처진다. 또 자연성장률만큼만 성장하면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남들도 다 그만큼은 성장하기 때문에 전체적 성장률이 그렇게 정해진다. 따라서 자연성장률 이상을 성장해야 비로소 앞서나갈 수 있다. (자연성장률만큼만 노력해도 되는 사람은 현재 최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이겠지…)
무작정 자기 역량의 200%를 목표로 한다면? 그런 일은 수주하기도 힘들겠지만, 어쩌다가 수주를 해도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오히려 일을 망쳐서 고객의 신뢰를 잃고 자신감만 잃기에 십상이다. 이건 의지가 아니라 헛된 욕심이고 만용이다.
아무도 자연성장률이 정확하게 얼마인지 모른다. 난 자연성장률을 10%로 가정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엑셀에서 어떤 투자의 내부수익률(IRR, Internal Rate of Return)을 계산할 때 함수에 추정 내부수익률을 넣어줘야 하는데 아무것도 넣지 않으면 기본값이 10%여서 그렇게 가정했다. 그건 또 누가 그렇게 정했냐고 물으면 나도 확실한 답을 모른다. 1990년대 초 엑셀이 처음 출시되고 그 시기 미국 내에서 국채수익률보다는 높은 우량 상업 프로젝트 수익률이 10% 수준이 아니었나 추측해 볼 뿐이다. 자연성장률이 10%라면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목표치는 그 두 배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 20%가 된다. 그래서 120%다.
새로운 콘텐츠만큼 성장하는 비즈니스 모델
구체적으로 어떻게 120%인 줄 알까? 가장 간단한 예를 들자면, 강의 섭외가 들어와서 강의내용을 확인해 봤을 때 기존에 내가 보유한 강의자료에 새롭게 만들어 넣어야 하는 부분이 20% 정도로 판단되면 수주한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보통 시간당 15장 정도 되니까 3시간짜리 강의 의뢰가 오면 38장은 기존 자료를 활용하고 7장 정도는 새로 만들어 덧붙여 사용한다는 얘기다.
기존자료 38장은 콘텐츠의 발전은 없이 숙련도만 느는 부분이고, 7장을 새로 만들면서 내 콘텐츠가 발전한다. 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이 1인지식기업에게는 R&D(Research & Development) 과정이다. 콘텐츠 창출이야말로 내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다.
내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자면 연구를 통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글을 쓰고, 글이 유통되면서 지명도가 올라가 강의 의뢰가 들어오고, 강의를 통해 컨설턴트로서의 역량을 직접 확인한 고객이 자문 업무를 맡겨오는 구조다.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수입은 일의 양과 반비례한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과정은 무척 품이 많이 들지만 그것만으로는 수입이 거의 없다. 정부 기관 연구용역 정도가 연구와 글쓰기 사이에 있는데, 수입을 따져보면 ‘내가 이러려고 독립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고 괴로운’ 수준이다. 의미 있는 수입은 주로 강의나 자문에서 발생한다. 그렇다고 해서 콘텐츠 생산을 게을리하거나 저품질 콘텐츠로 때우려고 하면? 조만간 개발마케팅연구소의 폐업 소식을 올려야 할 것이다. 콘텐츠가 있어야 글도 쓰고 강의도 한다.
그럼 콘텐츠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드나? 글, 강의, 자문과 달리 콘텐츠는 따로 주문하는 경우가 없다. 대신 주문받은 글, 강의, 자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따라오고, 그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정련하면 콘텐츠가 된다. 콘텐츠를 만들어야 글, 강의, 자문이 되고 또 글, 강의, 자문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콘텐츠가 생산된다. 마치 기업 연구소에서 개발한 제품을 공장에서 양산하고 공장 생산이나 판매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연구소에 의뢰해 해결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1인기업은 이 과정을 혼자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콘텐츠 생산은 개발마케팅연구소 안에 있는 연구소 격이다. 1인지식기업은 모든 산업을 통틀어 가장 지식집약적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꾸준히 지식(콘텐츠)을 생산해내야 하고, 그 실천 방법은 바로 어느 정도 이상 새로운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사업을 수주하는 것이다.
새로운 분야로 나아가라, 단 조금씩
연구 분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아는 분야만 파서는 발전이 없다. 그렇다고 전혀 새로운 분야를 시도하는 것도 무모하다. 결론만 말하자면 조금씩 조금씩 게걸음 하듯 옆으로 늘려가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원조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민간기업에서 그 일을 했기에 원조 업계(?)에서는 나를 ‘산업’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산업’이 겹친다는 이유로 ‘산업기술’ 원조 쪽으로 불려 다녔다. ‘기술’은 거의 모르는데 말이다. 너무 모르니 나름 공부하다가 ‘적정기술’ 관련된 글도 몇 편 쓰고 발표했다. 그러다가 ‘과학기술’ 원조를 취급하는 분을 만나 ‘기술’이 겹치니까 그쪽으로도 불려 다닌다. 자연스레 과학 분야에도 관심이 생기고 공부하게 된다. 아니, 최소한 고등학교 때처럼 과학이라고 하면 무조건 고개를 돌리지는 않게 된다.
물론 ‘어쩌다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직장에서 원조차관을 이용해 사업 개발하는 법을 배웠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해외사업개발’ 조직에서 일했다. 박사과정에서 수업(coursework)을 마칠 때쯤 지도교수님의 배려로 생애 첫 연구용역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기업의 사회적책임(CSR)과 정부 원조를 혼합한 새로운 민관협력 프로그램의 모델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민간기업에서 일했지만 CSR이라는 용어도 잘 모를 정도로 그 분야와는 관련이 없었다. 그냥 공부하면서 연구하면 된다는 지도교수님 말씀만 믿고 참여하게 되었다.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다.
그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실행되고 3년 후 프로그램에 대한 중간평가 용역이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교수님이 나를 불러주셨다. 비교적 새로운 분야라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아는 연구자가 매우 적고, 그 가운데서도 기업 생리까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평가 업무를 잘 몰라 망설였는데 평가는 배워가면서 해도 된다는 말씀에 또 참여했다. 그리고 또 많이 배웠다.
뒤이어 같은 프로그램을 사례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같은 사례로 주요 연구용역 2개에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고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고 이제는 CSR과 원조평가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를 듣는다. 물론 그 중간에 자유로운 형식으로 블로그도 꽤 쓰고 민간기업을 위한 컨설팅에도 참여했지만 결정적인 근거는 역시 권위 있는 교수님들을 모시고 수행한 연구용역과 학위논문이다.
거기다 사람들이 남 일은 맘대로 대충 판단하는 ‘섣부른 일반화’ 성향도 일조한다. 이 바닥에서는 내가 민간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했다고 하면 으레 사회공헌 분야에서 일한 사람인 줄 안다. 사업개발 얘기를 꺼내면 사회공헌 분야에서 일한 사람 치고는 영업이나 사업개발 쪽으로도 관심이 많았을 것(!)으로 판단한다. 한번도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는데도 다들 그쪽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러 이유로 내 박사과정은 7년 반이나 걸렸다. 아마 기업에서부터 지금까지 내 주력 분야인 원조차관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으면 꽤 시간을 단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덕분에 기업을 나와 독립해서 새로운 주력 분야가 생겼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지도교수님을 잘 만난 행운 덕분이다.
지식뿐 아니라 ‘스킬’도 팔 수 있다
가끔은 해오던 일과 아예 달라 보이는 일에 도전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ㅍㅍㅅㅅ가 운영하는 어벤져스쿨에서 ‘2×2 Matrix 만들기‘를 강의한다. 뭐 이런 단순한 걸 다 따로 강의를 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기획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분석적으로 생각하기의 첫걸음이자 가장 많이 활용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인사이트를 끄집어내는 도구이기에 따로 배워둘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왜 2×2 Matrix가 ‘다른’ 일이 아니라 ‘달라 보이는’ 일일까? 내 일이 본질적으로 컨설팅 일이라서 그렇다. 컨설턴트가 컨설팅 툴을 지도하는 것은 군인이 사격을 가르치는 것과 똑같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현업에서 뛰는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생산해 둔 자료가 상당한 양이 되었고, 업무 분야에 관계없이 방법론을 먼저 배울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서 사례를 뽑아 분석한다. 2×2 Matrix로 연애, 결혼, 교육, 직장생활 등을 같이 분석하다 보면 업무에서 부딪히는 문제도 자신 있게 처리할 수 있다.
대학원에서도 남들이 안 하는 강의를 만들었다. ‘개발협력에 마케팅을 더하라’는 우리 연구소의 모토를 구현하는 강의로 제품이나 서비스 마케팅만 봐오던 분들에게는 생뚱맞게 보일지 모르지만 공공마케팅, 소셜마케팅 같은 분야를 공부하면서 업무에 접목시키고자 노력해 온 시간이 있기에 개발협력마케팅이란 강의 역시 한계를 넘어 내 영역을 넓힌다는 관점에서 보면 ‘120% 수주’의 연장선에 있다.
기존에 해오던 일 100%에 새로운 일 20%를 덧붙여 가며, 안정적이되 꾸준히 역량을 개발하는 일. 간단하지만 1인기업에게는 강력한 자기계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개발마케팅연구소는 오늘도 120% 수주를 준비한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