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과제 한 세트
내가 스팀에서 본 일이다. 늙은 게이머 하나가 고객센터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도전 과제 통계를 보여주면서,
“황송하지만 이 달성 메시지가 무효한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고객센터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고객센터 직원은 게이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계정 정보를 입력해 보고
“좋소.”
하고 보여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로그를 받아서 프로필 깊이 집어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직원을 찾아 문의를 보냈다. 폴더 속에 클라이언트를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통계를 내어놓으며,
“이것이 정말 완전 달성 메시지오이까?”
하고 묻는다. 고객센터 직원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과제를 어떻게 치트했어?”
게이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계정을 공유라도 했단 말이냐?”
“공유해도 도전 과제와 세이브는 별도로 설정되는 거 모릅니까? 5년 전 게임을 누가 그렇게나 열심히 할까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게이머는 손을 내밀었다. 고객센터 사람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확인해 주었다. 그는 얼른 받아서 프로필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달성 통계가 줄어들지 않았나 확인해 보는 것이다. 나빠진 눈이 스크린 위로 축하 메시지를 볼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PC방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144Hz 모니터 아래 쪼그리고 앉아서 스팀 클라이언트를 실행해 놓고 달성 메시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스팀 클라이언트를 최소화시켰다. 그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초기화하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치트한 것이 아닙니다. 대리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5년 지난 게임에 관심이나 갖습니까? 커뮤니티에 요즘 언급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이 게임을 아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과제 한 과제 달성하며 스토리 모드를 완료하였습니다.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을 줄여 리들러 트로피 200개를 찾아다녔습니다. 제철소 굴다리 활공을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증강 현실의 기사’를 따냈습니다. 이 100%를 달성하느라고 여덟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과제를 달성했단 말이오? 그 통계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메시지 하나가 보고 싶었습니다.”
‘리들러의 복수’를 끝내고
뒤늦게 게임에 재미를 붙이고 ‘배트맨: 아캄 시티’(이하 ‘아캄 시티’) 플레이를 시작한 게 작년 초여름쯤이었다. ‘배트맨’ 시리즈의 팬이기도 했지만 게임 자체가 워낙 재밌었던 덕분에 스토리 100% 진행까지는 일사천리였다. 많은 이가 분노한 리들러 트로피 역시 원체 퍼즐 게임을 좋아하는 성향 덕분인지 정말 재밌게 진행했다.
문제는 리들러의 복수. 배트맨으로 플레이할 때까지는 스토리 모드는 튜토리얼이고 이게 진짜 메인 콘텐츠였구나, 이거 안 하고 넘어갔으면 정말 아쉬울 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었다. 하지만 캣우먼 익스트림 모드부터는 난이도가 엄청나게 오르더라. 이게 같은 게임인가 싶을 정도. 그 바람에 서너 번 도전은 기본이었다. 더불어 배트맨이 얼마나 템빨왕인지도 깨달았고.
그런데 로빈 사냥꾼 익스트림은… 그냥 자력 클리어가 불가능했다. 조금 고생하더라도 재미와 성취감을 위해 공략은 절대 안 보는 스타일인데, 몇 번을 죽어 나가다 처음으로 공략을 찾아봤다. 게임이 너무 안 풀리다 보니 이러려고 게이머 됐나 자괴감도 들고 해서 중간에 두어 달 정도를 쉬었던 것 같다. 정해진 경로를 파악하고 나니 못 깰 정도는 아니지만, 특정 도구로 다수의 적을 쓰러트리는 항목은 공략과 똑같이 해도 달성이 안 되는 경우가 있더라. 결국 공략에서 개괄적으로 방법을 파악한 뒤 직접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캐릭터별로 사냥꾼/캠페인 클리어 소감을 간단하게 정리해봤다.
배트맨
- 스토리 모드에서 제대로 쓸 일이 없던 도구를 다양하게 사용하도록 유도해 굉장히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다.
- 도구들 성능이 워낙 좋은 데다 미션도 도구 사용 위주라 크게 어려울 게 없다.
- 가끔가다 한 번 정도의 재도전 이외에는 대부분 단번에 클리어가 가능했다.
- 그래서인지 캣우먼이나 로빈으로 플레이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잡아 보면 너무 쉬워서 재미가 없다…
캣우먼
- 배트맨과 움직임이 묘하게 달라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 도구가 적어서 적을 처치하기도 까다롭지만, 그만큼 메달 달성 조건에 도구 사용도 적다. 그런데 그 대신 난간 테이크다운 같은 게 들어갔다고 생각해보면 전체적으로는 더 어려워진 것일지도.
- 워낙 약골이라 익스트림에서 두 명을 동시에 마주치면 그냥 죽었다고 봐야 된다.
- 위층이나 은신 지점으로 뛰어오를 때 땅에서 한 번 도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지뢰를 밟는 때가 종종 있다. 이러면 그 판은 급격히 어려워진다. 도약하다가 지뢰 밟고 죽으면 너무 억울하고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 ‘세계 최고(익스트림)’ 정말 어렵다.
로빈
- 일반 모드는 캣우먼보다 쉽다. 근데 익스트림 모드가 심각하게 어렵다.
- 스냅 플래시를 이용해 여러 적을 동시에 처리하는 과제가 몇 번 나오는데, 클리어 가능한 경로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공략 없이는 정말 힘들다.
- 캠페인에서도 완벽 클리어를 위한 부가 항목 설정이 거의 정해져 있다.
- 원격 조종 수리검이 없었다면 아마 몇몇 미션은 아예 클리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 ‘경찰의 잔인함(익스트림)’ 정말 어렵다.
나이트윙
- 다른 캐릭터와 타격 움직임/박자가 묘하게 다르다. 약간 밀리는 듯한 느낌.
- 미션 항목으로만 보면 로빈에 버금가게 어려운데, 혼란 장치/손목 화살이라는 사기 도구가 있어서 전체적인 난이도는 훨씬 쉽다.
- 캣우먼처럼 활공이 안 되다 보니 도약 후 예상치 못한 곳에 착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적 앞에 떨어지면 재시작 누르는 거지 뭐…
- 탐정 모드에서 의식불명인 적과 일반 적이 구분되지 않는 게 은근히 성가시다.
- ‘세계 최고(익스트림)’은 손목 화살이 한 방만 빗나가도 무조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냥꾼 지도에선 그렇다 쳐도 캠페인에선 두 번째 맵으로 등장하기에 빗나가면 혈압 오른다.
전체적인 난이도
- 로빈 ≫ 캣우먼 ≥ 나이트윙 ≫ 배트맨
기타 도전 과제 소감
증강 현실의 기사
- 악명에 비해 의외로 달성한 사람이 많다. 맵에 상시로 표시되는 데다 미니 게임처럼 떠오를 때 간단하게 한두 번씩 해볼 수 있어서 그런 듯하다. 나의 경우 첫날 1시간, 그 이후 매일 30분씩 투자해 1주일 정도가 걸렸다. 물론 걸린 시간의 90%는 그 악명 높은 제철소 굴다리에 들어갔다. 강하 후 0.2초 정도 진입 가능한 타이밍이 있는데, 그 타이밍을 손으로 익히는 게 중요하다. 그 전까진 수많은 시행착오를 직접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도구 공격
- 서브 퀘스트를 깨야 돼서 증강 현실의 기사에 비해 달성률이 낮은 것 같다. 실제로 모든 도구를 획득하면 달성되는 ‘모두 갖춤’ 과제와 달성률이 같다. 일단 퀘스트를 완료하고 도구만 얻는다면 전투 모드에서 바로 달성이 가능하다.
가중 폭행
- 맞고 있는 애들이 언제 어디서 뜰지 몰라서 은근히 성가신 과제다. 날 잡고 한 번에 달성할 생각을 하지 말고 다른 퀘스트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그때그때 보일 때마다 구해주는 게 관건.
물 흐르듯 싸우는 자 2.0
- 일찌감치 달성하려 하면 스트레스만 쌓일 가능성이 높다. 리들러의 복수 전투 지도를 진행하다 보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다.
천재
- 리들러 챌린지 수집이 핵심인 과제. 한 번에 깨려고 하면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나는 눈에 띄는 수집 요소는 모두 수집하면서 스토리 모드를 진행했기에 클리어 무렵엔 자연스럽게 80% 정도가 수집된 상태였다. 인질 구출 미션이 정말 재밌으니 안 해본 사람들은 꼭 해보길 추천한다. 물론 그 전에 수집 요소 400개를 모아야 하겠지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 배트맨의 미니 퍼즐에 비한다면 그냥 단순히 가서 주워오는 정도라 별로 감흥이 없었다.
두 번의 밤
‘새 게임 플러스’ 모드는 반격 표시가 뜨지 않고 총이 좀 아파지는 것 빼곤 특별할 게 없다. 이미 맵을 훤하게 꿰고 있을 거라 체감 난이도는 오히려 더 쉽게도 느껴진다. 보스전의 추가 패턴이나 추가 보스 등으로 꾸몄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붙이세요
함정 과제. ‘주위 사물’에 붙이라는데 도대체 주위 사물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보기 전까진 달성할 수가 없었다. 해당 장소에서 힌트를 주든가, 아니면 아예 사물이 빠졌어야 했다.
파티는 끝났어
소소하게 찾아다니는 재미는 있었는데, 마지막 하나를 계속 찾지 못해 결국 공략을 보고야 말았다. 클리어 이후 오픈 월드 플레이가 불가능하다는(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성가시다. 나는 이 과제 때문에 할리퀸 DLC를 다섯 번이나 플레이해야만 했다…
완벽한 흐름 2.0
- 배트맨으로 콤보가 끊기지 않는 상태에서 모든 전투 동작을 수행하면 된다. 리들러의 복수 전투 지도에서 다양성 보너스를 ×12로 획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① 가격(일반 공격), ② 반격, ③ 회피, ④ 망토 충격(기절) ⑤ 강력한 기절, ⑥ 공중 공격, ⑦ 격투 기술, ⑧ 지상 테이크다운, ⑨ 스페셜 콤보 테이크다운, ⑩ 스페셜 콤보 박쥐 떼, ⑪ 스페셜 콤보 다중 지상 테이크다운, ⑫ 스페셜 콤보 무장 해제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 순서는 상관없다. 가끔 12개를 다 진행했는데도 달성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데, 이땐 신속 발사 도구를 사용하면 달성된다.
- 달성률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어렵다. 이것보다 달성률이 낮은 과제는 극악한 리들러 챌린지를 모두 수집해야 하는 ‘완벽한 기사 – 둘째 날’과 어마어마한 시간을 잡아먹는 리들러의 복수 추가 캐릭터 과제들밖에 없다. 사실상 배트맨 과제의 최고봉인 셈.
- 내 경우 10개까지는 어렵지 않게 연결됐는데 11개에서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딜레이가 긴 공중 공격이나 지상 테이크다운에서 끊기게 될 텐데, 빨리 달성하려고 덤벼드는 것보단 약육강식 지도 3라운드를 올 콤보로 마무리하되, 마지막 적을 강력한 기절 → 지상 테이크다운으로 마무리한다고 마음먹는 게 좋다.
완벽한 기사 – 둘째 날
- 스토리 모드와 새 게임 플러스 모드에서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를 모두 완료하고 배트맨의 리들러 복수를 클리어하면 된다. 리들러 챌린지 수집 요소는 스토리 모드와 새 게임 플러스가 서로 공유하기에 한 번만 수집하면 된다. 만약 새 게임 플러스에서 트로피와 펭귄상, 조커 풍선 등을 처음부터 다시 찾아야 했다면 극악한 과제가 되었을 것이다.
※ 이클리피아 님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징글징글했던 ‘아캄 시티’도 이젠 안녕!
원문: 김고기의 전공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