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다녀와 출간할만한 책들의 저작권을 알아보고 있다. 그런데 최신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미 출판사와 계약을 한 상태였다. 좋은 책을 골라서 빨리 결정하는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다. 그것도 매우 중요하다. 지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외국 서적이라고 배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한국이 이렇게 빨리 가난에서 벗어나 선진국 반열에 올라살 수 있었던 데는 높은 교육열과 함께 외국 서적을 재빨리 펴낼 수 있었던 능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한국 출판인들은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세계 10대 출판국에 든다고 자랑하는 우리 출판이 한국 저자들이 쓴 책 중에서 쓸 만한 책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은 문제다. 운동장이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 출판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1. 출판사의 문제
어떤 평론가는 편집자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판사들이 편집자를 키운다고 교육기관을 만들고 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주로 교정·교열이나 제작, 마케팅 등 일을 업무효율 능력만 키우려 한다. 하지만 사실상 그런 능력은 일을 하면서 터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령 신간을 펴낼 때에 후배가 초교를 본 것을 선배가 재교를 보면서 교열은 이런 것이야, 하고 가르쳐주는 것 말이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마음껏 놀게 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규모가 꽤 큰 출판사에서 편집자는 팀장이 퇴근해야만 퇴근하는 ‘규칙’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팀장들이 거의 날마다 밤 9시-10시까지 야근을 해대서 집에 들어와 쓰러져 자기에 바쁘다고 한다. 허허벌판인 파주에 있는 회사니 이건 짐승도 그렇게 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 회사에 다니는 편집자는 그만둘까 말까를 날마다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무슨 창의적인 능력이 발휘될까?
한 후배는 출판사들이 회사를 키우겠다는 의욕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를 가족에게 물려주는 것을 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평생 고생해서 중규모의 출판을 이룬 사람들이 회사를 키울 생각보다 자식에게 물려줄 방법부터 찾는다.
경영과 소유는 분리할 필요가 있다. 자식이 능력이 탁월하다면 모를까 무조건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만 한다. 그러니 평생 편집자로 살겠다는 사람들도 이곳저곳 전전하다 결국 창업을 하고 만다. 창업 자체는 탓할 수는 없지만 창업한 사람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 당장 팔리는 책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외서가 주로 출판되는 것이리라.
누군가는 일본의 대형 출판사들도 가족에게 물려주었다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고단샤에는 머리가 하얀 편집자들이 즐비하다. 정년이 보장되니 정년을 앞둔 편집자들이 많다. 물론 급여도 많을 것이다. 언젠가 한 잡지에서 “고단샤의 20대 00사장을 포함해 편집자의 평균 연령이 57세”라는 표현을 보고 오자라고 생각했다. 47세면 모를까 57세라니?(확인해보지는 못했다.) 설사 47세라도 대단하지 않나? 이건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50대였다. 그때 새로 부임한 3세 경영자의 나이는 29세였던가?
2. 저자의 문제
하여튼 한국에서 능력 있는 신인 저자들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저자 기근이다.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쓴 논문은 책을 만들 필요가 없는 글들이다. 그냥 서너 사람이 돌려보면 그만인 경우마저 있다.
그리고 그런 책이 통하던 시절은 지났다. 최근 어떤 대학교수는 철이 지난 원고들을 모아놓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원고를 절반쯤 붙여서 책을 냈다. 아마도 국가 지원금이나 노리고 펴낸 책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책을 펴냈다는 실적을 내기 위해 조악하게 만들었거나. 읽어볼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책이었다. 그러나 그 책의 저자는 공공기관의 일을 수의계약을 따내는 재주마저 있으니 기가 찰 일이다.
하여튼 책을 쓰려는 이가 많아야 한다. 그런 이들이 수강료가 1000만 원씩이나 되는 강좌를 수강한다고 해서 놀라기도 했다. 내가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강좌는 100% 사기다. 몇 사람에게 책은 어떻게든 내주기야 하겠지만 강사의 주머니만 채워주는 꼴이 될 것이다. 이런 사기꾼들이 득세하게 된 것은 우리 편집자들이 신인 저자를 발굴할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의욕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이런 일이 쉽지 않다.
3. 제도의 문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사업이란 게 있다. 그게 원래는 신인 저자를 발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성과를 냈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 출판사가 만들고 있는 책들의 제작비를 대주는 사업으로 전락했다. 내가 누누이 비판하는 ‘닭모이’ 사업이 돼 버린 것이다. 그런 사업을 아무리 해도 출판이 진흥되지 않는다. 오히려 출판을 말아먹는 암세포를 키우는 사업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세종도서 사업과 함께 ‘계륵’이 돼버린 사업이다.
신인 저자를 키워야 한다
하여튼 나는 신인 저자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펴내는 책이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내가 만난 초보 저자들과 글쓰기 비법』이란 책이다. 책을 써서 직업을 구하고, 브랜드 가치를 구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찾게 된 20여 명의 초보 저자들을 소개한 다음 책이 되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론 7가지를 제시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펴낸 이후 전 국민을 상대로 저자를 발굴하는 운동을 벌일 생각이다.
물론 혼자서 하지 않는다. 연대해서 할 생각이다. 그러나 기관하고 함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닭 모이’를 조금이라도 지원받는 순간에 관료들의 개입이 시작되고, 그렇게 되면 사업 자체가 무용지물이 돼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지금 물밑에서 논의 중이다.
내가 이런 사업을 펼치는 이유는 출판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인간은 이제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되는 글이나 책을 쓰지 못하면 도태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나는 이번에 내는 책의 머리말을 이렇게 시작된다.
누가 저에게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책을 쓰는 일은 절대로 벌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대로 제대로 살고자 하는 이라면 무조건 책을 써야 하는 세상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아니 이미 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3월 말에 한 대학에서 200여 명의 학생을 놓고 강연을 하면서 나는 머리말을 복사해 나눠줬다. 그리고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10년 뒤면 여러분은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 중에는 10여 년 전에 한기호라는 자가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완전히 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 말을 새겨들을 걸 하며 후회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10년 뒤가 아니다. 이미 왔다. 지금은 초연결사회다. 글과 글로 연결되는 고맥락 사회다. 달리 말하면 ‘하이콘텍스트 시대’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함께 펴내는 평론집의 제목은 『하이콘텍스트 시대의 책과 인간』이다.
우리는 책을 쓴다. 요즘 글쓰기 책을 무조건 사들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건 세상의 흐름이다. 내가 2005년에 펴낸 책이 『글쓰기의 힘』이다. 나중에 개정판을 펴냈지만 그 책의 서문에는 “글쓰기는 살아남고 이겨내고 행복해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음의 이야기를 했다.
이제 글쓰기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자기계발의 한 방식이 되었다. 생각한 것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개인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비교적 글쓰기에 친숙한 작가나 학자가 아니라면 더욱더 글쓰기가 유용하다. 자기소개서를 잘 써서 직장에 좀 더 쉽게 취직할 수 있을 것이고, 보도자료를 잘 쓴다면 당신이 애써 일궈놓은 상품을 세상에 더 쉽게 알릴 수 있을 것이고, 기획서를 잘 쓴다면 동료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많이 인정받을 것이다. 물론 글을 잘 쓴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탁월한 글쓰기가 성공 확률을 높여줄 것임에는 틀림없다. 근대 사회란 기본적으로 문서화시키는 방법을 통해 조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년 동안에 글쓰기에 대한 책이 무수하게 나왔다. 그에 동반해 책 읽기에 대한 책도 정말 많이 나왔다. 잘 읽어야 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하는 세상이다. 그에 부응해 우리 출판사들이 우리 저자들의 책을 되도록 많이 내줄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명분을 갖춘 책이면 책을 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부터가 앞으로 그런 일을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원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