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 잘 쓰는 분들이 이 서비스에서 ‘작가’가 되려고 포트폴리오와 함께 작가 신청서를 제출합니다. 또한 페이스북에서 공유되는 콘텐츠 출처 중 이 서비스의 이름이 점점 많이 보입니다. 바로 2015년 6월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라는 슬로건으로 베타서비스를 시작한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입니다.
브런치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오픈형 플랫폼이 아닙니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심사팀에 의해 심사 통과를 해야지만 글을 퍼블리싱 할 수 있는 폐쇄형 플랫폼이죠. 그래서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솜씨’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포털사이트에서 “브런치 작가”로만 검색을 해보면 브런치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작가로 최종 선정됐다며 축하해달라는 글부터 시작해서 3-4번 지원했는데 계속 떨어진다며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될 수 있는지 팁을 알려달라는 글도 수두룩 합니다. 사람들은 브런치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어떻게 브런치는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을까요?
페쇄형 플랫폼이 오히려 신뢰를 가져오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관리, 유통하는 툴을 CMS(Contents Management System)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보편화된 툴이 바로 블로그입니다.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회원가입만 하면 누구나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오픈형 CMS를 지향하죠. 포털 사이트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검색 결과를 받쳐줄 DB가 쌓이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오는 단점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어뷰징되어 상업적이고 광고성 글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일명 ‘물이 흐려지는’ 거죠. 최대한 많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는 있지만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게 바로 오픈형 CMS 입니다.
브런치는 다른 텀블러, 미디움, 포털 블로그 등 모든 CMS 서비스들이 오픈형을 지향할 때, 패기 넘치게 폐쇄형 CMS를 지향했습니다. 다른 서비스들처럼 콘텐츠 생산자를 늘리는 방식(ex.가입자)으로 서비스를 키우는 게 아니라, 소수의 고퀄리티 콘텐츠 생산자만으로 구성해두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을 늘리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누구나 가입해서 무작위 퀄리티의 콘텐츠를 배출하는 형태가 아니라 정제되고 깊이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여 생태계 물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방식을 선택한 거죠. 빠르게 가입자를 확보하고 콘텐츠 양을 늘려서 서비스를 키울 것인가, 소수의 콘텐츠 생산자지만 콘텐츠 질을 높여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을 늘려서 서비스를 키울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브런치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폐쇄형 CMS 시도는 결과적으로 성공이었습니다. 심사를 통해 선정된, 글 잘 쓰는 작가들로 인해 브런치는 “전문적인 필자들의 생각이 담긴 글이 있는 곳”으로 포지셔닝되었습니다. 또한 폐쇄형 덕분에 소속 작가들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자부심은 결국 책임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짧은 글을 쉽게 배출하는 SNS와는 달리 콘텐츠 하나를 메이킹하더라도 ‘제대로’ 된 콘텐츠를 메이킹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콘텐츠의 질을 더 좋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이름 앞에 걸린, ‘작가’라는 호칭에 대한 무게감이 있었던 거죠.
폐쇄형 시스템은 소속 작가들의 위상도 높여주었습니다.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작가를 선정하다 보니 어디 가서 “저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해요”라고 했을 때 부러움과 ‘이 사람은 글을 잘 쓰나 보구나!’라는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또한 소수형으로 운영하다 보니 “저 그룹에 들어가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폐쇄형 시스템 덕분에 글 쓰는 사람들이 닮고 싶은 ‘워너비 스타’가 빠르게 만들어진 거죠. 사실 워너비 스타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서비스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가 이 서비스에서 열심히 활동하면 저렇게 될 수 있겠다’고 느껴지는 레퍼런스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활동해도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 지를 모른다면 이용자들은 서비스에서 열심히 활동할 이유가 없는 거죠.
이미지와 동영상을 선호하는 SNS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고퀄리티 텍스트 콘텐츠 니즈가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서의 인기 콘텐츠 포맷이 이미지와 동영상으로 가는 지금, 브런치는 오히려 다시 텍스트 콘텐츠에 집중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기록의 수단으로 이어져온 텍스트 콘텐츠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서점에 가서 책을 보는 것도 전문적이고 고급 콘텐츠로 인정 받은 텍스트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듯 온라인에서도 그런 공간이 있다면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콘텐츠의 수요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가 전 세계적으로 고공행진을 달리며 짧은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등의 콘텐츠 포맷이 온라인상에서 인기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이런 콘텐츠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을 볼 깊고 전문적인 콘텐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흥적인 배출식 콘텐츠가 아니라 정제되어 있고 깊이가 있는 콘텐츠를 찾아 사람들은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로는 미디움(Medium)이라는 텍스트 콘텐츠 전용 CMS가 ‘깊이 있는 글’이 모였다는 소문에 사용자들이 몰려들었죠. 국내에서는 브런치가 그런 역할을 합니다.
국내에서는 더 나아가 고급콘텐츠를 유료로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생겨났습니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콘텐츠를 특별한 경험으로 제공합니다’ 슬로건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퍼블리가 대표적입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저자)를 섭외해 SXSW(South by Southwest),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칸 국제 광고제 등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행사나 기존 미디어가 담지 못하는 정보 및 인사이트를 유료 콘텐츠로 발행합니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기존 목표 대비 초과 달성을 이루었습니다. 콘텐츠에 대한 소비력을 잘 보여주는 서비스입니다.
이처럼 전문적이고 고급 콘텐츠를 향한 니즈는 여전히 유효하며 국내에서는 그 시작을 브런치가 열었습니다. 지적 콘텐츠를 탐색하고 싶다는 인류의 기본적인 니즈를 서비스에 담았습니다. 필력 있는 작가들을 통해 전문가 수준급의 텍스트 콘텐츠들이 나옵니다. 이제는 브런치 출처의 글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퀄리티가 보장된다는 긍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클릭하는 현상도 일어납니다.
철저하게 콘텐츠 생태계 관리를 하다
브런치에 없는 기능 중 하나가 ‘랭킹’입니다. 실시간으로 독자들이 많이 읽고 글이라든지, 좋아요/공유가 많이 된 글과 같은 랭킹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주제별로 동등한 위치에서 큐레이션을 해줍니다.
이는 콘텐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작가 파워에 의해, 후킹하는 제목으로 인해, 선정적인 주제 선정으로 인해 그렇지 못한 ‘좋은 글’들이 묻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대신 다양한 주제와 컨셉을 보여주며 좋은 글들이 발견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작가 신청이 완료되면 받는 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상업성/홍보성 글을 업로드할 시에는 자격이 박탈당할 수 있습니다.
상업성 콘텐츠로 인해 생태계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여집니다. 이처럼 브런치는 철저하게 생태계 관리를 하면서 좋은 글이라면 언제든지 발견될 수 있고 콘텐츠 퀄리티 관리를 철저하게 하면서 서비스에 대한 확실한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중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작가들이 브런치의 UI를 좋아합니다. 글만으로도 세련된 콘텐츠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포털의 블로그에서는 글만 잘 쓴다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디자인도 고려해야 하고 검색 결과 상위노출을 위해서 적절하게 마케팅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브런치에서는 오로지 좋은 글 작성에만 집중하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작가’라는 에디터 명칭도 신의 한수로 불립니다. 모두가 인생에 한 번쯤 작가가 되고 싶은 니즈가 있습니다. ‘파워블로거’는 노후한 느낌이 나고, ‘스타에디터’는 잡지 에디터 느낌이 강합니다. 글의 무게감과 어울리는 ‘작가’라는 에디터 명칭이 브런치를 잘되게 한 요소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폐쇄형 CMS로서 보기 드문 성공을 보여주는 브런치. 이제는 주문형 출판(POD, Publish on demand)도 지원하면서 소속 작가들이 책도 출판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아직 뚜렷하게 수익을 창출하는 BM이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퍼블리처럼 유료 콘텐츠 판매 또는 구독 형태로 콘텐츠 소비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레퍼런스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