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난 3년여 동안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를 지켜보면서 나름 내린 결론이 있다. 스타트업생태계를 활성화해서 좋은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게 하고, 특히 그 스타트업들이 큰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좋은 벤처캐피털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좋은 스타트업을 일찍 찾아내서 투자해주고 성장 과정에서 값진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성장단계에 맞는 자금을 적절히 펀딩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투자가들이다. 일생을 걸고 뭔가에 도전하는 창업가들 못지않게 위험을 감수하며 함께 투자해주는 사람들이다. 이런 VC들의 존재가 정부지원보다 휠씬 중요하다.
실리콘밸리는 처음에 미국 정부가 한국전쟁 이후 국방프로젝트를 많이 주고 NASA가 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성장은 페어차일드 반도체 같은 벤처를 시작한 창업가들과 그 창업가들에게 돈을 투자해준 VC들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이어진 애플컴퓨터의 창업과 IPO, 넷스케이프, 야후, 시스코, 구글, 페이스북 등의 성장을 뒷받침한 것은 비범한 창업가들과 투자자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좋은 벤처캐피털을 창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테헤란로펀딩클럽이란 행사를 올해초부터 시작했다. 지금까지 소프트뱅크벤처스 문규학대표, 캡스톤벤처스 송은강대표, DSC인베스트먼트 윤건수대표, 케이큐브벤처스 유승운대표, 정신아상무를 모셨다. 5번째 행사에는 특별히 한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일본의 글로벌브레인 스즈키 파트너를 모셨다. 매회 이 행사의 PM인 이유진 매니저가 거의 녹취록에 가까운 자세한 후기 포스팅을 올리고 있다.
매번 그렇지만 특히 지난주 수요일 모신 본엔젤스 강석흔 대표의 펀딩클럽 발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본엔젤스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나온 강대표는 30분 발표시간이 짧으면 시간을 더 쓰셔도 된다고 했더니 1시간을 꽉 채워서 발표하셨다. (그나마 빨리 끝내달라고 신호를 보내서 한 시간 만에 끝낸 것이다…)
아래는 강석흔 대표의 강연과 Q&A에서 내가 해둔 메모다. 기억해두고자 블로그에도 적어둔다. 괄호 안은 내 생각 메모다. (아래 삽입한 슬라이드들은 강석흔 대표의 발표자료에서 인용했다.)
강석흔 대표의 강연: 새로운 LP의 지평을 연다는 것
- 우리도 스타트업이다. 투자벤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계속 도전한다. (많은 분들이 간과하는데 많은 경우 VC도 창업자다. 독립해서 자신의 펀드를 만들고 비즈니스로 성립시키기 위해서 도전하는 것이다. 자신의 투자철학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 본엔젤스 탄생의 의미는 수요자(창업자)관점의 자금 공급을 하는 VC의 탄생이라는 점이다.
- 예전에 초기투자를 한다고 하면 “그것으로 어떻게 돈을 버냐. 자선사업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말이 듣기 싫었다.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기가 생겼다.
- 우리의 철학과 비전은 “PaceMaker”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는데 같이 뛰어주며 도와준다는 것이다. 지금 VC 자금은 넘쳐난다. 돈은 범용재다. 돈이상의 가치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창업자는 스타트업의 성장 과정에서 같이 뛸 동반자를 구하는 마음으로 VC를 선택해야 한다. 돈만 보고 선택하면 안 된다. 그 VC가 돈 말고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 우리의 팀은 거의 다 창업경험과 개발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파트너 9명이 거의 다 대학생, 대학원생, 직장 경험 후 창업했다. 그래서 창업자들의 마음을 안다. 마크테토는 우리에게 글로벌시각 등 다양성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창업자가 엑싯을 하고 파트너로 조인한 경우도 3명이나 된다. (창업생태계의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실리콘밸리는 투자파트너로 창업자 출신이 많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창업경험보다는 금융계 출신이 많다. 창업자 출신과 금융계 출신이 적절히 조화롭게 섞이는 것이 좋다.)
- 또 팀 대부분이 SW개발자 출신이거나 이공계다. 심사역도 모두 그렇다.
- 엄청나게 비싼 사람들을 파트너로 모아놓았다. 그런데 월급을 주지 않는다. 무임금 노동이다. 어차피 대부분 수백억 자산가인 사람들이다. 돈으로 동기부여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파트너가 자신의 돈을 본엔젤스 펀드에 투자한 LP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놀랐다. VC는 LP(Limited Partner)에게 자금을 투자받아서 펀드를 운영하며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펀드운용수수료로 2%를 가져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운용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벤처파트너들이 월급을 받아가도 당연한데 본엔젤스는 안 받아간다고 한다. 그만큼 본엔젤스의 운영비용을 가볍게 하고 투자한다는 뜻 같다. 물론 안 받아도 될만한 분들이니 그렇게 했을 것이지만 대단하다. LP 입장에서도 더 신뢰가 갈 것 같다.)
- 수요일 오전에 파트너 9명이 모두 모여서 회의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다 화상으로라도 참가한다. 자신이 가져온 투자딜을 가지고 발제를 하고 격한 토론을 한다. 모든 파트너가 동등하다. 얼굴마담으로 이름만 올려놓은 사람은 없다. 이 수요회의를 하고 나면 엄청나게 배운다. 책 한 권을 읽은 느낌이다. 다양한 분야의 고수들이 자신의 시각을 거침없이 나누기 때문이다. (이 회의를 언제 기회가 되면 참관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이렇게 본엔젤스에서 투자를 경험한 파트너분들이 나중에 나가서 자신의 창투사를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본엔젤스는 성공한 분들이 스타트업투자자로 변신하도록 도와주는 최고의 학교 역할도 한다. M&A로 회사를 매각한 창업가가 있으면 내가 조용히 연락해서 만난다. 그래서 본엔젤스 LP로 들어도록 유도한다. 권도균 대표님 등 많은 유명한 분들이 LP로 참여하고 계시다. (엑싯해서 큰돈을 버신 분들 중에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서 못 하겠다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정말 본엔젤스가 ‘학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서 정말 귀중한 역할이다.)
- 우리는 어떤 아이디어가 왜 안되는지 비판하는 것보다 왜 되는지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에 가면 ‘안되는 이유‘ 전문가가 득시글하다. 위대한 혁신일수록 소위 ‘똘끼’가 강하다. 이런 똘끼를 잘 ‘통역’해서 투자심사를 해서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자가 너무 똑똑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이노베이션을 겸허하게 받아줄 수 있다. (어떤 스타트업의 사업제안서에 대해 사정이 안 맞아 어쩔 수 없이 많이 거절을 하지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혁신’을 평가할 자격은 없다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겸손한 자세.)
- 우리는 펀드가 하나다. 이노베이션을 가장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VC 펀드다. 대한민국 VC 중 아마 유일하게 정부자금 없이 완전 민간자금으로 운영되는 펀드다. 그래서 꼬리표가 없다. 많은 펀드가 ‘4차산업혁명펀드‘, ‘청년창업펀드‘ 같은 이름이 달려있다. 그것 자체가 꼬리표다. 3년이 내 창업기업, 무슨 무슨 분야만 투자해야 하는 식으로 제한되어 있다. 또 공공자금을 받은 VC의 경우는 국민의 세금으로 펀드를 운용한다는 딜레머가 있다. 돈을 날리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이 업의 본질은 Risk taking이다. 위험을 두려워하면서 투자하면 안된다. 우리는 그런 꼬리표가 없기 때문에 눈치 안 보고 자신 있게 투자한다. 신속한 실무가 가능하고 본질에 집중한다. 우리는 의전을 싫어한다.
- 투자를 하고 나서도 우리는 창업자들에게 값진 조언이 가능하다. 창업을 하고 수백 명 이상의 큰 회사로 키우고 엑싯을 해본 사람들이 파트너로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투자한 창업자 3명이 나중에 파트너로 컴백해 참여했다. 투자한 창업자 7명이 LP로 컴백 참여했다. 이렇게 순환생태계 모형을 실현하고 있다.
- 새로운 LP 지평을 열고 있다. 많은 대기업들이 우리 펀드에 투자하면서 LP로 처음 들어오고 있다. 우리는 이런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만나고 새로운 성장동력 엔진, 수익원 엔진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해서 스타트업투자의 가치를 알게 되면 다른 VC의 LP로 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이 이렇게 해서 스타트업을 알게 되면 M&A로 이어질 확률도 커진다. 이렇게 스타트업생태계에 공헌한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알도록 도와주는 것, 정말 중요한 일이다.)
- 스타트업창업자들에게 좋은 평판을 쌓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렇게 해서 창업자들에게 최우선 선택을 받는 VC가 되고 싶다. VC로서 우리도 계속해서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번 변화 발전하지 않으면 다음번 펀딩을 기약할 수 없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창업자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VC가 되고 싶다는 얘기다. 이렇게 좋은 평판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창업자들이 가장 투자받고 싶어 하는 VC가 될 것이다.)
- 글로벌투자에도 주력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장에 관심이 많다. 해외의 한국계 인재를 허브로 투자하고 있다.
- 10년간 총 114개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평균 월 2개씩 투자한다. 그중 11개 회사가 M&A 됐다. 보통 콜드메일로 일 년에 1천 개 정도 들어온다. 그외 네트워크로 소개받아 검토하는 것 등 해서 연간 2천개쯤 본다. 전체 보는 것중 1%만 투자하는 셈이다. ( 이것이 현실이다. VC에게 투자받는 것은 진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셈이다.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 사업모델과 발표내용을 개선해가며 시도해봐야 한다.)
- (대학생들에게 창업을 권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대학생들에게 바로 창업하지 말고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다녀보라고 한다. 좋은 스타트업을 어떻게 찾냐고? VC가 투자한 스타트업을 우선적으로 보라고 한다.
- (스타트업생태계가 잘되기 위해서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규제를 없애줘야 한다. P2P대출업체인 테라펀딩에 투자했는데 당시에 모태펀드에 금융업에 투자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어서 다들 눈치 보던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이 융합되는 시대에 의미 없는 규제인데 그것 때문에 투자할 수 없는 것이다. 또 큰 펀드를 굴리는 VC가 초기투자를 직접 하기 어려우니 작은 VC에 출자를 해서 초기 간접 투자를 하기를 원할 수 있는데 그것도 한국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반면 한국 VC가 해외 VC에 투자하는 것은 가능하다. 역차별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모태펀드로 돈을 받은 한국 VC들이 서로 펀드 돌리기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들었는데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마무리하며
한국의 벤처투자생태계가 민간주도의 자생적인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업가 중심의 민간 VC가 많이 나오고 또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본엔젤스 같은 VC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엔젤스도 이런 철학에 맞는 투자로 향후 높은 수익률을 올려서 투자모델을 증명하고 더 많은 자금을 끌여들여 펀드사이즈를 키우고 글로벌한 VC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원문: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