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는 ‘경제’분야에 있어서 시장과 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의 학제 개혁은 철저히 시장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형태의 철학을 담고 있다.
아직 실물분야서 불확실한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슬로건으로 왜 지금 아이들의 진로가 무분별하게 결정되어야 하는가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MB 정부 당시 교육의 본질적인 경제적 단독자와 시민의 탄생이라는 목표를 도외시한 채 질적 수준과 무관한 취업률만 따지기식 정책을 펼친 결과가 마이스터고였다.
사실 한국만큼 유행처럼 학과가 탄생하고 폐지되거나 요상스러운 커리큘럼이 탄생하는 대학 풍토도 드물다. 어쨌거나, 안철수 후보는 ‘시장 자율’을 이야기하지만 웬걸 노동 정책은 마치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통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이 있고, 미래를 예측하려고 했던 민주당의 과거 정부들은 수많은 IT 인력을 양성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과거를 합리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캘리그래피나 UI, UX를 연구하는 심도 있는 디자이너를 육성하기보다 단순히 기업이 원하는 코더들만 시장으로 내보냈다.
그 결과가 노동에 있어서 경쟁 과열과 IT 버블 이후에 악화된 고용 환경 때문에 프로그래머를 갈아넣어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액티브 X에 연명하거나 각종 SI 쪽에서 정밀한 설계가 아니라 주먹구구식 공기 단축, 프로그래머 출신의 발언력 약화는 이런 전 단계가 있다.
사실 4차 산업 혁명이 정말 있다면 딱히 준비할 것이라고는 아카데믹이라는 공간이다. 바로 대학 그 자체의 순수 학문적 환경의 조성이다. 응용인 공학이지만 새로운 혁신적 알고리즘은 다름 아닌 수학에서 발견되며, 기술의 패러다임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이론적 발견에서 출발한다.
안철수 후보가 정말로 시장의 가격기구를 신뢰한다면 4차 산업 혁명의 시대가 오더라도 그 시대의 경영자들은 그 수요에 걸맞게 가격(임금)을 지불하고 기술자를 쓰는 것을 감내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대우가 좋으면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그 수요에 걸맞게 스스로를 계발하여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 인력이 생겨난다. 그 동기부여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자들이 대우받고, 발언력이 강화되면 전문성이 부족한 경영진의 이야기는 기각되는 풍토가 되며, 실패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추상적이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보상’을 이야기하며, 사전에 개인들에게 시장 맞춤형 인생을 살라는 강요는 하지 말아야 한다. 애초에 싸게 공급하고, 생산물을 뽑아내고자 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설사 그가 이야기하는 (슬로건에 전혀 동의하지 않아도 유사한 상황의)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원문: 임형찬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