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에 조성문님(@sungmoon)이 쓰신 “한국 인터넷에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 그 이름은 네이버”라는 글이 있다. 올해 4월에는 “갑자기 다시 주목을 받는 3년 전의 네이버 글”이라는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 해주시기도 했다. (참고로 3년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저 글이 네이버 문제에 대한 개론이라면, 나는 이번 글에서 각론 정도로 네이버 블로그 서비스의 문제점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블로그가 이래야 한다는 규칙 같은건 없다. 블로그의 용도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개인적인 일기장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 위해 블로그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매우 다양한 용도의 블로그가 존재하지만 이 글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평소 생각하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매체라는 정의로 블로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모든 것은 네이버 안에서…
네이버가 가두리 양식장이라는 얘기는 어제오늘 나온 말이 아니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면 네이버가 가지고 있는 DB를 제일 먼저 보여준다. 이 DB 중에는 네이버 블로그도 포함이 되어 있다. 아마 네이버가 가지고 있는 DB 중에 지식인, 카페와 더불어 가장 큰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네이버는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된 자료들을 보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네이버로 들어와 트래픽을 유발시키길 원하는것 같다. 네이버에서 만들어 놓은 제한사항이나 몇가지 기능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 중에 하나는 RSS 전체공개 금지다. 대부분의 블로그 서비스들은 RSS로 본문을 전체공개할지 부분공개할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디폴트로 부분공개 설정되어 있고, 전체공개로 바꿀수 있는 옵션이 없다. 네이버 블로그를 구독한다면 사이트에 접속을 해야만 전체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엔 블로그 내용이 정말 좋은 경우가 아니면 네이버 블로그는 RSS 구독을 잘 하지 않는다.
부분공개가 나쁜 건 아니지만 주인장에게 선택의 여부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웃과 서로이웃
RSS는 막아놨지만, 네이버는 다른 방법으로 자사의 블로그 글을 구독할 수 있게 만들어놨다. 그게 다른 블로그 서비스에는 없는 이웃 개념이다. 네이버 블로그들끼리는 이웃 추가라는 것을 할 수가 있다. 일종의 구독인데, 트위터나 텀블러의 팔로우를 생각하면 편하다. 이웃으로 추가하면 네이버에서 RSS처럼 블로그를 한 곳에서 모아서 볼 수 있다. 하지만 하필 팔로우가 아니라 이웃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한다.
초창기에 이웃 기능은 일방적인 신청만 가능했다. 그랬던게 싸이월드에서 1촌 개념이 흥하기 시작하면서 서로이웃이라는 기능이 생겼는데, 네이버 블로그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싸이월드의 1촌 개념을 벤치마킹했기 때문인지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발행할때는 공개설정이 있다. 이웃한테만 공개할수도 있고, 서로이웃한테만 공개할수도 있다. 이 공개설정을 이용해서 불법 자료를 이웃관계에 있는 사람들한테만 공유하는 부작용도 있다. 게다가 이런 부분들 때문에 네이버에서는 친목질이라는게 생겨난다.
친목질이 뭐가 문제인가
블로그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던 그건 다른 사람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친목을 위한 용도로 사용해도 문제가 되는건 아니다. 하지만 네이버 블로그는 친목을 서비스 수준에서 조장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웃이라는 개념 뿐만 아니라, 방명록의 이름이 안부 게시판이라는 것도 네이버의 그런 일면을 보여준다. 블로그에서 하는 친목질이라는건 예를 들면 이런거다.
이웃 관계인 사람이 글을 발행하면 블로그에 찾아가서 읽어보고 조회수를 올려준다. 딱히 마음에 드는 글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친목이 있는 블로거니 “잘봤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아준다. 아니면 “퍼가요~”라는 댓글과 함께 스크랩 버튼(이것도 다른 서비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을 눌러 글을 자신의 블로그나 카페에 퍼간다. 이렇게 되면 2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쓸데없는 중복자료가 많이 생긴다.
검색 순위에 변동이 생긴다.
스크랩(펌질)을 통해서 퍼져나간 글들은 트위터의 공식 리트윗 기능과 달라서 원본글을 삭제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익히 알고 있다시피 네이버에는 펌질한 자료만 잔뜩 남는다. 두번째 검색 순위 문제는 SEO(검색 엔진 최적화)와 관련된다. 블로터에 김철환님이 기고한 SEO에 관한 글에 의하면…
한 가지 유념해야 하는 것은 다른 웹문서에 링크로 게재되는 형태 외에도 RSS 구독, 블로그 이웃, 소셜미디어로 공유, 퍼가기와 댓글도 모두 인용으로 간주된다는 점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 블로그 하단에 있는 퍼가기, 댓글 수에 상당한 가중치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글은 SNS, 특히 구글플러스를 통한 공유회수에 점점 더 많은 가중치를 두고 있는 중입니다.
스크랩과 댓글이 더 많은 글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인용됐기에, 권위가 있는 글로 인정을 받고, 네이버는 방문자수 또한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식해서 검색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친목질은 실제 컨텐츠가 양질이냐보다는 내가 이사람이랑 얼마나 친하냐에 의해서 스크랩과 댓글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검색엔진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찾는 사람에게 검색 순위에 영향을 줘서 노이즈가 된다.
물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간 좋은 글들은 이런 부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덜 유명한 블로그에서 쓴 좋은 글이 이웃이 많은 블로그에서 쓴 그저 그런 글보다 주목받을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스크랩 버튼
스크랩 버튼이 블로그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스크랩을 하는 툴이라면 네이버 블로그가 아니라 에버노트 같은 전문적인 툴들이 있다. 괜찮은 글을 발견해서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해 저장할 용도라면 그런 툴은 정말 차고 넘친다. 에버노트 뿐만 아니라 핀보드나 포켓, 인스타페이퍼 같은 앱들이 더 나은 사용자경험과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스크랩 버튼의 단점은 모두가 알다시피 펌질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이 부분을 꽤나 적극적으로 권장하는것처럼 보이는데, 블로그 곳곳에서 스크랩 횟수를 확인할수 있기 때문이다. 스크랩된 횟수가 몇번인지 확인하는 위젯이 있고, 글 목록에서도 스크랩수를 볼수 있게 해놨다.
이런 것들이 시간을 두고 정착되다보니 네이버 블로그에는 원저작자의 글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심지어는 다른 플랫폼에 있는 블로그 글을 전문 복사해서 붙여놓는 것 자체가 일종의 문화가 된것 같아 보인다. 문화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희박한 저작권 의식과 섞여 용인 가능해졌다는게 더 적절한 표현이겠지만 말이다.
펌질에 대한 방지책?
이렇게 펌질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자 네이버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았다. 그게 마우스 우클릭 방지와 자동출처 표시다. 마우스 우클릭을 막아놓는 덕분에 블로그 글을 부분인용 해서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질수 있는 가능성이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매우 적다.
펌질을 권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펌질을 막아놓는 기능을 내놓은것도 아이러니다. (마우스 우클릭 금지를 뚫는것 또한 매우 쉬운 일이지만 이 기능이 괜히 과정만 귀찮게 만들어놓았다는건 논외로 하자.) 자동출처 또한 미봉책일뿐이다. 사족이지만 자동출처가 블로그 제목만 언급할뿐 링크를 걸어주지 않는다는건 또다른 코미디다.
이런 네이버의 안하느니만 못한 펌질 방지책은 또다른 문제를 만들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서드파티 서비스들을 활용하지 못한다.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네이버에서는 앞서 언급한 에버노트를 사용할 수 없고, Read it later 서비스들에서 가독성을 높여주는 Readability 기능을 쓸수가 없다.
안그래도 가독성 안좋은 네이버 블로그들이 99%인데… 가독성을 높이는 기능을 쓸수가 없다. 가독성을 위한 기능으로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것은 전용뷰어라는게 있는데, 반드시 PC에서 웹으로 접속해야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모바일에서는 전용뷰어 제공이 안된다.)
네이버를 이해하기: 네이버 안에서만 살아라
네이버를 제외한 다른 검색엔진에서 제대로 검색이 안되는것도 문제다. 이는 네이버 블로그에 있는 “외부수집허용” 설정 때문이다. 이 설정을 꺼버리면 네이버를 제외한 다른 검색엔진에서는 크롤링이 안돼서 결과로 띄워주질 못한다. 텀블러처럼 계정 설정에 있는것도 아니고, 이게 왜 포스팅 할때마다 설정할수 있는건지 이해가 안된다. 심지어 처음엔 이게 정확히 어떤 기능인지 몰라서 불펌을 걱정한 네이버 블로거들이 켜놓으면 펌질이 쉬워지는줄 알고 꺼놨던 시기도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있는 대부분의 기능들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글은 네이버에서만 볼수 있게 만들어야한다.”라는 목표를 떠올리면 쉽게 납득이 간다. 단적으로 네이버는 그동안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서비스에 올릴수 있도록 해주는 내보내기(Export) 기능조차 없다.
내가 오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 하지만 궁서체로 권장하건데, 만약 당신이 블로그를 진지하게 할 생각이 있다면 네이버 블로그에서 나와라. 아마 네이버 블로그 하는 사람들은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