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을 통제하는 종결욕구의 비밀 ‘난센스’
나는 전형적으로 ‘계획대로 되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여행을 가더라도 첫째 날은 어디 가서 뭘 먹고, 무엇을 구경하고, 뭘 타고 이동할지 지도 보고 미리 다 계획을 짜 가는 스타일이다. 성격 테스트를 해보면 완벽주의도 들어있다. 그에 반해 아내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편인데, 그래서 편할 때도 있고(서로의 계획이 충돌하지 않을 때), 반대로 그래서 부딪힐 때도 있다(아내 때문에 내 계획대로 안 될 때).
그런데 요즘 같이 급변하고 불확실한, 경계가 무너지는 세상에서는 계획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 기업이건 개인이건 계획을 자주 수정해야 한다. 사실 그동안 나는 계획대로 안 될 때의 문제를 ‘목표를 못 맞추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업 입장에서야 목표가 문제가 될지 몰라도 개인 차원에서는 왜 불확실성이 문제가 될까? 성격 탓으로 돌렸던 불확실성의 문제엔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종결욕구’이다.
‘종결욕구’란 무엇일까?
불확실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불확실함 그 자체를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면서 거기에서 어떠한 패턴을 찾고 결정을 내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종결욕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이 혼란에 빠지지 않고 빠르게 판단을 내리기 위해 발달한 생존의 중요한 요소인 반면, 애매한 상황 가운데 섣불리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하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제이미 홈스의 『난센스』에 소개된 종결욕구에 관한 인간의 심리적 흐름을 설명하자면, 인간은 우선 불확실성을 맞닥뜨렸을 때 추상화(abstraction) 단계를 거친다. 주변 환경에서 단서를 수집하려고 애쓰는 단계이다. 그러다 단서들 가운데서 추론을 통해 일종의 패턴을 만드는 것이 동화(assimilation)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처음에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며 ‘움직이는 것은 생물, 움직이지 않으면 무생물’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심성모형(mental model), 혹은 도식(scheme)이라 한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단서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심성모형들과 다르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정하는 조절(accomodation) 과정을 겪게 된다. 문제는 이 동화나 조절이 불완전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하얀색 까마귀’를 보았다고 하자. 그럼 동화를 적용해서 사실 그것은 비둘기였다고 생각하거나, 조정을 적용해서 세상엔 하얀색 까마귀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케이스든 이 새를 비둘기로 봐야 할지 까마귀로 봐야 할지 불안한 마음이 여전히 남게 된다. 그에 대처하는 방안이 바로 확인(affirmation)이다. 확인은 인지한 위협에 대응해 지금의 신념이 무엇이든 그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학자 프루는 이를 유동 보상(fluid compensation)이라 불렀다. 하나에서 통제권을 잃고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부분에서 더욱 통제하려 하는 것이다.
개념 자체만 요약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난센스』의 장점은 이 개념들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에 있다.
실제 사례로 살펴보는 ‘종결욕구’
이집트가 우리를 공격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빠져 수많은 전쟁의 징후를 무시하다 대응 시기를 놓쳐버린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제4차 중동전쟁 사례, 폭동 상황을 이분법적으로만 판단하면서 과잉진압으로 빨리 불확실함을 종결 지으려다 미국 역사에 남을 재앙이 되어버린 마운틴 카멀 사례, 불확실한 고객의 수요에 빠르게 대처하다 보니 ‘패스트 패션’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 자라의 사례 등 이 책은 수많은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사례들 자체가 재미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사례들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그때 나도 이런 이유로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예를 들어, 이 책 중에 크루글란스키가 진행한 면접 실험 사례가 있다. 실험 대상자가 면접관이 되어 지원자를 면접하게 되는데, 이 중 일부는 면접 초반에 좋은 인상을 주고, 후반부에 단점들이 드러나게 면접을 본다. 나머지는 반대로 면접 초반에 안 좋은 인상을 주고, 후반부에 점점 장점들이 드러난다. 실험 결과, 면접 후에 지원자를 검토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어느 쪽에 좋은 인상을 받았든지 상관없이 평균 5점 정도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미있는 부분은 만약 지원자를 검토할 시간이 촉박할 경우 초반에 좋은 인상을 준 사람은 7점, 후반에 좋은 인상을 준 사람은 3점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심리적으로 쫓기다 보면 사람은 어떻게든 불확실성을 줄이려 한다. 그러다 보니 첫인상을 보고 자신이 내린 결정을 최대한 고수하려 하며, 거기에 반하는 정보(상황 판단을 애매하게 만드는 정보)들은 본의 아니게 필터링 되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전에 하루 100명에 가까운 지원자들을 면접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한 번에 10명씩 들어와서 50분 정도 단체 면접을 보고 5분 정도 지원자들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5분 정도 쉬고 다음 조가 들어오는 그런 상황이었다. 각 조 면접이 끝날 때마다 10명 중 2~3명을 합격시키고 1~2명 보류, 나머지는 탈락시켰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합격과 보류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최종적으로 합격시킬 30명 내외를 결정했다.
어쨌든 중요한 결정을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하려 하다 보니 나를 포함한 면접관들은 그동안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서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렸다. 정말이지 이 책에 나오는 사례 그대로였다. 지원자들의 복장, 말하는 태도, 헤어스타일, 짧은 자기소개, 지원 서류에 몇 가지 정보를 놓고 이미 어느 정도 판단을 내리고, 판단을 하기 애매한 사람들에 대해서만 추가 질문들을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면접 초반 10분 정도에 준 첫인상을 나머지 40분 동안 뒤집은 지원자가 그리 많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당시엔 주어진 상황 하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느꼈지만 정말 이 책에 나왔던 사례 그대로 행동했던 셈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단지 종결욕구에 대해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불확실함 속에서 성공할 수 있고, 혹은 심지어 불확실함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세상엔 잠시 성공한 것처럼 보이다 몰락한 기업들의 사례도 많고, 반대로 실패 후에 다시 성공가도에 오른 기업들도 많다. 성공 후 실패하는 기업은 성공에 빠져서 도대체 어떤 이유로 성공했는지, 어떤 부분을 좀 더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않으며, 실패 후 성공하는 기업은 반대로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며 접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성에서 확실함을 찾았다며 마음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픽사’는 내놓는 영화들이 연속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자신들이 성공하는 법에 통달했다고 여기지 않고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때 픽사의 경영진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경영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기업은 위험에 빠진다’고 이야기했다.
불확실성은 바로 이러한 의문을 제기해준다. 즉 불확실함을 어떻게든 확실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결욕구에 쫓기지 말고 혼란을 활용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모순되고 모호한 경험을 접했을 때 ‘추상화’ – ‘조정’ – ‘동화’ – ‘확인’ 뒤에 오는 다섯 번째 반응이 바로 창의력이라 주장한다. 이를 조합(assembly)이라 불렀는데, 삶 속의 불확실함을 수용한 뒤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든, 1970년대의 뉴욕이든, 예술 창작이 활발했던 시기가 사회적으로 대격변이 일어났던 시기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이 부분은 나에게 꽤 중요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처음에 밝혔듯 나는 원래 내 생각과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 (불편한) 유형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경영서와 자기계발서에서 권하듯 항상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전개되고, 몇 번의 이직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의 불편함도 차치하고 과연 계획대로 확실함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긴 한 것인지 고민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약간의 위로를 느꼈다고나 할까. 불확실함을 통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이 꼭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 불확실함을 어떻게든 줄이려는 종결욕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도록 이끌 수 있다는 점은 앞으로 내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덧
돌이켜보면 결국 그때 채용했던 직원들은 1년내 퇴사율이 꽤나 높았다. 당시엔 ‘역시 지우링호우(90后, 1990년 이후에 태어난 중국인들을 일컫는 말. 개성이 강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들은 어쩔 수 없어’ 하며 넘겼지만, 이 책의 조언대로 성급하게 결정해 버리지 않고 충분히 고민하고 뽑았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