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가운데 자수성가해서 조그만 사업체를 경영하는 분이 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우연히 은행구좌 비밀번호 얘기를 하다가 그로부터 뜻밖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거래은행 비밀번호가 전부 ‘수인번호’라고 했다. 한때 경제적 궁핍을 견디다 못해 남의 물건에 손을 댄 탓으로 잠시 구치소 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때의 잘못을 잊지 않기 위해 구치소 시절의 수인번호를 은행 비밀번호로 쓰고 있다고 했다. 이 얘기를 발설한 것은 처음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광야’ ‘청포도’ 등의 시로 유명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李陸史)는 본명이 이원록(李源祿)이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하던 그는 1927년 국내에 잠입했다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베이징과 서울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다 1943년 4월 서울에서 검거돼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는데 이듬해 건강이 악화돼 끝내 베이징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아호인 ‘육사’는 대구형무소 시절 수인번호 ‘264’에서 따온 것이다.
지난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영화 ‘밀정’의 실제 주인공인 김시현(金始顯) 의사 역시 의열단원 출신이다. 김 의사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다가 6차례나 일경에 체포돼 무려 15년여를 감옥에서 보냈다. 김 의사는 거사-체포-투옥-석방을 수차례 거듭하면서도 해방 때까지 변절하지 않았다, 그의 아호는 하구(何求)였다. 원래는 학우(鶴右)였는데 수감 시절 일본인 검사가 “(너의 독립운동은) 도대체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차라리 하구(何求)가 좋겠다.”고 빈정대자 아예 하구(何求)로 바꾸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결정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원의 영장 발부로 지난달 31일 새벽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전해 듣자 그는 검찰청 대기실 부근 화장실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올림머리’를 풀고 화장도 지웠다. 구치소에 도착해서는 신원 확인 후 신체검사를 받고서 여성 미결수에게 지급되는 연두색 수의로 갈아입었다. 이어 자신의 이름과 번호가 적힌 흰 카드를 들고 정면, 좌·우, 뒷면 사진을 촬영했다. 소위 ‘머그샷’이다. 그의 수인번호는 503번. 이제 그는 이름이나 직함 대신 미결수 ‘503번’으로 불린다. 신변도 법무부가 ‘관리’하게 된다.
보도에 따르면, 독방에 들어가기 직전 그는 한동안 문 앞에 서 있다가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그간 검찰 및 특검의 조사, 청와대 압수수색 등을 한사코 거부해온 그였다. 게다가 그는 1원 한 푼 받은 게 없다는 식으로 자신은 죄가 없다고 강변해 왔다. 이처럼 죄가 없다고 주장해온 몸이 감옥 문 앞에 섰으니 분통이 터질 일이 아니었겠는가. 그는 가슴에 붙인 ‘수인번호 503’을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죄수 신분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 싶다.
혹자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두고 동정론, 혹은 반론을 펴기도 한다. 전직 대통령 신분에다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이유만으로 그에게 동정을 펴기에는 너무 한가해 보인다. 그가 지은 죄의 가짓수가 무려 13가지나 된다. 죄질 또한 좋지 않을뿐더러 그의 처신은 국민적 분노를 사고도 남음이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걸 보고서 어떤 이는 배신감을 넘어 자괴감마저 든다고 했다.
그의 구속은 무덤 속의 법전을 되살려 낸 셈이 됐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그동안 마치 사어(死語)와도 같았던 말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도 이번에 제대로 살아났다. 그가 평소 그렇게 강조해 마지않던 법치주의의 진면목이다.
검찰은 4월 중순경 박 전 대통령을 기소할 예정이며 본격적인 재판은 대선 이후에 시작될 모양이다. 법조계에서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작량감경사유가 없어 적어도 징역 15년가량의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런데 채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사면’ 얘기가 나온다. 이는 촛불민심에 대한 모독이다. 자제할 일이다.
원문: 보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