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
아침, 낮, 밤 가릴 것 없이 잠이 많은 나로서는 알면서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 명언 중 하나. 16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역사가, 골동품 전문가, 지형학자였던 윌리엄 캠든(William Camden)의 말로 늦잠 좀 자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문장이다. 그의 이름을 수식하는 많은 타이틀을 봐서는 한 재능(+욕심·사명) 하셨던 위인이셨던 게 틀림없다.
연구, 조사, 기록을 반복하는 일의 특성상 하루 24시간에 기본 수면시간 5~8시간을 제외한 16+시간이 당연히 부족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것이 개인의 능력 최대치를 끌어내는 최상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과거를 한번 들여다보자. 아침마다 이불 속에서 5분만, 10분만 하며 잠을 구걸했던 내가 있다. 이제 와 되돌아보면 해가 뜨기도 전부터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가게에 나갈 채비를 하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참을성 많은 우리 엄마도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는 언성을 높이며 나의 몸에 돌돌 말려있던 이불을 홱 걷어버리곤 했었다. 어떻게든 밥을 먹여 학교에 보내려고 했던 엄마의 바람, 나의 철없음이 두 눈과 귀를 막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식사보다 잠이 좋았던 때, 감히 입안에 들어가는 맛난 벌레 따위와 꿀보다 달콤한 늦잠을 비교하다니! 수년이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맞는 말임과 동시에 아주 모호한 말이라는 걸 깨닫는다. 저 문장이 조금만 더 구체적이고 명확했다면, 좀 덜 자고 좀 더 일찍 일어나 벌레 맛을 좀 봤을 텐데.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은 시간이 많다. 그 시간 동안 더 열심히 벌레를 찾으면 하루를 늦게 시작하는 사람들보다는 많은 벌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빨리 일어나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일찍 일어날 수 있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벌레를 잡을 수 있는 것인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내가 직접 부딪혀보고 답을 얻는 수밖에 없었다. 일찍도 일어나 보고 늦게도 일어나 봤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고자 어떤 때는 아침 7시에 회사에 도착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11시가 다 돼가는 시간에 출근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보니 피부에 확 와 닿은 사실 하나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긴 잡는다는 것이다.
1. 얼마나 일찍 일어나야 하는가?
통계, 확률, 비례/반비례와 같은 단어들을 보자. 세상에 단 한 명도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지만, 이 세상은 비슷한 유형의 행동들로, 비슷한 결정을 하는 사람들로, 비슷한 삶의 방식들로 지어져 있다. 회사마다 비슷한 출·퇴근 시간, 학교마다 비슷한 등·하교 시간, 가족마다 비슷한 식사시간이 있는 것처럼.
출근하는 사람들로 인해 교통 체증이 심각한 아침의 고속도로, 집을 나서는 5-10분의 차이로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30분 이상씩 차이가 난다. 붐비는 시간은 매일 같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그 붐비는 시간에서 5분만 일찍 출발해도 좀 더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할 때 보면 9시를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주차장 사정은 하늘과 땅 차이다. 결국, 다수의 사람이 다 비슷한 선택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9시 출근이라면 9시 도착을 목표로 삼는 선택.
그래서 전보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고 싶다면, 어제보다 5분 일찍 일어나 보자. 매번 신년 계획을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작년에 비해 턱없이 높은 목표치를 설정한다. 1월이 끝나기도 전에 방전해버리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매일 8시에 일어나는 것도 온몸이 쑤시는데, 갑자기 새롭게 태어난 사람처럼 새벽인지 아침인지도 분간이 안 가는 6시로 알람을 맞추어 놓는다? 알람을 듣지 않겠다고 선전포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회사 전체가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은 아침 9시인데, 7시에 출근하는 것도 벌레를 잡는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하지만 회사나 학교라는 건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곳이다. 개인 사업장과 홈스쿨링과는 다르다. 개인의 의도에 맞게 지혜롭게 시간을 책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사에게 좀 잘 보일 필요가 있다고? 8시면 충분하다. 거래처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그거 다 알고도 회사가 정한 시간이 9시다. 8시면 충분하지 않은가? 전 상사는 매일 6시에서 6시 30분 사이에 출근했는데 아침형 인간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 회사에 머문 지 25년 차가 돼가는 인물이기도 했다. 회사 전체가 그를 아침에 가장 일찍 도착해서 커피 만들어 놓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한 번도 못 봤다.
짧은 시간이면 된다. 5분에서 10분, 10분에서 30분. 작은 변화로도 일상은 크게 달라진다.
2. 어떻게 일찍 일어날 수 있는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매일 힘들어하는 나에게 부모님이 주신 조언은 ‘저녁에 빨리 자라’는 것이 유일했다. 둔감했던 어릴 적보다는 생활 리듬과 신체의 변화를 더 예민하게 느끼는 요즘 수면시간이 11시를 넘느냐 넘지 않느냐에 따라 기상시 기분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침에 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 것들에는 수면 시간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수면을 연구하는 사람 중에는 잠들기 전 생각이 아침의 기분을 좌우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하기’가 꾸준한 훈련을 거친 후 꽤 효과적인 기상 습관이 된다고 믿는 이유는 지난겨울 내가 직접 맛보았던 신비한 경험 때문이다. 당시 모바일 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너무 궁금했던 나는 유럽에 사는 프로그래머 한 명과 인연이 닿아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잔인한 시차 때문에 그가 일을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이른 새벽이었고 원만한 소통을 위해서는 늦어도 새벽 5시쯤에는 눈을 떠야만 했다.
아침잠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도 그때 맞추어놓은 알람에는 벌떡벌떡 잘만 일어났다. 2주 동안 꼭 그 시간에 미팅해야만 했고 가족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혼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내 방안에서 들려오는 타자 소리에 놀라 방문을 열고는, 믿을 수 없는 그 장면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엄마의 커진 두 눈. 나는 엄마의 그 표정에 나 자신에 대한 왠지 모를 자랑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물론 프로젝트는 끝났고 새벽 기상은 비정규직의 종이 한 장짜리 계약서처럼 일정 기간 후 힘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삶의 이유라든가 미래의 계획, 이루고자 하는 꿈과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우리를 눈뜨게 한다. 이불에서 나오게 하고 침대에서 일어나게 한다. 몸의 모든 힘을 등에 모아두는 밤이 지나면 두 발바닥에 중심을 두는 아침이 온다. 그곳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나에게 필요한 수면시간을 채우는 것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잠들기 전 당신이 하는 생각이 기상 시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글을 추천한다.
3. 어떤 벌레를 잡을 것인가?
상한 벌레, 맛없는 벌레, 내 입맛엔 안 맞는 벌레도 많은 세상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본인이 더 많은 벌레를 잡겠다고 방해하는 경쟁상대도 없네? 시간도 많네? 지난밤 사이 소화가 싹 되어서 배도 고프네? 그렇다고 막 주워 먹다가는 배탈 난다.
“일찍 일어나면 벌레를 먹을 수 있대~” 하고 뒤에 가서 소문내는 사람 중에는 정확한 시간과 벌레의 종류와 그에 따른 혜택을 알고 정보전달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침 언젠가 일어나기만 하면 무슨 벌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확실히 일어날 일인 것처럼 잔뜩 꾸며 소문내는 사람이 있다.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부지런히 가려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천하지 않는 명언은 쓸모없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나에게 물리적, 정신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이 확실하다면, 다음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내가 해야 할 일을 정해야 할 차례이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찾는 것이다. 부모님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던 코흘리개 시절은 아쉽지만 끝났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침에는 두 개 이상의 알람을 설정해놓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 첫 알람에 눈이 떠지는 것이었다. 집에서 회사까지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라, 늦장을 피워도 9시 전에는 200% 도착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아침이라니! 나는 라임을 짜 넣은 뜨거운 물 한잔을 만들어 놓고, 세수를 한 뒤 소파에 앉았다. 어제의 일상을 플래너에 정리해서 기록하고, 이번 주 내로 사야 할 것과 봐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어젯밤 만들어 먹고 남겨 놓은 어묵국을 마시고 화장대에 앉았다. 밀린 영상 하나를 틀어놓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어찌나 마음이 차분하고 좋던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식 동향을 훑고 밀린 이메일을 체크하는 것도 물론 영화만큼 멋지지만, 나에게 이른 아침은 ‘여유’라는 벌레를 잡게 해준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차를 끓이고, 읽다만 단편소설을 몇 문단 더 읽고, 간단하지만 든든한 식사를 하고, 몸에 꼭 맞는 옷을 골라 입고, 국가에서 정해놓은 제한속도를 넘기지 않고도 사무실에 일찍 도착할 수 있는 여유.
값이 비싸고 모습이 웅장한 벌레가 아니어도 된다.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 건 값어치나 크기에 비례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값을 매길 수 없고, 너무 작아 쉽게 지나치곤 하는 소소한 것들 때문에 우리는 매일을 이렇게 살아간다.
윌리엄 캠든의 말 중에는 마음에 와 닿는 또 다른 명언이 있다.
바다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줄 생선이 있다.
The sea hath fish for every man.
그러니 우리, 비교하지 말자. 어떤 잘 나가는 예술인이나 사업가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다고 해서 갑자기 내 하루 계획을 뒤집는 것과 같은 미련한 짓 대신, 나에게 맞는 시간과 방법을 찾자. ‘오랜 친구가 새 핸드폰을 샀으니까 나도 새 걸로 바꿔야 해’ 같은 이상한 비교의식도 버리자. 드넓은 바다에는 각각을 위한 생선이 있다는 캠든의 말처럼,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아침이, 당신만을 위한 벌레가 있다.
내일 혹여 오늘만큼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해도 나를 구박하진 않을 생각이다. 내가 먼저 나를 위해 살아야 후에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 혼나는 건 학교 직장 가정에서 나와 가까운 스승님, 상사, 부모님들로 충분하다. 굳이 나까지 두 팔 걷어 나를 혼내는 건 다른 상황들에 더 적합하다. 나 자신을 응원하고 다독여야 할 2017년, 올 한 해도 맛있는 벌레 많이 잡아먹고 하늘 높이 나는 새가 되어 보자.
원문: Yoona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