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만 가지고도 인도적이고 (세계) 평화적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의 마음과 기분은 매일매일이 다를 만큼 복잡 미묘하다. 나의 정신은 나의 몸통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텔레파시라던가 마인드 리딩 같은 것들은 공상과학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시간과 정성을 들여 함께하는 사람이 나와 정확히 같은 취향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상 모든 연애가 조금 쉬워질는지 모른다.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 건네기 전에 그 사람의 관점이 이해가 가고, 굳이 소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눈치채고, 같은 인생의 목적으로 미래를 향해 손 꼭 부여잡고 달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그렇지가 않다.
그 사람의 관점보다는 나의 관점으로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 천 배, 만 배 더 쉽고 익숙하다. 정자세로 상대의 눈알만 쳐다본다고 해서 마음이 읽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목적? 동과 서, 남과 북의 거리처럼 멀고, 미래를 향해 가는 속도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독수공방? 독고다이? 머리 밀고 산으로 들어가기? 이들이 당신의 목표가 아니라면 연애를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노력 없는 결과? 혹여나 어느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지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제발 나에게도 알려주시길.
책상머리에 앉아 시험공부는 해봤어도, 자기계발 서적에서 ‘맘에 드는 이성, 애인으로 만들기’는 웃긴다며 장난으로 읽어봤어도, 내 눈앞에 있는 내 사람을 위해 나의 생각을 바꾸고, 자세를 고치고, 언어를 다듬어본 적이 없다면, 정말 추천하는 4가지 방법이 바로 여기 있다.
1. 기정 사실화하기 (으레 짐작하기)
여자의 촉이 좋다고 해서 나는 내 촉을 믿으며 살아왔다. 꽤 많은 순간, ‘거봐, 내 이미 알고 있었다구!’ 라고 중얼거렸던 걸 보면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분도 한 촉, 하셨던 분인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촉을 믿는 것에는 엄청난 대가가 따른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살아가다 보니, 사람은 모든 사실과 정보를 정직하게 기억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기정 사실화하는 것들, 으레 짐작하여 진실이라고 치부하는 것들이 사실은 진실이 아닐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의 착각을 사실이라고 우길 때, 그것을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상대방과의 마찰이 일어난다.
가끔은 몰래카메라, 처럼 짠하고 나타나서 우울해 있던 연인을 위로해주는 것도 깜짝 선물일 수 있겠다. 하지만, 질문과 답 없이, 정확한 대화 없이 상대방의 상황과 의견과 기분을 으레 짐작하는 것, 때때로 위험할 수 있다.
내 맘도 잘 모르는 세상, 남의 마음은 더 알기 어렵다. 감정이 복받치고 화가 난다고 해서 상대의 입장을 내 마음대로 계산하고 상황을 결론 내리는 일. 조금은 뒤로 미루고 우선 대화부터 하자.
2. 질문에 대답 안 하기
말 그대로, 질문에 대답 안 하는 것만큼 답답한 것도 없다. 옛날 분의 캐릭터를 그대로 갖고 살아오신 울 할머니를 봐도 그렇다. 전화통화를 할 때면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시기 일쑤였다.
뭐라도 물어볼라치면,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흘러나오는 뚜, 뚜, 뚜, 소리. 나와 할머니의 사이는 연인도, 친구도 아닌, 어쩌면 가족이라는 이름도 넘어설 만큼 뭔가 다른 사이였기에, 내 질문에 대답을 스킵하는 할머니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인관계에서는 매우 다른 이야기가 된다.
다툼이 잦은 연인들을 보라. 그들의 싸움이 최고조에 달았을 때, 서로의 말의 대답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서로에게 전달하려고 소리를 치는 것처럼 보인다.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건, 그 사람의 마음을 나의 마음처럼 소중히 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의 잘못된 습관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문자를 통해 대화를 나눌 때, 간단한 질문 하나도 심플하게 대답하기보다는 또 다른 질문으로 답을 하곤 했다.
예를 들자면, ‘언제 끝나?’라는 상대의 질문에 ‘7시면 돼?’라는 질문으로 답을 한다. 나의 의도는 ‘7시 전이면 끝나니까 7시쯤 보면 좋겠는데 너는 7시쯤이면 끝났으려나?’ 였던 것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끝나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저녁 계획을 세우려고 한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질문에는 답을 하자. 당신의 말이 나에게 참 중요하다, 나는 당신을 집중하여 듣고 있다, 라는 표현으로.
3. 잊어버리기 (건망증)
나이 얼마나 먹었다고,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졌다. 초등학생 때 기억을 잊어버리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일주일 전 혹은 엊그제 일을 잊어버린다거나, 약속을 깜빡한다는 것이 반복되면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사는 게 너무 바빠서, 일반적이지 못하게 정신이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최근이라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한 질병이 아닌 이상, 중요한 사람과의 소중한 관계에서는 놓치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일들과 약속들이 있게 마련이다.
스마트폰은 어디다 쓰나? 이럴 때 써야지. 달력을 활용하자. 수첩을 들고 다닌다면 기록을 해보는 건 어떤가? 일기만 쓸 게 아니라, 좋아하는 책의 어떤 구절만 옮길 것이 아니라, 나를 웃게 했던 그 사람의 한마디, 인상적이었던 장면, 함께 행복하게 나누었던 미래에 대한 계획들을 적어놓자. 분명 당신의 기록에 감사하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다.
4. 흐지부지하게 의사 전달하기
성차별 없는 세상, 성평등을 주장하는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구식이라고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이 세상에는 여성에 대한 옛 인식들이 아직도 팽배하다. 또한, 여성들 자신에게 이러한 인식들이 아주 많이 남아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연약하기 때문에 상처도 더 많이 받고 움츠려 드는 것이다, 라는 생각들이 우리 안에 있다. 적어도 나는 관계 속에서 이런 생각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관계라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 빠지면 완전히 없어져버린다. 두 사람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없어도 이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요구와 필요를 소통하기를 어려워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나를 어떤 여자로 생각할까, 내가 이런 것을 주장하면, 나를 어떤 사람으로 평가할까, 같은 헛된 걱정들.
대화 속에서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면, 그 기분을 표현해야 한다. 상황 속에서 불평등하다는 느낌이라면, 그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꼭 필요한 대화들이 진행되어져야만 한다.
이러한 시도가 없이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나를 한 사람의 존재로 여겨주지 않는다고 불만만 한다면 그건 당신의 손해다. 게다가 정확한 의사표현으로 당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상대라면, 지금이라도 ‘안녕’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랑을 지키는 것에 비교하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쉽다. 연애는 나와 상대에 대해 배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이 닥쳐오기도 하고, 나를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려운 감정들도 맞닥뜨리게 된다.
끝이 어떤 모양이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기본 매너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사람을 만나 특별한 관계를 갖기로 결정한 나 자신을 향한 존중 때문이다.
숨이 턱 막힐 만큼 슬픔이 몰려오고, 뚜껑이 열릴 만큼 화가 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지금껏 혼자만을 위해 혼자 살아온 내가 누군가를 위해 나의 옛 습관 들을 버린다는 것이 그리 쉬울 거라고 생각했었나?
내리막길도 다양한 모양을 한다. 돌 길일 수도 있고, 새로 아스팔트를 깐 도로일 수도 있다. 멀리서는 내리막길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평평한 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도깨비도로처럼 내리막길로 위장한 오르막 길일 수도 있다.
우리는 넘어지면 일어나게끔 설계되어 있다. 실패하면서 성공을 배우고, 상처가 아물면서 더 튼튼해진다. 잘못된 습관 때문에 까다로웠던 시기는 꼭 지나가게 되어있다.
당신에게 소중한 지금의 관계. 그 관계를 성립하는 당신 자신과 그 사람을 위해, 중요한 것을 지키는 올바른 싸움이 시작되기를. 건투를 빈다.
원문: Yoona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