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든 것은 다르다. 이름도, 생김새도, 태어난 도시도, 평생을 걸쳐 사용한 모국어도 다 다르다.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만나 연애를 시작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척척 맞아떨어진다면 그건 세계 2위의 장난감 회사에서 만든 레고지, 사람과 사람이 시작한 관계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대화의 폭이 넓은 것, 관심사에 대해 늘 연구하는 것,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우리는 함께 가지고 있다. 읽고 쓰는 것을 즐기는 것도, 언어에 대한 열정도, 새로이 알게 된 것을 나누고자 하는 따뜻함도 비슷하다. 그래서 정작 서로에 대해 아는 건 신상정보뿐이었을 그 첫 만남이 두 번째 만남이 되고 세 번째 만남으로 이어져 결국 ‘연애’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서로가 어느 정도의 편안함을 공유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너의 작은 변화
마음이 복잡한 무슨 일이 생겼다고 했다. 학문을 습득하는 곳이자 수입을 창출하는 너의 학교에서 예상 못 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그래서 이틀을 넘어 사흘째 너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그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듣는 나의 귀도, 나의 심장도, 나의 머리도 무거워졌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아도 되겠냐는 나의 질문에 너는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며 설명을 미루었다.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이런 종류의 답답함이 있었던 적이 있고, 그럴 때면 나 또한 설명보다는 정적 속에 들어가고 싶었으니까.
너에게서 이틀을 연속으로 좋은 아침, 이라는 문자를 받지 못했다. 4시간이라는 시차를 거침없이 뚫고 지나 장거리 연애를 했던 올여름 동안 거의 매일 나의 하루의 시작이었던 너의 아침 문자. 바쁜 것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다 이유가 될 수 있다며 나는 이해해보려는 나만의 노력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활용해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쩌다 보니 너의 감정이 나에게까지도 전달되어 나도 요 며칠 마음이 심란했다고. 아침 문자 이야기도 꺼냈다. 쿨한 여자 친구가 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또다시 종잇조각처럼 구겨져 버렸다.
너는 이런 상황이 되면 밖으로 표현하기보다 안으로 굽어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이해한다. 알겠다, 너에 대한 새로운 것을 나도 배운 것이다, 라고 말해주었다. 저녁에 만나기로 한 약속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몇 시간 뒤의 연락이 약속된 후 우리는 전화를 끊었다.
작은 행동의 변화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예외의 상황도 존재하는 것인데, 그런 상황의 특별함을 무시한 채 어떤 변화에만 너무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먼저 아침 문자를 보낼 수도 있지 않은가. 잘 잤어? 좋은 아침, 오늘은 뭐해? 좀 있다 얼굴 볼까? 등의 달콤한 제스처를 내가 먼저 보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상황이 예상외로 흘러가고 생각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면 진짜 아무 생각도 아무 계획도 없이 집에 가만히 있고 싶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 맞는 말이라는 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인식하고 있다. 만나기로 한 약속을 다시 고민해봐야 할 정도로 내가 보통 때와 다른 반응을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과도기적 현상이다.
음식을 씹어 삼켜 소화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 길이 익숙해지고 모르는 사람과 마주쳐도 편안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28년을 살면서 처음 만난 너라는 사람에게 나의 감정을 나누어주고, 나의 시간을 할애하고, 나의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 좋아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일련의 과정들이 사실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졌어야 하는 일들이었던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에 반응하는 모습과 너의 반응하는 모습이 같을 수 없고, 일을 해결하는 방법과 그 순서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불편한 상황을 만난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네가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성실하게 나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준비가 되었을 때, 너의 이야기를 나누어줄 너를,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나는 너의 옆자리에 앉아 너의 눈을 보며 너의 손을 다독이고 너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할 것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과정이라는 증거
오늘 저녁에 너의 얼굴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것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직 나의 몸 어느 부분들이 시큰한 것도 사실이다. 어서 속 시원히 말해주고 함께 머리를 굴려보면 안 되나, 라는 질문이 없다고도 말 못 하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는 새롭게 형성된 우리의 관계가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과정의 증거라는 것을.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집을 나서서 10km를 달렸을 너. 집에 돌아온 후 소파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보고 있을 너에게, 나의 마음을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고야 말았지만 나는 이 글을 쓰며 또 나에 대해, 너에 대해, 우리에 대해 배웠다.
우리의 관계가 나로 하여금 글쓰기를 멈추지 않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소중한 하나의 과정 속에 있다는 증거임에 감사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요즘 세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어제 만나서 오늘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게 어떻게 진짜 사랑일 수 있냐고. 사랑은 시간을 들여 쌓아가는 것이라고, 혹은 그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은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것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끌어가는 단전의 힘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더운 어떤 방의 온도가 너에게는 적당하게, 나에게는 쾌청한 바깥의 날씨가 너에게는 슬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처럼.
살아온 세월만큼 살아갈 세월 동안 우리는 늘 다른 언어와 표정, 반응과 표현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이 살아감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가는 과정 속에 있다면 우리는 괜찮다.
아니, 괜찮은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연애를 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원문: Yoona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