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재학생이 에어컨 실외기 발전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뉴스가 떴다. 전력난이 가중되는 요즘 에어컨 사용을 통해 전기를 얻겠다는 혁신적이고 창조경제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어이 없는 이야기는 이전에도 있었다.
1. 이게 처음이 아니다.
2008년 겨울, 서울시가 ‘아하에너지’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환풍구 발전 시스템에 300억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각계의 뜨겁고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 적이 있다. 네티즌들이 반대한다는 이유 말고도 다양한 장애물들 때문에, 서울시의 해당 사업 계획은 아하에너지 대표 허현강 씨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면 ‘아하에너지’를 검색해 클릭 한 번으로 얻은 지식이 무거울… 이 아니고, 아무튼 충분히 많은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네이버 실검 1위에 아하에너지가 올라갈까 두려운 분들을 위해 논란의 핵심을 간단히 요약해드리면, 1. 당시 아하에너지가 개발한 환풍구 발전 시스템은 ‘발전 시스템’보다는 ‘방전 시스템’에 가까웠다. 2. 너무나도 위험했다. 3. 네티즌들이 반대한다. 정도가 되겠다.
2. 영국 다국적 투자 기업이 3,70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그러나 굴욕에 굴하지 않은 아하에너지 사장 허현강은 2010년 영국의 다국적 투자 기업인 델라모어 그룹과 3,700만 달러 규모의 투자 협정을 체결하면서 J커브의 반환점을 도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다국적 투자 기업 델라모어 그룹’이라는 데는 어떤 데냐? 공식 홈페이지와 인크루트 회사정보를 보자. 아무리 봐도 여기가 수천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할 수 있는 회사로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 회사는 영주 산삼 테마단지와 1,700만 달러 규모의 투자 협정… 의 탈을 쓴 희망고문을 가한 적도 있다고 하고 2012년 각종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스위스로 도주한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한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이건 흔하디 흔한 세미-사기꾼의 소행에 불과한 것 같다.
3. 쌀국열차의 성스러운 엔진? 영구 없다.
위에서 소개한 ‘아하에너지’의 ‘환풍구 발전 시스템’ 이야기에서 올해 7월 말 전북대 환경공학과 학생들이 개발했다는 ‘에어컨 실외기를 이용한 발전 시스템’의 향기를 맡으신 분이 많으실 줄로 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결국 이공계 방면에서는 낡도록 해먹은 ‘영구기관’의 이야기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전북대의 학생들은 “상용 중인 자석 중 자성이 가장 큰 ‘네오디움마그넷(Neodymium Magnet)’을 부착한 코일을 실외기 모터에 고정시키는 방법으로 시간 당 10.8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러나, 에어컨 실외기 모터에 발전기를 달아 전력을 만드는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봐서는 발전 시스템이 아니라 방전 시스템이다. 이유를 설명하겠다.
우리는 자석과 코일을 이용한 발전 원리에 대해 중학교 2학년 물리 시간에 배운 적이 있다. 옴의 법칙이니 V=IR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전선이 둘둘 말린 구멍에 막대 모양의 자석을 넣었다 뺐다(-_-) 하면 연결된 검전기에서 전류가 흐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는 것만은 반드시 기억날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개발된 발전(이 아니라 방전!) 시스템은 패러데이의 법칙과 렌츠의 법칙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장치인데, 고정된 자석과 모터에 붙은 채 돌아가는 코일의 상대적인 움직임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전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즉 전북대에서 개발한 시스템은 “실외기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전력이 생산”된다는 말이다.
전력이 단순히 실외기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생산된다는 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도 상관 없다. 실제로 이들이 개발한 시스템은 실외기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한전에서 보내준 전기로 돌아가는 게 실외기다. 이 실외기가 움직임에 방해를 받으면 당연히 에어컨의 전반적인 성능도 떨어진다.
그러니까 이들은 원래 우리가 돈 내고 쓰던 전기로 돌아가던 에어컨의 거의 유일한 기능(냉방. 김연아가 나오지는 않는다)을 방해하면서 발전을 하겠다는 건데, 이 시스템이 최근 주최된 “대학생 종합설계경진대회”에서 우수상까지 받았다. 발전이 아니라 방전인 이 시스템은 게다가 에어컨의 오작동을 초래해 각종 사고의 위험성까지 안고 있는데, 국내 최대 환경관련 학술단체인 “대한환경공학회”가 이런 위험한 아이디어를 두고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린 건…
거기에 실제로 전력이 얼마얼마 생산되었다느니, 생산된 전력을 환산했더니 연간 얼마의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도 있더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매체에서 전하고 있다. 실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무리 – 회사 홈페이지에 가면 올해 초에 있었던 주주 총회 사진을 회사 홈페이지에서 구경할 수 있는데 묘하게 해상도가 떨어지는 이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네티즌들이 아하에너지의 사장 허현강을 “제2의 허경영”으로 평하는 이유를 수긍할 수 있다, 고 글을 마무리하면 창조적인 아이디어에 인생을 건 사람에 대한 모독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