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죽어가는 환자에게 산소 호흡기를 떼어버리는 일이 올바른 일인가. 생명윤리와는 별개로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동일한 이슈가 존재한다. 당장 정부과제 또는 정부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동료가 떠나고 사업이 무너지고 망할 수밖에 없는 회사들. 정부지원이나 정부과제 없으면 존속이 불가능한 스타트업들이 양산된다면 정부는 스타트업 관련 정책의 방향성을 제고해봐야되지 않을까?
정부가 벤처기업에 직접 돈을 쥐여주는 정책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합니다. 자금지원은 어떤 문제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됩니다. – 레비 샤피로 이스라엘 교수
스타트업 바닥에 들어와서 짧지만 강렬했던 3여 년간을 지나쳐보니 정부과제에 얽매여 있던 많은 회사들을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회사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과제에 합격하여 2년짜리 R&D 과제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겠는가
대략의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았다. 지원서 작성, 지원서 통과, 오리엔테이션 참석, 멘토링캠프 참가, 발표준비 및 평가, 항목별 사업비 진행 서류작성, 참여 연구원 이력서 등록, 사업비영수증 처리 등… 엄청나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엄청난 시간과 리소스가 투입이 되었고, 사업비의 대부분은 항목과 용도가 정해져 있어 정작 써야 될 곳에 돈을 쓰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또한 쓰지 않아도 될 곳에 돈을 쓸 수밖에 없는 일이 이어졌고, 다른 이에게 업무를 전가할 수 없었던 대표는 홀로 몇 달을 끙끙대며 사업과 서류 준비를 병행하며 줄담배만 피워대고는 하였다. 구성원들에게 사인을 받아야 할 서류와 증명해야 될 문서들 틈바구니에서 1년이 지났고, 중간 평가를 하기 위한 실사단이 방문하였을 때는 대략 20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A4 용지가 3천여 장이 쌓여있었다.
인과응보의 결과처럼 그에 걸맞은 책임이 뒤따른다. 다만 정부가 내세우는 창업 생태계 활성화·스타트업 육성에 있어서 이런 접근방식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강력한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던 순간이었다.
고백컨데, 그런 전문가들이 이미 오래전에 등장하였다는 것은 사업이 망한 뒤 나중에 알게 되었다.
순진하거나 영악하거나
절차와 과정이 복잡해지는 연유에는 정부과제만을 위한 좀비기업과 헌터들을 (사업에는 관심이 없고 지원금에만 관심이 있는) 막기 위함이고, 점점 이 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해질 수록 온전히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기업가들 보다, 전문적인 사냥꾼들에게보다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줄 뿐일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환영할 일이지 않겠는가?
정부가 시장에 자금을 직접적으로 투입할수록 경쟁력 없이 목숨만 연명하는 ‘좀비 스타트업’, ‘정부과제 헌터’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어렸을 적 많은 어른들이 동일한 우화를 들려주지 않았나. 생선을 주지 말고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창업 지원 수단은 자금 지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느낀 바로는 한국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은 너무 자금 지원에 맞춰져 있다고 본다. 그간 여러 곳의 사례를 본 결과 기금 지원은 스타트업이 겪는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못했다. 그들에게 아, 자주 조금의 시간을 벌어주었을 뿐이다. 스타트업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특히 정부가 스타트업에 직접 돈을 지원하는 사업은 스타트업이 가지고 있는 사업상 한계와 경영진의 낮은 자질문제 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올바른 승리, 그리고 올바른 패배
스타트업의 성공은 동전을 던져 20번 앞면을 나올 확률과 동일하다고 한다. 결국 스타트업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데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 뛰어난 기업이 탄생하는 데 희망이 있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실패자와 망한 기업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얼마나 이 씬에 참여한 구성원들. 피와 땀을 갈아 넣은 이들을 위해 안전망을 깔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보다 과감한 도전, 빠른 실패와 축적된 경험을 위해서 말이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과감하게 자신들의 역량을 모두 뽐낼 것이 아닌가.
원문: 정민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