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보면 과거의 내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 10년 전, 20년 전의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보다 나은 결정을 했을 테고, 보다 나은 지금의 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선물하고 싶은 과거의 내 모습은 좌절한 나일 수도, 슬픔에 젖어 있는 나일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에고라는 적』(흐름출판)을 선물하고 싶은 과거의 나는 작은 성취에 우쭐해 하던 때의 나다.
그러고 보니 한때 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성취에 취해 겸손함을 잃고 기고만장하거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시험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 들어가기 어렵다는 회사에 취직했을 때,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통과했을 때.
『에고라는 적』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Ryan Holiday) 역시 젊은 시절 성공을 구가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모양이다. 그 인고의 세월 끝에 그의 성찰이 가닿은 곳은 다름 아닌 자기 내면에 있는 ‘적’이었다. 그걸 일러 저자는 ‘에고(ego)’라고 규정한다. 얼마나 절절한 깨달음이었던지 저자는 ‘에고는 나의 적이다(EGO IS THE ENEMY)’라는 문구를 문신으로 새기기까지 했다.
저자가 말하는 에고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에고가 아니다. 현대 심리학에서 에고티스트(egotist)는 자기중심주의자를 말한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위험할 만큼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사람을 이르는 용어다(편집자 주: 에고티스트는 자존심을 위해서 자신의 욕망이나 이익을 희생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이기주의자라는 뜻의 에고이스트와 구별된다).
반면 이 책에서 말하는 에고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을 의미한다. 거만함이 그렇고 자기중심적인 야망이 그렇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성마른 어린아이와 같고, 어떤 것보다 자기 생각을 우선하는 특성을 가진다. 합리적인 효율을 훌쩍 뛰어넘어 그 누구(무엇)보다 더 잘해야 하고, 보다 더 많아야 하고, 또 보다 많이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에고다.
에고는 어떤 부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물 중에는 악명 높은 자기중심주의자가 많았다. 에고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도록 추동해 왔고, 그들은 그 힘을 바탕으로 역사에 성공적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위대한 실패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 역시 자기중심주의자였다. 실제로는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니 확률로 보면 에고에 휘둘릴 때 성공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책은 역사 속에 등장하는 숱한 에고티스트를 소개하며 그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아물러 자신의 에고를 잘 관리해 역사의 승자 혹은 인생의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준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큰 업적을 세웠던 두 인물의 비교가 흥미롭다. 친구였던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와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자 중요한 인물이었다. 북부 연합군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던 이 두 사람은 전쟁 이후 제각기 다른 길을 걸어간다. 셔먼은 공직에 나서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자신은 원하는 것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며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의 에고를 확실하게 다룰 줄 알았던 그는 은퇴 후 남은 삶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보냈다.
한편 장군으로서 성공했던 그랜트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정치를 할 줄 몰랐기에, 그가 이끈 정부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하고 싸움만 일삼았던 무능한 정부로 손꼽힌다. 그랜트는 선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지만 워싱턴 정가에는 맞지 않는 인물이었고, 그 바람에 그는 너무도 쉽고 빠르게 망가지고 말았다. 그랜트가 두 번에 걸친 임기를 힘겹게 마치고 퇴임할 때 그의 뒤에는 온갖 비방과 논란이 남았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까지 원하며,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길 바란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자기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일단 그것을 얻고 나면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잊어버린다. 에고는 그런 식으로 우리를 이리저리 흔들어대고 마침내 우리를 파멸시킨다.
그랜트는 불과 예순세 살의 나이에 고뇌와 패배감 속에서 죽어갔다. 솔직담백하고 정직했지만 끝내 자기 자신조차 건사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떠돌다 삶을 마감한 이 시대적 영웅이 최후의 순간까지 비극적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이쯤 에고가 무엇인지 얼핏 감이 잡힌다. 에고가 작동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열정, 성공, 실패가 그것인데 그 말 자체의 역동성 뒤에는 자기 내면의 에고와 마주해야 한다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게 저자의 전언이다.
에고를 잘 관리한 사람의 예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일화지만 그 속에 담긴 진지함과 겸손함, 자기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순수한 열정은 에고의 유혹에 빠진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다.
미국의 기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인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의 젊은 시절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른 성공은 그의 에고와 자만심을 자극했지만 그는 에고를 극복하기 위한 독특한 노력을 이어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과 밤을 새워가면서 대화하는 것이었다.
너는 지금 막 일을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니 네가 지금 굉장한 인물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려라. 그렇지 않으면 흥분해서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냥 지금처럼 꾸준하게 나아가라.
무엇보다 에고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끝없이 공부하는 것이다. 자만의 반대는 겸손이지만 공부와 자신감은 동반 상승하는 짝꿍이다. 공부하는 자세야말로 에고를 극복하고 나아가 자기 인생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지름길이다.
갓 스무 살이 넘은 젊은 기타리스트 커크 해밋(Kirk Hammett)은 메탈리카의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스카우트 된다. 커크 해밋은 오랫동안 기타 연주를 해왔고, 꿈에 그리던 밴드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기타리스트로서 아직 본인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않았다고 겸손하게 생각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기타 선생을 찾는다.
해밋이 찾아낸 사람은 많은 기타리스트의 선생이자 스티브 바이 같은 천재들과 함께 일했던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였다. 새트리아니는 자신을 찾아온 해밋이 이미 훌륭한 연주자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기꺼이 그를 받아주었고, 그렇게 2년 동안 새트라이니와 해밋은 서로의 요구를 충족했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학생의 신분이 발휘하는 힘은, 단지 배운다는 사실이나 그 기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그 힘은 자기의 에고와 야망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선생이 자기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하면 에고가 작동할 수 있는 상한선이 생긴다. 에고가 날뛰지 않으니 학생이 고개를 숙이는 것은 겉치레가 아닌 진정한 겸손이다.
인생에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그 찾아온 기회를 단단하게 붙잡는 힘이 곧 내면의 에고를 다스리는 마음의 힘이다. 에고에 짓눌린 사람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의 소중함을 모른 채 우쭐해 하다가 손에 들어온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러고선 아직 오지도 않은 기회를 열망하며 맹목적 열정에 빠져든다. 손에 잡힌 기회는 성공일 테지만 그것은 또한 실패와 맞닿아 있다. 에고를 억누르는 힘이 없을 때 확실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