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에서 쉴 때 보글보글 끓인 라면 한 그릇이 그렇게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런데 시계를 보면 항상 밤 11시쯤이다. 알다시피 그 시간에 라면을 먹는 것은 몸에 별로 좋을 게 없다. 위장에 부담도 될뿐더러 자고 나면 얼굴도 붓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손은 어느새 냄비에 물을 끓이고 라면 봉지를 뜯고 있다.
이번에는 오전 11시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잠시 후 점심시간이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 중이다. 매번 느끼지만 먹을 곳은 많은데 정작 먹을 것이 없다. 비록 한 끼 식사지만 기왕이면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팍팍한 삶에 먹는 낙이라도 있어야 하니 말이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 동안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입맛 당기는 점심은 무엇일까.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결국 만만한 건 햄버거다. 자제를 한다고 하는데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결국 햄버거 런치 세트로 점심을 때운다.
패스트푸드가 몸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만큼 간편하고, 가격도 적당하고, 맛도 괜찮은 것을 마땅히 찾기도 어렵다. 결국 오늘 한 번만이라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건강에 대한 염려를 뒤로 밀어두고, 찝찝한 기분을 애써 억누른 채 패스트푸드를 찾아 나선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가장 빈번하게 마주하는 선택의 문제가 무엇일까. 아마도 ‘무엇을 먹을까?’에 관한 것 아닐까. 수렵 채집의 시대를 지나 농경과 산업화 시대를 거쳐서 거쳐 정보화 시대에 이른 오늘날에도 ‘오늘 뭘 먹지?’라는 질문은 여전히 일상의 중심에 놓여있다.
우리가 평소에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과정을 잠깐 살펴보자. 우리는 크게 두 가지에 기준을 두고 결정을 내린다.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맛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마치 저울의 반대편에 놓인 추처럼 대체로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내려가게 마련이다.
어떤 음식이 건강 위주인지 혹은 맛 위주인지는, 보통 그 음식 안에 있는 세 가지 성분으로 좌우된다. 바로 나트륨, 당, 지방이다. 나트륨이라는 말이 어렵다면 일상에서는 소금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마찬가지로 당은 설탕, 지방은 기름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우리가 손쉽게 접하고, 또 그만큼 쉽게 건강을 해치는 가공식품 대다수에는 이 세 가지가 과도하게 들어간다. 예컨대 햄버거나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가 그렇다. 흔히 ‘정크푸드(junk food)’라고 불리는 음식들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쓰레기 음식’인데 열량은 높고 영양가는 없는 음식을 말한다.
가공식품에 ‘나트륨, 당, 지방’이 유독 많이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짭짤하고, 달콤하고, 기름진, 우리가 선호하는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리가 이 음식을 다시 찾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다. 달리 말하면 우리를 중독시키기 위해서다. 실제로 나트륨, 당, 지방은 그 자체로 중독성이 있다는 게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뿐 아니라 ‘나트륨, 당, 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는 직간접적 원인이다. 나트륨은 고혈압과 위암의 위험을 높이고, 지나친 당 섭취는 비만과 당뇨병으로 이어지며, 지방도 비만과 심혈관 질환을 일으킨다. 요컨대, 음식 속에 들어있는 과도한 나트륨, 당, 지방은 맛을 얻는 대가로 건강을 희생시킨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공식품에 중독된 삶이 지속되다 보면 비만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소비에 의존한다. 여기서는 가공식품이 가져오는 결과 가운데 하나인 비만을 살펴보겠지만 고혈압, 당뇨, 심혈관 질환, 암도 사정은 비슷하다.
예컨대 체중조절을 돕는다는 건강보조식품이나 의약품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다. 갖가지 운동기구들을 사다가 나른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지방 흡입술을 받거나 아예 음식물이 더 들어가지 않게 위를 고무줄로 묶어버리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소비가 또 다른 소비를 부르는 무한 반복이 일어난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입에 털어 넣던 가공식품을 끊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짭짤한 과자와 햄버거, 피자를 멀리하면 된다. 밤 11시에 끓여 먹는 라면을 거부하면 된다. 기운이 처질 때 마시는 달달한 음료를 포기하면 된다. 하지만 아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 보자. 행동으로 ‘안 옮기는 것’인가, 아니면 ‘못 옮기는 것’인가? 다르게 물어보자. 가공식품에 중독된 것이 그저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일까.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근본적인 문제일까.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현대 사회의 소비 행태를 과식을 통해서 들여다본 『과식의 심리학』(루아크)에서 저자 키마 카길(Kima Cargill)은 사람들이 가공식품에 중독되고 살이 찌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다시 돈을 쓰는 악순환을 살펴본다. 저자는 이 악순환의 책임이 개인의 자제력 부족에 앞서 잘못된 사회적 환경에 있다고 지적한다. 가공식품 중독의 책임자로 지목한 사회적 환경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수익 극대화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식품 산업이다. 이들은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들이 만든 가공식품 때문에 소비자가 건강을 해치는 것을 마다치 않는다. 심지어 속임수도 쓴다. 예를 들어 그들은 소비자들이 설탕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는 것을 안다. 때문에 설탕을 넣지 않고 당당하게 ‘무설탕’이라고 홍보한다. 대신 영양성분표에는 과당 같은 생소한 이름을 올리고 과당이 뭔지 모르는 소비자들은 경계심을 허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이것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무지방이라는 솔깃한 홍보문구를 삽입해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지방 대신에 엄청난 당이 들어있다는 사실, 그래서 살이 찌지 않겠다는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은 알고도 당한다.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속아서 당하는 것이다.
둘째, 식품 산업이 병들게 한 사람들을 다음 칸에서 기다리는 제약 산업이다. 가공식품에 중독된 이들은 제약 산업의 잠재적 고객이기도 하다. 훗날 당뇨, 암, 고혈압에 걸릴 것이고 의약품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약 산업도 식품 산업처럼 속임수를 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악질적이다. 이를테면, 이들은 질병의 기준을 완화하도록 각종 로비를 펼친다. 그 결과 기존에 질병이 아니던 것을 질병에 포함되게 함으로써 더 많은 약을 팔아치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마지막으로 뒷짐 지고 지켜보는 정부가 있다. 정부는 식품 산업과 제약 산업이 사람들을 탁구공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보기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식품 산업과 제약 산업의 수익이 늘어날수록 그들로부터 거둬들일 세금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도 사람들이 가공식품을 소비하고 비만해지는 것을 그저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덮어두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게 되면 문제는 단순해지고 설명하기는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단순하고 쉬운 해석이 때로는 진실을 가린다. 손에 든 것이 망치뿐이라면 모든 문제는 못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가공식품 중독을 개인의 절제력의 부족에서 온 문제라고 여기면서 정작 주범은 놓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식습관을 설계하고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식품 산업과 제약 산업,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정부 정책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진짜 주범이고 공범이다.
가공식품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상 너머의 진실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식품 산업, 제약 산업 그리고 정부는 결코 스스로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공식품이 해로운지 묻는 것은 악마에게 지옥의 온도를 묻는 것과 같다.
그들이 제시하는 삶의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며 하나뿐인 당신의 건강을 희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가공식품 이면에 놓인 탐욕을 알아보고 깨어 있는 삶을 살 것인가. 그들이 당신의 삶을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당신 삶의 주인은 바로 당신 자신임을 기억하자.
원문: 신승건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