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은 너무나 어렵다. 무리한 부탁인 거 뻔히 아는데도, 때로는 뭔가 좀 잘못된 일인 거 같은데도 빤히 부탁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할 걸 알면서도 또 YES라고 하고 만다.
상황판단이 잘 되는 걸 보면 내가 그렇게 주관이 없는 인간은 아닌거 같은데… 왜 NO라고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
거절이 얼마나 어려우면
한 가지 다행(?)인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절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좀 급해서 새치기 해도 되냐고 하면 대부분이 된다고 하고 무거운 물건 좀 들어달라고 하고 몇 백 미터를 끌고 가도 대부분이 낑낑대며 따라간다는 연구들이 있다.
부탁하는 사람이 ‘완장’이라도 차면 그 결과는 더 어마무시해진다. 70퍼센트의 평범한 사람들이 단지 완장을 찬 실험자가 부탁한다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기고문을 한다는 밀그램의 충격적이고도 유명한 실험이 한 예이다.
최근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이런 완장을 찰 필요도 없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 1인에 불과한 사람이 부탁해도 많은 이들이 ‘잘못된’ 일에 참여하고 만다[1].
지나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난을 치고 싶어서 그런데 도서관 책에 낙서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런 이상한 부탁에 몇명이나 응했을 것 같은가? 사람들은 이런 일에 세 명의 YES를 이끌어내려면 10~11명 정도에게 부탁해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균적으로 4~5명에게만 부탁하면 충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행동은 옳지 않다’, ‘불편하다’, ‘나중에 문제가 될까 두렵다’ 같은 말을 하면서, 즉 잘못된 일이라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또 거절했을 때 ‘후환’이 두려운 상황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단지 부탁하는 사람 앞에서 NO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서 그릇된 부탁을 들어주는 경향을 보였다.
특별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단지 갈등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 모난 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또 까칠하기보다는 원만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쁜 일도 할 수 있는 ‘사회적’ 동물이다.
까칠함의 미덕
어떤 사람들이 특히 거절을 잘 못할까? 성격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갈등을 두려워하며 타인에게 가급적 친절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평소 원만한 인간관계를 영위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들은 때로 친한 사람들의 잘못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도덕적으로 그른 행동에 동참하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2]. 우리 사회에서 ‘정’, ‘우리가 남이가’로 행해지는 불의의 묵인과 동조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의 영향과 부탁에 약한 본성을 지녔다. 하지만 보통 이를 잘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바네사 본스(Vanessa Bohns) 등의 연구자는 각종 요구 또는 부탁이 가진 힘과 거절의 어려움을 얕보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말인데 누구나 조금씩은 마음속에 까칠함을 의식적으로 장전하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야 요구의 힘에 무비판적으로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특히 불합리하고 불의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 정색하고 “아니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게 말이다. 연구에서도 사람 좋기만 한 사람보다는 때에 따라 까칠할 줄 알고 정색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 불의에 동참하자는 요청을 잘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절에도 연습이 필요해
거절의 방법 또한 구체적으로 생각해 두는게 좋다. 혼자서라도 상황에 따라 약한 거절부터 강한 거절의 말을 되뇌어 보는 등 실전 연습을 할 수 있다면 더 좋다.
거절 상황에서의 어색함과 식은땀, 두려움 등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거절은 원래 어렵다는 것. 식은땀이 난다면 잘 하고 있는 거다. 이런 연습이 되지 않으면 우리 역시 언젠가 거절 못하고 속으로 울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도서관 책에 낙서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No라고 할 수 있게 되는 법 등, 책 『내 마음을 부탁해』에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만나는 관계에서의 어려움, 시시각각 휘몰아치는 감정들, 자꾸 무너지는 자존감 등을 ‘어떻게’ 다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가 가득 담겨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얻어보도록 하자.
[1] Bohns, V. K., Roghanizad, M. M., & Xu, A. Z. (2014). Underestimating our influence over others’ unethical behavior and decision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0, 348-362.
[2] Bègue, L., Beauvois, J. L., Courbet, D., Oberlé, D., Lepage, J., & Duke, A. A. (2015). Personality predicts obedience in a Milgram paradigm. Journal of Personality, 83, 299-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