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남성들은 패션을 쇼핑하는 것을 제외한 다른 것들에 더 관심이 많다. “형, 나 이 ‘곤색 가다마이’ 안 사면 정확하게 며칠 동안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을까?” “야, 과연 문명5 확장팩보다 이 3만3천 원짜리 티 쪼가리가 니 삶에 더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것 같냐?”
그러나 이 시큰둥함은 그 남성의 레벨이 ‘옷 입기(벗기의 반대) 단계’에 머물러 있을 때에 한한다. 해당 레벨의 유저에게는 옷 입기나 입을 옷 사기가 전혀 즐겁거나 신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게 ‘옷 ‘잘’ 입기 단계’에 다다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연히 신나고 재미있다(총알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해, 자기).
물론 ‘입기 레벨’를 거쳐 ‘잘’ 혹은 ‘제대로’ 입기의 레벨에 이르면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고민들을 클리어할 의무가 생기기도 한다. ‘출근 복장에 굳이 부토니에를 꽂는 게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인가’, ‘이 핑크색 스피도가 과연 트렌드에도 적합하면서 동시에 오늘밤 추구하려는 패션의 방향성과도 일치하는가’ 등등의 고민이 그것인데, ‘패션 피플’이 짊어지고 걸어야 할 업보다. 환영한다.
당신이 아직 위와 같은 ‘패션 피플’이 아니라서 세 개에 한 묶음짜리 양말보다 백 개들이 공씨디를 더 자주 사는 사람이라 해도, 가끔은 옷을 안 살 수가 없다. 매장의 훈녀들에게 말 걸기가 수줍어 온라인 쇼핑을 하기로 맘먹더라도 수많은 클릭질을 해야 하고 엑티브엑스도 깔아야 한다. 홈쇼핑에서 잭필드 3종 세트를 철철이 사입는 남자라 해도, 일단은 전화기를 들어야 한다. 어쨌거나 쇼핑은 어떤 루트로 진행되든 남성에게 피곤한 퀘스트다.
물론 쉬운 해결책이 있다. 여친이나, 혹은 썸녀를 대동하는 것!!!!!!
하지만 위 짤방처럼 여러분에게 여친이나 썸녀 같은 존재는 없다. 그래서 오늘은 닉 혼비 스타일로 축구 메타포로 쓰겠다. 남자의 드레스셔츠는 여자의 스타킹과 같아서, 남자들이 7부 레깅스를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여자들이 반팔 드레스셔츠를 싫어한다는 둥의 위험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드레스셔츠 소매가 수트 상의의 소매보다 1.5센티미터 길어야 한다는 따위의 이야기는 다음에도 안 할지도 모른다. 그런 걸 원하시면 한국신사를 찾으시라.
1.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체력
거스 히딩크 前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가 기술적으로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말과 함께, 기술을 발휘하기 위해 국대가 진실로 가장 먼저 갖추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요소로 체력을 꼽은 바 있다. 이 의견은 당시 국내 축구계의 평가 요소와는 아주 대립적인 각에 있던 발언이라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체력이 뒷받침이 된 세부 부분 전술의 완성을 토대로 한 대한민국 2002 월드컵 성공 요인을 평범남들의 스타일 업그레이드에 접목해 본다. 당시 국대들의 입에서 단내가 나게 만들었던 셔틀런을 비롯, 다양한 체력 강화 프로그램은 토너먼트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8강전 즈음의 일정까지 고려하여 체력 전술을 펼친 히딩크 선생의 혜안은 지금 생각해 봐도 멋지다.
애초에 쇼핑의 신은 여성에게 좀더 호의적이다. 여성이 좋아하는 패션이나 뷰티 제품 등에는 쇼핑이란 단어를 붙이는 게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게임을 쇼핑한다? 자동차를 쇼핑한다? 이건 좀 쎄-하다. 남자 냄새 많이 나는 아이템들과 더 잘 어울리는 단어는 구입, 구매 등이다. 쇼핑이라는 단어부터가 남자를 미워하는 것 같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많은 남성들은 차라리 전후반에 연장까지 그라운드를 누비면 누볐지 백화점을 누비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여성들은 그러나 메모지 한 장 쓰지 않고 아까 그 매장의 펌프스와 지금 이 매장의 웨지힐을 다각도로 비교, 분석할 줄 안다. 가격, 디자인, 퀄리티의 균형지점을 찾아내는 퀘스트를 유연하게 해내면서 추가 아이템 구입-펌프스 굽이 금장이니 골드펄의 타이즈를 사자-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그녀에게 박수를!
알면 보이고, 모르니까 재미없는 거다. 애초에 즐거울 일 없는 일인데다 동기부여조차 되지 않으면 인간은 평소보다 휠씬 빨리 지친다.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쓰기도 어렵다. 쇼핑이라는 건 대충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티셔츠 한 장을 턱밑에 옷걸이째 갖다대보기만 하고 사입는 것과, 블랙컨슈머 리스트에 이름 올릴 각오 하고 자켓 한 장을 수십 번 입어보고 사는 것의 결과는 인내한 것만큼 값지다. 장시간의 쇼핑을 위한 체력 증진은 스타일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인 옷태, 옷빨, 소위 말하는 ‘핏’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단 체력을 갖추자!
게다가 이성애자 남성의 삶에서 장시간-쇼핑-이벤트는 보통 여성 컴패니언과 더불어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 돼가는 사이든 더 이상 잘 될 수가 없는 사이든 장시간의 쇼핑을 무난히 클리어하는 능력 정도는 갖춰두는 것이 좋다. 진이 빠지고 입에서 단내가 나는 플레이어가 무슨 수로 여성의 뒷태를 칭찬함과 동시에 능수능란한 짐꾼도 되어줌과 동시에 시간맞춰 티타임을 제공하는 끼부리기를 시전함과 동시에 미래적인 스타일에 대한 조언을 제공함과 동시에 상호취존이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에 발생한 갈등마저 컨트롤하겠는가. 이를 버텨낼 체력이 당신에게 있어야 연애를…
2. 제대로 따라입지 못할 거면 따라 입지 말자, 특히 상표법을 지키자
쇼핑에 대한 동기 부여를 얻고 수고를 덜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매장 내 디스플레이를 따라 사거나 평소 선호하던 연예인의 스타일을 참고로 하는 것이다. 쉬운 대안이 될 수는 있으나 스타일링에 관심이 없고 자기 스타일에 대한 정체성이 없을 때 이런 쇼핑법은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아래는 티키타카로 대표되는 바르셀로나의 False 9을 모티브로 한 조광호의 청사진이 담겼던 포메이션이다. 조광래 감독은 극단적인 패스웍을 바탕으로 한 높은 점유율에서 나오는 유기적인 호흡에 영감을 받아 이를 태극전사에게 접목시키려 했지만 참고 대상과 변화 대상의 차이점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것부터가 잘못된 시작이라 하겠다. 여기에 포메이션을 완성하기에 급급한 잦은 포지션 파괴는 그 때 그 때 유행하는 옷을 대충 사서 쇼핑을 쉽게 끝내려 하는 많은 남성들의 행태와도 비슷했다.
스타일을 베끼는 것도 그렇지만 상표를 베끼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흔히 말하는 짝퉁, 특히 로우 퀄리티의 st. 아이템을 쇼핑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스타일링 초급에 접어들면 어쩔 수 없이 본전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데, 예산을 너무 아끼지 말자. 지나치게 가성비를 따졌다가는 주변의 패션 고렙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정도에 그치면 다행이고, 상표법 위반사범으로 찍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다른 능력마저 평가절하 될 수 있다. 리미티드 에디션의 지포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면 짝퉁 바바리 코트가 진품으로 보이지만 비크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는 남자라면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입어봐야 소용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우스갯소리다. 정말이다.
3. 매장의 그/그녀에게 자신있고 정확하게 원하는 아이템을 말하고 조언을 구하라
파넨카 킥. 실존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축구 선수 안토닌 파넨카의 킥에서 이름을 딴 칩슛의 일종이다. 1976년 서독과의 UEFA 유로 결승전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온 그가 대범하게 칩슛으로 승부를 결정지은 뒤 명명되었다.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의 지네딘 지단과 2012 유로 8강전의 안드레이 피를로가 구사했던 파넨카 킥은, 선수가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있게 임했기에 가능한 플레이였다. 성공하면 끝내주게 멋있지만 실패하면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는 킥인 것이다.
아이템 구입에 대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면서 직원이 입어보기를 권유하면 군말않고 피팅룸으로 들어가는 습관을 가지자. 많이 입어보는 것은 생각보다 휠씬 중요하다. 자신감 있는 태도를 지니고 매장 내에서의 접객에 적응을 하는 것도 쇼핑 과정을 매끄럽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어딜가나 과한 리액션이나 시덥잖은 유머는 호응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은 한 번 더 생각해 볼만한 일… 이겠지만.
4.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 즉 쇼핑에 대한 정확한 ‘자각’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쇼핑 전후로 자신의 스타일링을 끊임없이 객관화하는 능력이다. 어떤 아이템을 획득할 것인가에 대한 예습이 선행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고, 무리없는 전후반 플레이를 해냈다는 좋은 경험이 쌓이고, 이것이 반복되면 미스도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매장 내에서 옷 고르고 입어 볼 때 자신감이 생긴다. 2부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패션을 예시로 자세히 설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