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대학가 똥군기로 막 나가는 대학생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새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 언론에는 대학가 뉴스가 적지 않게 흘러 나오고 있다. 어느 대학에서는 신입생 OT를 가다가 버스 사고가 났는데 알고 보니 소주 8.000병을 미리 준비해놓았다거나, 어느 대학에서는 일반 손님도 머무르는 리조트에서 새벽에 신입생들에게 PT 체조를 시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언론에 보도되는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인용하면 끝도 없을 것 같다. 신입생을 향한 성추행 논란부터 시작해서 음식 빨리 먹기 게임을 하다 학생이 사망한 사건까지.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 같은 의문이 저절로 드는 해괴망측한 사건은 해가 갈수록 더 그 수가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가의 OT와 MT 시기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단지 중고등학교가 학교 폭력을 감춘 채 싸고 도는 것처럼, 대학에서도 OT와 MT 시기에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덮으려 들 뿐이다. 정말 이러려고 대학에 가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한심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말문이 막힌다.
머리만 큰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일부 대학생의 모습은 참 가관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그냥 혈기왕성한 시기에 벌이는 작은 해프닝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줄 세우기를 하고, 신입생에 대한 군기를 잡는다며 허튼짓을 하는 행동을 철저히 ‘사회 폭력 문제’로 취급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폭력은 이미 서열, 권력 등의 면에서 사회의 폭력과 거의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학교 폭력 가해자는 자신만의 명분을 만들어 피해자를 괴롭힌다. 그리고 학교는 학교 폭력 가해자가 성적이 좋은 우등생일 경우 감싸고 도는 일이 많고, 아니더라도 학교 명예 실추를 이유로 피해자를 압박하거나 처벌한다.
청소년 시절의 특징이 그대로
몇 번이나 이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항상 논란만 될 뿐 제대로 된 해결을 얻지 못했다. 더욱이 청소년이 자주 이용하는 SNS를 통해 보이지 않는 폭력은 더 은밀해졌다. 청소년 시기에 잘못을 똑바로 수정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대학에 올라와서도 그때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가 두 눈으로 마주한, 과도한 술 파티를 벌이거나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는 대학가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대학에 올라오기 위해 공부만 하면서 제대로 된 인성 교육을 받지 못한 채로 부모와 선생님 또한 권위주의만 앞세울 때가 많았으니, 그 모든 걸 듣고 배우며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대학생 정도 되면 자신의 인생을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시기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청소년 때와 마찬가지로 ‘장난’으로 변명할 수 없는 범죄 행위다. 그 사실을 똑바로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는 대학생들은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하거나 ‘자신들의 문화’일 뿐이라고 변명한다.
대학 또한 이러한 문제가 언론으로 노출되면 겉으로는 문제를 소상히 검토한다고 말할 뿐, 안일한 대응 속에서 대학에 뿌리내린 폭력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도 똑같이 당했으니까 너희도 당해야 돼.’라는 생각을 단체로 하면서 죄의식이 옅어지는 것이다.
이건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학교에서 불과 몇 살 더 먹은 것에 불과한 입장에 있는 선배 대학생이 후배들을 줄 세워 군기를 강요하는 일은 마치 전체주의를 보는 것 같다. 이러한 전체주의는 사회를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을 지독하게 괴롭힐 가능성이 높다. 이미 우리 사회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자신의 틀에 갇혀 진실을 보지 못하는 박사모와 막말 정당처럼, 지금 우리 대학가 내에서도 또 하나의 전체주의에 갇힌 박사모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다. 대학가에서 놀고 마시는 일이 그 시절의 낭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낭만이 정도를 벗어날 때는 엄연한 사회적 문제로 취급해야 함이 마땅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대학가의 모든 대학생이 이렇게 똥 군기, 전체주의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일부 극단적인 엘리트주의에 빠졌거나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집단 속에 나를 포함하는 가치관으로 똥 군기를 강요할 뿐이다. 그 적었던 수가 이제는 심상치 않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이러다가 대학 내에서조차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학 내에서가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서부터 인성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반적으로 성적과 순위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청소년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성적이 곧 내 인생이 되고 폭력과 압박으로 얼룩진 삶이 대학에서도 반복되는 건 비극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시절은 멀리서 보아도 비극이다.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사회와 교육의 가치관이 지금 청소년에서 대학생으로, 다시 사회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취업을 위한 경쟁 시장에 불과한 대학이 인간적인 면모를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다니는 학창 시절의 추억이 추잡한 추억이 되는 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뭐, 사람과 쓸데없이 어울리는 일이 싫어 학교의 그런 행사에 참여한 적이 없는 내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원문 :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