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R&D가 별로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요. 그런 집단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요즘 흔히 나오는 기사 중에서 한국의 국가 R&D 투자 규모가 세계에서 몇 위, GDP 대비 세계 1위에 가까운데 왜 이리 경제적인 성과가 안 나오는 거냐 과학자 공학자들이 그냥 놀기 때문이냐 등등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실 이런 수치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가에도 좀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고, 이러한 R&D 예산 분배의 비효율성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많은 돈을 투자하는데 왜 성과가 안 나오나!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왜 한국의 정부 R&D 투자가 원하는 경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느냐에 대해서 근원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전에 어쩌면 전혀 관계없을 집단을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주갤러. 그냥 일반적인 개미 주식투자가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다. 최근의 탄핵 정국을 보면 과연 주갤에는 능력자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갤에서 주식으로 돈 많이 벌었다는 사람 본 적이 있습니까? (물론 가끔 인증하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는 압니다) 오죽하면 ‘주식 빼고 다른 것은 다 잘하는 주갤러’ 라는 이야기가 상식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한국 정부 R&D와 주갤러가 왜 돈을 못 버는가? 이 둘이 생각만큼 돈을 못 버는 데는 하나의 이유를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빨리 돈을 버는데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무슨 뻘 소리!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정부 R&D로 국부를 창조하는 데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주갤러가 주식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 라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돈을 못 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대한 (과다한) 집착에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잠시 부연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장동력과 경제 발전을 이끄는 정부 R&D?
한국의 정부 R&D 투자의 기조는 기본적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의 발굴입니다. 한마디로 지금의 주력 산업인 전자, 기계, 조선 (..벌써 한물갔지만) 등이 한물갔을 때 나라를 먹여 살릴 산업기술의 근간이 될 뭔가를 발굴하려는 것이 국가 R&D의 정책 기조라고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성장동력’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연구비가 투자됐습니다. 그러나, 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가 R&D 를 통해서 이렇다 할 경제적 성과를 창출할 만한 과학발견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아직 성숙단계가 아니지만, 미래에는 그런 것으로 성장할 ‘뭔가’ 가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럼 왜 그러한가? 그 전에 우리는 어떤 것을 ‘성장동력’ 이 될만한 연구주제라고 생각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경제적인 성장을 이끌 원천기술이 나올만한 연구주제’ 는 아직 해당하는 토픽이 산업적인 효과를 창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럴 만한 비전이 보여지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비전’ 은 어디서 나오냐는 것이죠. 누군가가 연구를 해서 그런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오! 이 분야가 앞으로 비전이 있겠군! 여기에 연구비 올! 인!’ 을 외치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연구를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유감스럽게도 그런 ‘비전’ 을 제시하고 ‘앞으로 돈 될 것 같은 연구분야’ 를 처음으로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의 정부 R&D혜택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물 건너에 있는 연구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그런 분야는 대개 누군가 선행연구를 해 두어서 비전을 제시한 것이고(그러니 한국 정부조차도 앞으로 잘 나 갈 분야라고 다 아는 것입니다), 당연히 응용분야에 대한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 역시 ‘다른 누군가’ 가 확보한 상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야에 대해서 우리의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분야에 연구를 하여 대단한 성과를 내면 이것은 미래의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 된다!’ 하고 연구비를 왕창 때립니다.
가령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면 ‘인공지능이 우리의 희망이다!’ 하고 AI 분야에 연구비를 왕창 때리고 (들어는 봤나, 4차 산업혁명?), 이전에 톰슨 아저씨가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서 배아줄기세포가 화제가 되니 줄기세포 분야에 연구비를 왕창 때렸습니다.
결국, 한국의 대개의 정부 주도의 R&D는 이미 누군가가 선행 연구를 한참 해서 잘 나간다고 크게 선전을 해 둔 분야에 집중되고, 그런 분야에서는 누군가가 이미 한참 전에 앞서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주 운이 좋으면 분야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1등을 쫒아가서 추월을 할 수도 있고 (뭐, 1등으로 달려가던 마라톤 주자가 갑툭튀한 자전거에 치일 수도 있지!) 한 5-10 등 정도 따라가서 1등이 흘리는 과자 부스러기 정도는 먹을 수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출발시점이 틀리니 1등을 넘기는 힘들고, 힘은 힘대로 들고 (남 따라가는게 쉬운 거 아닙니다.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요) 결국 뚜렷한 경제적 성과가 나는 연구가 나오기도 힘듭니다.
그러다가 그 ‘일등’ 이 ‘이 길이 아닌가벼!’ 하고 중도포기할 수도 있고 다른 쪽에서 “이 분야가 뜬다더라!” 하면 우리의 정부는 또 그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정하여 연구비를 몰빵! 그러면 대개의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따라서….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결국 돈 되는 뭔가가 나오고 싶어도 나오기 힘든 것입니다. 주갤러 이야기를 왜 했는지 이제 이해하겠습니까?
‘무슨 주식이 뜬다더라!’ ‘누구는 이걸로 벌써 두 배 벌었더라!’ 하고 올리면 자극받아 그 주식 덥석 매수하고, 그러다 보면 상투잡은 우리의 주갤러분들…한국의 정부 R&D와 비슷하지 않은가요?
그렇다면 뭘 하면 진짜 대박이 터지나?
그걸 알면 제가 여기서 블로그나 하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 과학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고, 더우기 그 결과가 나중에 어떤 응용 결과를 낳을지 예측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많이 이야기한 것들 (예 : 이 연구를 하면 밥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맥주집에서 쓸데없는 실험이야기 하던 더쿠들 온천에 사는 세균이나 찾던 미생물학자) 의 발견과정을 따라보면 이런 연구가 시작될 때 하등의 경제적 가치를 예상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대개의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연구는 처음에는 남이 돈이 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유래되고, 남들이 대개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특정한 발견에 대해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는 편입니다.
남들이 관심을 안 가졌는데 나는 이 분야에 대해서 잘 아니까 권리도 취득하고, 한참 앞서나가게 되고, 뒤늦게 돈이 된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카피캣이 튀어나오지만 대개의 경우 이런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뛰어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남이 하지 않는 그런 연구를 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그러고 싶을겁니다! 그런데 그런 연구에 대해서 한국의 연구자 및 정부 R&D는 별로 관심이 없고 따라서 지원도 적습니다 왜? 그 연구가 무슨 결과를 낼 지는 예측하기 어렵고, 지금은 당연히 돈 안 되는 쓸모없는 연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혈세로 그런 쓸데없는 개인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연구를 지원할 여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혈세로 하는 연구로 국부를 창조해야지 어디 그런 쓸데없는 것을 해서 혈세를 낭비해?
…라는 마인드이기 때문에 이런 연구는 하기도 쉽지 않고, 해도 오랫동안 할 수가 없습니다. 연구비가 책정되어도 앞에서 말한‘성장동력’ 내지는 ‘돈 되는 연구’ 라고 포장된 연구 (그러나 결국 돈 버는 사람은 바다 건너 따로 있는 분야의) 를 지원하느라 충분히 지원할 수 없게됩니다.
그러다 보니 학계에서 연구한 것 중에서 실제로 돈이 될 만한 것, 독창적인 IP가 없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정부과제를 하려면 ‘돈이 되는 분야’ 라고 생각되는 것에서 남이 이미 한 것에 조금 더 덧붙이는 수준의 연구밖에 할 수 없고, 그런 과제의 연구성과가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IP로 탈바꿈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남이 한 기초연구 성과를 가지고 잽싸게 응용 연구를 한다?
그래서 기초과학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하면 꼭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국이 그리 돈도 많지 않은데 어떻게 아무거나 연구를 다 하냐. 우리는 선진국의 기초연구를 잘 찾아보고 잽싸게 응용할 수 있는 것을 응용하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돈을 못 벌어 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기초연구를 하는 사람이 자신이 발견한 연구의 응용적 가치를 모르고 내버려두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뭐랄까 산삼을 캐는 심마니가 산삼을 도라지인줄 알고 내다버린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내다버린 산삼은 아마 산삼을 캐려는 다른 경쟁 심마니가 바로 가져가지 않을까요? 요즘은 기초 연구를 하다가도 해당 연구가 돈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하면 잽싸게 태세전환을 하는 시스템이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기초 연구자는 평생 ‘저는 돈 되는 연구에는 관심없어요……’선서하고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전자 가위 때문에 세기의 특허분쟁이 일어난 CRISPR 특허 분쟁의 당사자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특허 분쟁의 두 당사자가 되는 과학자인 브로드 연구소의 펭 장이나 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는 응용 연구자였습니까?
펭 장은 원래 옵토제네틱을 박사과정때 연구한 연구자였고, 유전자 가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옵토제네틱을 연구하기 위해서 쥐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 보니까 유전자 가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고 다우드나는 원래 유명한 RNA 분야의 구조생물학자입니다.
원래 응용 연구하고는 관련이 1도 없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돈 될 거리가 되는 발견을 하자 다 주변에서 알아서 몰려들고, 돈이 몰리고, 회사가 만들어지고 해서 응용 연구자처럼 된 것입니다.
결국 남의 기초연구 성과를 잽싸게 응용하여 응용연구를 한다? 남이 (확인하지 않고) 버린 로또 1등 복권으로 벼락부자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와 별반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마 잘 뒤져보면 로또 5등 정도는 버리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즉 주갤러의 경우에도 돈을 벌려고 주식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한강 정모 (…) 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한국정부의 국가 R&D도 마찬가지입니다.
빠른 시일내에 구체적인 성장동력이나 경제적 효과를 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바로 이러한 성장동력이나 경제적 효과를 내는 연구를 막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
“그냥 그런 기대는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그럼 R&D 투자는 하지 말라고요? 어허….그냥 지갑은 거기 두고 잊으시라고요. 뭐 그렇게 포기하다 어쩌다 한번 터질지 압니까? 그냥 잊으시면 편해요. 돈은 내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