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기업으로 독립한 지 이제 꽉 채워 3년이다. 다음 달에는 4년 차에 접어든다. 그간 주변 사람들과, 혹은 그 주변의 주변에서 소개받은 분들과 이 전형적인 주제 하나로 꽤 많은 상담을 했다.
“나도 독립할 수 있을까?”
상담자 대부분의 논리는 무척 단순하다.
“내가 조직(주로 대기업 또는 공공기관)에서 이러이러한 일을 해왔다. 그러니 독립해도 그 일로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답은 언제나 그렇듯,
“그때그때 다르다.”
우선 조직 안에서 하던 일을 조직 밖에서 이어나가려는 생각 자체는 훌륭하다고 본다. 오랫동안 하던 일이 가장 경쟁력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드는데 어떻게 하나요?’ 하는 질문에 ‘일해서 번 돈으로 하고 싶은 것을 즐기세요’ 또는 ‘취미생활을 살려 새로운 직업으로 삼으세요’라고 조언하는데, 위험한 발상이다.
독립은 쉽지 않다
하기 싫은 일은 장기적으로 볼 때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기 싫은 일로는 역량을 쌓아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하던 일이 아닌 일을 새로운 직업으로 삼는다? 전 국민의 창업 아이템 1번인 치킨집만 해도 만만하지가 않다. 짧게는 단 사흘, 길어봐야 한 달 만에 운영비법(?)을 전수받아 창업하지만 어느 동네든 치킨 한 가지로 10년을 넘게 버텨온 베테랑이 있다. KFC와 파파이스가 맥을 못 추는 나라가 여기 대한민국이다. 프랜차이즈만 믿고 덤빌 시장이 아니다.
특히 지식을 팔아서 먹고사는 일은 완숙한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든다. 취미나 부업을 퇴근해서 매일 2~3시간씩 열심히 하면 몇 년 뒤에는 독립할 수 있다고? 그 업종에도 분명히 종일 열심히 하는 전업 경쟁자가 있다. 당신의 2~3시간이 그 누군가의 8시간(혹은 12시간)보다 생산성이 높은가?
완숙한 경지는 추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완숙의 기준은 ‘내가 하는 일이 시장에서 (충분한) 돈이 되느냐’다. 그러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생계형 지식노동자는 자기가 하던 일로 독립해야 한다.
예전 직장에서 존경하는 선배가 임원으로 퇴직한 후 최근 식당을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척 유능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분인데, 기업도 아니고 아예 속해있는 산업이 무너져 내렸으니… 속수무책이었을 터이다.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잘 되기를 진심으로 빌어 마지않음에도 서울 시내에서 유명한 대형 식당을 여러 개 보유한 식당 재벌의 말이 생각난다.
“젊어서 대기업에서 고생고생하다 정년퇴직 후에 퇴직금 탈탈 털어 식당 차리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환갑 다 되어서 식당이 가지고 싶었으면, 서른부터 식당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럼, 젊어서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중년 이후에는 안정되고 번듯한 식당을 할 텐데. 나이 먹고 익숙하지도 않은 일을 해서 성공하기가 쉽나?”
그렇다. 병원 자주 드나든다고 의사 되지 않듯이, 식당에 손님으로 평생 다닌다고 해서 식당을 창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조직 안에서 자기가 하던 일을 나와서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단순한 의문의 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조직에서 한 일과 독립 후 그 일로 돈을 버는 것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간극은 무척 크고 중간에 몇 가지 단계가 있다.
1단계: 내 역량은 진짜인가?
우선 조직에서는 본인이 만든 일을 한 게 아니다. 대부분은 어디에선가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수행한 것뿐이다. 그것도 조직의 브랜드, 조직의 역량을 활용해서 말이다. 그러니, 이력서에 ‘어떤 프로젝트를 내가 주도해서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적는 것은 대부분 ‘어떤 사업이 성사될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얘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까 조직 안에서 본인이 할 수 있었던 일과 독립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면, 즉 전문역량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1인 기업으로서는 첫 단계도 넘어서지 못한다. “대기업 해외영업부서에서 어떤 품목을 10년 넘게 다뤄왔기 때문에 무역실무에 밝다. 수출을 시작하려고 하는 중소기업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젊은 퇴직자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무역실무는 1년을 하나 수십 년을 하나 크게 다를 것이 있나? 모르면 물어봐 가면서 해도 된다.
그런 일에서 핵심, 즉 고객이 기대하는 바는 거래선을 발굴해서 신규거래를 트는 것이다. 거기서 결정적 차이가 난다. 생소한 중소기업 제품을 들고 새로운 발주처를 찾을 수 있다면 그는 이미 독립이 가능한 1인 기업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쌓은 영업실적은 실제로는 ‘영업관리실적’일 뿐이다.
내 경우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 독립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전문성 쌓기, 정확히는 흩어져 있는 경험과 지식을 한 줄로 꿰기에 3년을 애쓴 다음 고객이 진짜 내게 돈을 지불하는지, 얼마나 지불하는지까지 확인해봤다. 그렇게 해서 ‘아, 이 정도면 회사를 나가도 식구들 굶기지는 않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 다음 회사를 나왔다.
아직 직장에 속해 있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쌓은 업무성과를 차분히 적어 보라. 그 성과를 정밀하고 객관적으로 요인분석을 해보라. 어떤 것이 진정 내가 기여한 부분인가, 일의 성사 여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나… 내가 없었으면 되지 않을 일이었는지, 누가 해도 될 일이었는데 운이 좋아 그때 담당자가 본인이었는지 솔직하게 분석해 보라. 내 지식과 경험이 압도적으로 사업 성사를 지배했는지, 소 뒷걸음에 얻어걸린 것인지 냉철하게 돌아보라.
만약 지식과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면 지금부터라도 준비하라. 그 준비 없이는 조직 안에 있어도 고생이고, 멋모르고 나가면 개고생이다.
2단계: 시장에서 날 알아주는가?
만약 첫 단계에서 혼자서도 일할 가능성(전문역량)을 확인했다면, 축하한다. 그다음 문제는 그 가능성을 본인만 알고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알아줄 때 비로소 전문가라 부를 수 있다. 재야의 이름 없는 고수여서는 곤란하다. 골방에 틀어박힌 덕후여서는 소용이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SNS 등을 통해 대중, 최소한 업계와 소통한다. 지식과 경험을 발산함으로써 주변의 인정을 받는다.
다른 표현으로는 최근 많이 언급되는 ‘퍼스널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분이 설파한지라 여기서는 생략한다. 사실은 나도 몇 가지 풀어놓은 바가 있다.
3단계: 시장은 내게 충분한 보수를 줄 것인가?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이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1인 기업은 기업이기 때문에 그 전문성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도 충분하게 말이다. 블로그,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글을 써서 전문가 소리를 듣지만 실제로 그것을 수입과 연결하지 못한다면 취미로서의 전문가일 뿐이다. 1인 기업으로서의 비즈니스 모델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을 매출로, 이익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콘텐츠를 이익으로 만드는 방식을 점잖게 표현하면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따로 써 둔 블로그가 있다.
윗글 역시 나 자신을 사례로 삼고 있다. 최근에 관련된 강의 준비를 하다가 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게 설명하는 자료를 만들었는데, 그건 다음 편에 올리기로 하겠다.
길게 보고 촘촘하게 준비하자
정리해 보면 이렇다.
- 독립을 원하는 사람은 조직 안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이 진짜 자기 것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 진짜 자기 전문성이 아니라면 그것을 쌓는 일이 급선무다.
- 그 전문성을 남들이 인정해줘야 한다(아니,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 인정에서 그치지 않고 대가를 지불하고 그 전문성을 구매해야 한다(아니, 구매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때 1인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모쪼록 직장에서 자기 업을 가지고 독립하고자 하는 분들이 생각을 정리하고 계획을 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