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첫발을 딛는 많은 우리 비즈니스맨에게 첫인상을 물으면 대부분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1960-1970년대와 똑같다.”
주로 베이비부머 세대 선배들을 상사로 모시거나 고객으로 하기 때문인지 정말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그렇다. 아프리카가 아닌 수많은 개발도상국을 포함해서 실제로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그런 비슷한 인상을 준다. 좁고 더운 공항, 부실한 도로와 길가에 널린 쓰레기, 삭막해만 보이는 양철 슬레이트 지붕과 미장도 없이 드러낸 회색 블록 벽의 누추한 민가……. 1960-1970년대를 겪지 않은 한국 청년들조차 흑백사진으로 뿌옇게 기억하는 모습과 확실히 닮았다.
이뿐 아니다. 좀 더 있다 보면 수도와 전기를 비롯해 태부족인 인프라, 엉성해 보이는 사회 시스템과 부패한 관료들, 매번 약속에 늦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현지인이 보인다. 서울 변두리에 살았던 1970년생의 기억에도 매일같이 이어지던 정전사태와 난지도 같던 동네 뒷산의 쓰레기 더미, 시내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워대던 아저씨들이 생생하다. 구태여 숨기지도 않을 만치 일상화된 뇌물과 ‘코리안 타임(Korean Time)’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으로 스리슬쩍 넘어가던 나태함까지.
나조차도 한국의 과거와 아프리카의 현재가 정말 비슷하다는 느낌을 상당히 오래 간직했었다. 그러나 ‘느낌’은 거기까지다. 거기서 멈춰야 한다. 비즈니스는 느낌으로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자꾸 과거의 느낌으로 현재를 재단하려고 고집을 피우는 경우가 꽤 많다. ‘한국 1960-1970년대와 경제상황이며 산업발전 단계가 유사하니 그때 유행하고 성공한 사업을 하면 되겠다’는 확신 말이다. 한국의 산업발전 경험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유사한 환경에서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기대는 불행하게도 다름아닌 ‘확증편향’일 뿐이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우리 기억에 성공했던 어떤 사업은 성공하지만, 다른 사업은 어림도 없다. 반대로 아프리카에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은 아이템이 승승장구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경험을 신성시하고 아프리카 시장을 깊이 들여다보는 노력이 없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산업발전 방식은 대략 아래 그림과 같다.
어떤 산업이나 기업, 또는 상품이든 대체로 비슷한 경로를 따른다. 어떤 계기가 있어 시장에 진입하여 성장하다가 성숙기에 접어들고, 완숙한 뒤에는 대체하는 다른 산업이나 기업, 상품에 밀려 쇠퇴하기 마련이다.
아프리카 진출 긍정적 사례
한국 기업은 대부분 Fast Follower로서 부지런히 이런 사이클을 단축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왔다. 흔히 말하듯 우리는 ‘압축성장’을 해왔다. 그러니까 선진국의 동향을 유심히 살피고, 복사하고, 개선하는 전략을 취했고, 다행히 많은 경우 성공했다. 그걸 그림으로 거칠게 표현하자면 아래와 같으리라.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는 산업발전 곡선의 기울기를 가파르게 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고 성공했다. 그 성공에 도취해서인지 우리는 이런 전략이 어디에나 적용될 것으로 믿었다. 즉, 우리 경험과 비슷한 발전단계에 있는 사업을 아프리카에서 찾아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그 사업을) 아프리카로 가져가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옳을 수도 있다. 시장에서 상품을 담아주는 시커먼 비닐봉지가 그랬고, 별다른 간식거리가 없는 농촌에서 뻥튀기 기계가 그랬고, 길거리에서 아이스박스에 넣어 돌아다니며 파는 쮸쮸바가 그랬다. 크든 작든 그 사업 아이디어가 치밀한 분석과 전략에서 나왔다면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할 일이다.
‘산업’이라 부를만한 규모에서도 이런 모델이 적용될 만한 여지가 물론 있다. 내가 우리 정부와 업계에 건의했던 사업을 소개한다. 2000년대 초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서 분쟁이 가라앉으며 건설 붐이 일었다. 갑자기 건설 붐이 일어나니 건자재가 품귀였다. 그 가운데서도 시멘트는 정말 구하기 어려웠고, 그 어려움이 시장가격에 그대로 반영되어 당시 한국 내 가격의 3-4배(소매가 기준)나 되었다.
당시 국내 시멘트 업계는 그야말로 쇠퇴기를 겪고 있었다. 7개 기업의 총 생산능력은 연산 6,200만 톤이나 되었지만 그것은 우리 역사에서 건설 붐이 정점을 찍던 80년대에 완성된 것으로 4대강 사업이 한창일 때도 기업마다 1-2개 생산라인은 쉬고 있었다. 이 생산라인을 아프리카로 이전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놀고 있는 자산으로 현물투자를 하자는 것인데, 간단하게 중고 설비로 수출하고 말지 왜 아프리카까지 가서 시멘트 공장을 운영해야 하는지 설득이 필요했다. 우리나라 기업은 전통적으로 O&M(Operation & Maintenance)에 강하다. 철저하게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기술자들 덕분에 내구연한을 넘겨서까지 멀쩡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항공기를 만들어 파는 보잉(Boeing)사도 항공기 정비는 대한항공에 와서 배운다고 하겠는가.
시멘트 공장처럼 전체 공정(Process)이 길고 공정마다 기계류의 수명이 제 각각인 플랜트의 경우는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국에서 시멘트 공장을 가져가려면 공장장까지 같이 가야만 한다. 여러 이유로 이 아이디어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지만 여전히 기회는 있다.
아프리카 진출 폭망 사례
이 모델의 긍정적 측면을 생각해 봤으니 이제 뼈 아픈 실패 사례를 살펴보자. 중고 PC는 초반에만 성공을 거두었고, WLL(Wireless Local Loop)은 초반부터 죽을 쑤었다. 우리나라에서 PC 보급이 성숙기에 다다른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상당한 양의 국내 중고 PC가 아프리카 각국으로 나갔다. 아직 쓸만한 성능에 싼 가격으로 인기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거의 폐기물 가격으로 수집한 물건을 현지에서 조금씩 손을 봐서 유통에 성공한 분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2000년대 중반 PC는 곧바로 한계에 도달했다. 세계 어디서나 날이 갈수록 PC 가격은 내려가기만 했다. 사양이 월등한 신제품이 2-3년 전 가격으로, 심지어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2005년 IBM이 PC사업 부문을 Lenovo에 매각한 사건이 그 시절을 상징하는 듯싶다(세월이 흘러 2016년에는 삼성전자도 PC 부문을 Lenovo에 매각한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PC 가격이 한계로 여겨지던 가격 밑으로 계속 내려가면서 어느 순간 중고 PC라는 시장 자체가 사라졌다. 당시 마지막 컨테이너에 실린 물량을 소화하느라 고생한 분들이 있다.
WLL은 사업 규모가 커서 더욱 충격이 강했다. 2006년 국내 A기업이 민주콩고의 유선전화 회사 지분 51%를 인수했다. 현지 정부와 합작으로 유선전화 사업을 시작했다. 핵심 전략은 유선전화망이 거의 없는 콩고에 광통신 백본망(Backbone Network)을 깔고, 이를 기반으로 CDMA WLL을 도입하여 1차로 800만 명에 이르는 수도 인구를 공략하고, 장기적으로는 전국으로 사업을 확대 7,000만 명이 넘는 인구 대국의 기간망 사업자가 되는 것이다.
WLL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각 기지국까지는 유선망으로 연결하고, 각 기지국과 가정, 사무실의 전화기(fixed phone)까지는 무선으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유선전화 사업에서 가장 까다롭고 원가가 많이 드는 마지막 연결 부분(last mile)을 CDMA WLL로 연결하는 것이니 집 안에서만 쓸 수 있는 휴대전화쯤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술개발 직후 중국·인도 등에서 각광받은 바 있고 A기업 역시 몽골에 적용해본 경험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콩고 WLL 사업은 ‘폭망’했다. 현지 정부와의 불협화음, 노조의 반발 등 여러 가지 다른 부수적 요인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휴대전화의 예상치 못하게 빠른 보급이었다. 휴대전화는 순식간에 대륙을 장악했다. 현재 아프리카 전체 인구가 11억 명인데 약 8억 대가 개통되어 있다. 보급률로만 본다면 다른 대륙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다.
A기업이 WLL 사업이 성공하리라고 예측한 배경에는 우리 경험이 한몫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촘촘하게 깔린 유선전화망 위에 기지국이 있다. 이동통신망은 그 자체가 인프라이기도 하지만 유선전화망이라는 하부구조(infrastructure) 위에 얹은 상부구조(superstructure)이기도 하다. 그런데 2000년대초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는 유선망이 거의 없었다. 있어도 품질이 너무 낮았다. 그래서 A기업은 일단 유선망을 접수하고 기지국–가입자 구간만 이동통신 기술을 적용하는 절충형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백본망 자체를 무선으로 연결하는 신기술이 나왔다. 이제 지하에 깔린, 혹은 전주에 거미줄처럼 늘어진 유선망 따위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 노키아, 모토로라 단말기의 최저가 라인이 결합하면서 ‘빅뱅’이 일어난 것이다.
조금은 다른 논리로 태양광 발전의 경우를 들여다보자. 우리나라에서 태양광 발전은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이 없으면 채산성이 맞지 않는 사업으로 인식된다.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 원가가 비싸기는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주는 정부의 ‘발전차액보조금’이 중요한 사업 동기가 된다. 한전에서 공급하는 전력 단가와 비교하면 그렇다.
일반적 전력 단가와 신재생에너지 발전 단가의 차액이 사라지는 시점, 즉 신재생에너지가 채산성을 획득하는 때를 ‘Grid Parity’라 부른다. 국가 기간 전력망(national grid)과 같은 가격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발전 원가가 싼 원자력 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40%가량을 차지하므로 Grid 전력 가격이 매우 낮다. 물론, 원자력 발전 원가를 산정할 때, 발전소 건설비용만 고려하고 천문학적인 폐기비용은 감안하지 않았다는 결정적 한계가 있지만, 일단 현실은 그렇다. 그래서인지 태양광 발전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시대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한국적 사고를 아프리카로 적용하면 태양광 발전은 아예 어림도 없는 아이디어다. 원조나 받는 정부가 무슨 돈으로 발전차액보조금을 주겠냐는 짐작만 믿으면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 아프리카 시장에 가보면 태양광 발전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부보조금 따위와 관계없이 일반 사용자가 태양광 패널을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다. 왜 그런가?
채산성 판단의 기준이 되는 Grid Parity의 정의가 좀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아프리카 국가들의 전력망 커버리지는 20~30% 정도다. 기간 전력망에 접속하는, 쉽게 얘기하면 전봇대에서 전기줄을 집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국민이 20-30%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현대인의 필수품인 전기를 대다수 아프리카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서 쓴다. 말그대로 ‘자가발전‘이다. 국가 전력망과 별개로 발전하므로 Off-grid 발전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아프리카에서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Grid Parity가 아니라 ‘Off-grid Parity’를 측정해야 한다. 외국에서 수입한 디젤에 엄청난 운송원가를 더해서 가정마다 따로 구매한 소형발전기를 돌려 생산되는 전력과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하는 전력의 원가를 비교해야 한다는 얘기다. 거기다 아프리카는 햇빛은 강하고 기온은 낮은 고원지대가 많다. 이미 Off-grid Parity를 넘어선 지역이 많다.
그래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싼 중국산 모듈을 사 쓰지 않겠냐고 지레짐작하는 분들이 여전히 남는다. 현장에서 물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도로 사정이 열악한 경우가 태반이라 지방에서는 A/S가 쉽지 않다. 현지 태양광 설비업체 입장에서는 매입가가 높더라도 고장률이 낮은 제품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아프리카에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산 모듈이 팔리는 이유다.
‘기존 기술도 없고 돈도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신기술을 도입해?’ 하면서 의아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비한 인프라, 엄청난 건설원가, 더 엄청난 유지비용을 극복할 수 있는 신기술이라면 왜 도입하지 않겠는가? WLL이라는 신기술은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고, 유선전화는 아무도 찾지 않는 유물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언제까지나 먼 미래일 것 같은 태양광 발전이 아프리카에서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무지가 아닌 이해가 필요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생각하는 산업 발전은 아마 아래 그림처럼 생겼을지도 모른다.
매우 비연속적 혹은 단속적(discontinuous)으로 생겼다. 자체적으로 성장이 별로 없다가 임계치를 넘는 환경변화나 갑작스러운 외부요인으로 인해 가끔 한 번씩 점프를 하는 모양이다. 유선전화도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휴대전화가 도입되고, 전국에 은행지점망이 몇 개 없는 단계에서 불현듯 전 국민이 모바일뱅킹을 사용하는 식이다. 또 시장에 나타날 때도 갑자기 나타나지만 사라질 때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프리카 시장진출을 고려할 때는 이 점을 놓치면 안 된다. 다가오는 점프를 예상하지 못하면 불의의 일격을 맞을 수 있다. 반대로 시장을 잘 읽으면 새로운 점프를 도입하는 유니콘이 될 수도 있다.
기술뿐 아니다. 규제 때문에 다른 대륙에서는 도입이 늦어지는 신품종 작물이 전격적으로 도입되기도 하고, 건국 이래 처음 생긴 고속도로인데 톨게이트에는 하이패스가 달려있기도 하다. 여건이 열악하니까 오히려 금융을 조달하고 투자를 하는 방법에서도 선진국에서보다 훨씬 복잡하고 신기한 묘안이 백출한다.
이제 아프리카 시장이 우리나라 1960-1970년대와 같으리라는 순진한 생각은 버리시길. 아프리카 시장은 우리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이다. 넘겨짚고 돌진하는 용기(혹은 무지)가 아니라, 진중하고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