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쓰인 ‘피겨스(figures)’에는 중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숫자’를 뜻하고, 또 하나는 ‘사람’, 특히 저명인사 혹은 거물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제목은 ‘숨겨진 숫자’ 혹은 ‘숨겨진 사람’으로 동시에 해석됩니다. 제목 자체가 영화를 다 보여준다고 할 정도로 참 잘 지은 제목입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역사 속에서 숨겨진 숫자를 다룬 숨겨진 인물을 보여줍니다.
숨겨진 수학 천재, 세 흑인 여성 이야기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을 아시나요?
영화를 보기 전엔 저도 이들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히든 피겨스’는 이 세 흑인 여성에 관한 영화입니다. 캐서린 존슨은 타라지 P. 헨슨, 도로시 본은 옥타비아 스펜서, 메리 잭슨은 자넬 모네가 연기합니다.
시대적 배경은 1961년, 장소는 무려 NASA(미국항공우주국)입니다. 세 흑인 여성은 NASA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NASA에서 이들이 하는 일은 ‘계산’입니다. 전자식 컴퓨터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시절, 계산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져야 했고, 전국에서 수학 능력이 탁월한 흑인 여성들이 ‘컴퓨터’라는 직책으로 NASA에 채용된 것입니다.
이들은 NASA 랭리 연구소의 ‘West Area Computing’이라는 건물에 모여 근무했기에 백인들은 이들을 ‘West Computers’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컴퓨터’라는 단어의 시작은 계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흑인 여성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 단어에는 ‘계산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비하의 뉘앙스가 담겨 있었습니다.
NASA 홈페이지는 캐서린 존슨의 90세 생일을 앞둔 2008년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인터뷰한 적 있는데 기사의 제목은 ‘컴퓨터가 치마를 입던 시절의 컴퓨터’였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캐서린은 1953년부터 1986년까지 30년 이상 NASA에서 일했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업적은 아폴로 11호를 달로 보낸 스페이스 셔틀 프로그램의 궤도를 수학적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그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 NASA의 우주 비행사 프로젝트에 거의 모두 참여해 중요한 계산을 해냈다고 합니다.
흑인이자 여성으로 마이너리티 중 마이너리티였던 그녀는 법적, 제도적으로 여전히 인종 차별이 행해지고 있던 1960년대에 어떻게 이런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히든 피겨스’는 캐서린을 비롯해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세상의 차별에 저항하는 과정을 따뜻하고 유쾌한 드라마로 펼쳐 보입니다.
마이너리티의 유쾌한 반란
여성 차별과 흑인 차별. 둘 중 어떤 차별이 먼저 철폐됐을까요? 참정권이 먼저 주어진 쪽은 흑인입니다. 남북전쟁 이후 1870년에 흑인은 참정권을 얻습니다. 반면 여성이 참정권을 쟁취한 것은 1920년으로 흑인보다 늦습니다(세계 최초는 뉴질랜드 1893년, 유럽 최초는 핀란드 1907년입니다). 여성은 흑인보다도 더 차별받았던 것이죠. 힐러리 클린턴은 실패하고 버락 오바마가 먼저 대통령이 된 이유 역시 어쩌면 이런 차별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지도요.
흑인과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이후에도 이들은 여러 제도의 벽에 갇혀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회 제도상 차별이 사라진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1960년이면 여성도 흑인도 자유로웠을 것 같지만 여전히 사회적 장벽이 높았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 미국엔 공중 화장실이 4개로 분리돼 있었습니다. ‘백인 남성용 / 백인 여성용 / 유색인 남성용 / 유색인 여성용’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캐서린은 ‘유색인 여성용’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가까운 백인 여성용 화장실을 놔두고 800미터를 달려갑니다.
이뿐 아니라 거리의 식수대, 커피포트 등에도 백인용(White)과 유색인용(Colored)이 철저히 구분됐고, 버스를 타면 앞자리는 백인, 뒷자리는 흑인 전용이었습니다. 도서관도 백인용과 흑인용이 따로 있어서 흑인들은 볼 수 있는 책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노예제도는 폐지됐지만 여전히 백인과 흑인은 각자의 미국을 따로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던 것이죠.
제도적 자유가 본격적으로 확립된 것은 1968년 이후입니다. 프랑스 68혁명의 기운으로 미국에서도 보편적인 자유와 인권에 대한 요구가 봇물 터져 나왔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버지니아주에선 1970년대 중반에서야 흑인 여성의 대학교수 채용이 허용됩니다. 물론 이 자유는 공짜로 얻어진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여성과 흑인이 목숨을 건 투쟁 끝에 쟁취해낸 것입니다.
‘히든 피겨스’는 능력만을 중시할 것 같은 과학기술계에서마저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 명의 수학 천재 ‘컴퓨터’들은 편견에 저항해 자신의 길을 개척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들의 이유 있는 설득에 굳게 닫혔던 문이 하나씩 열립니다. 캐서린 존슨은 나사 스페이스 태스크 그룹의 당당한 일원으로 거듭나고, 도로시 본은 흑인 여성 최초의 NASA 관리직에 오르며, 메리 잭슨은 첫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됩니다.
영화는 캐서린 존슨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지만 중간에 메리 잭슨에 관한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그녀는 흑인에게 수강 금지된 버지니아주의 고등학교 물리 수업을 듣게 해달라는 소송을 내면서 재판관을 이렇게 설득합니다.
“판사님이 오늘 맡은 사건 중 100년 후 이 나라를 바꿀 결정이 있습니다. 판사님이 결정하면 저는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될 수 있습니다. 판사님의 이름 역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최초로 남을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메리의 말투는 부드럽고 단호합니다. 상대방을 추어올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 설득의 모범사례입니다. 차별받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현명하게도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판사에게 내밀며 ‘윈윈’ 제안을 합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승리하는 이 방식은 모두를 유쾌하게 합니다. 결국 그녀는 “흑인은 엔지니어가 될 수 없다”는 단단한 차별의 벽을 뚫어냅니다.
그녀들의 투쟁으로부터 5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과 유리천장이 가득합니다. 길이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면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태도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최초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세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류 최초의 달 탐사선을 쏘아 올리다
영화의 주인공인 캐서린이 NASA에서 한 일은 궤도 계산입니다. 우주선을 쏘아 올릴 때 지구 궤도를 돌고 지구상의 어느 지점에 떨어질지 바람의 세기, 지구의 자전과 공전 속도 등을 감안해 일일이 손으로 계산한 것이죠. 그녀는 유클리드 기하학, 오일러의 공식(다면체에서 면의 수와 꼭짓점의 수를 더한 값은 모서리의 수에 2를 더한 것과 같다) 등을 이용해 요즘 컴퓨터에 맞먹는 정확한 계산을 해냅니다.
1960년대 초 캐서린은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이 이끄는 스페이스 태스크 그룹에 합류해 ‘머큐리 프로젝트’, 그러니까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 프로젝트에서 궤도를 계산하는 일을 맡습니다. 실제 캐서린이 합류한 시점은 이보다 앞선 1950년대 중반입니다만 영화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동시에 하기 위해 시기를 조정합니다.
당시 소련은 1957년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에 이어 한 달 뒤 인류 첫 생명체를 스푸트니크 2호에 실어 우주로 보내는 데 성공하면서 미국을 자극했죠. 1961년 1월 케네디는 소련과의 우주전쟁을 선포했지만 그해 4월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되면서 또 한 번 스타일을 구깁니다. 초조해진 케네디는 10년 내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대국민 선언을 해버립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의 리더가 있으면 그 아래 사람들이 피곤해지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당장 NASA는 발등에 불이 떨어집니다. 우주선 발사를 제대로 성공해본 적도 없는데 10년 내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니요. 해리슨은 직원들을 닦달합니다. 소련보다 더 많이 일해야 한다며 집에 갈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능력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어쩌면 과학계에서 인종차별이 약화되는데 미국과 소련 간의 치열한 경쟁 분위기가 한몫을 담당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재가 눈앞에 있는데 더 이상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둬둘 수는 없었던 것이죠.
인재 발굴과 야근이 통했는지 NASA는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해 5월 스페이크 태스크 그룹은 유인 우주선 ‘프리덤 7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합니다. 알란 쉐퍼드는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기록됐습니다. 이어 1962년 NASA는 존 글렌을 태운 ‘프렌드십 7호’를 우주로 보내 지구 궤도를 돌게 합니다. 이때는 막 IBM의 전자 컴퓨터가 NASA에 도입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시 NASA 엔지니어들은 덩치만 큰 전자 컴퓨터보다 오히려 인간 컴퓨터를 더 신뢰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당시엔 그랬습니다.
존 글렌은 ‘프렌드십 7호’ 발사를 앞두고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이 있었겠죠. 당시 유명인사였던 그가 NASA에 제시한 한 가지 조건은 캐서린의 입지를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습니다.
“그 소녀(캐서린)에게 숫자들을 더블체크해달라고 하세요. 그녀가 좋다고 해야 저는 준비될 겁니다.”
아무도 몰랐던 세 영웅을 소환하다
글렌은 무사히 돌아왔고 미국의 ‘머큐리 프로젝트’는 제니미, 아폴로로 진화합니다. NASA는 ‘아폴로 1호’ 발사 실패로 좌절을 맛본 이후 절치부심해 계속 아폴로호를 우주로 보냈고 마침내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데 성공합니다. 비록 케네디는 인류 첫 달 탐사를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호언장담은 끝내 결실을 본 것입니다.
캐서린 존슨은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한 산증인입니다. 현재 99세인 그녀는 뒤늦게 업적을 인정받아 2015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메달을 수상했습니다. 영화 ‘히든 피겨스’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뒤엔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올라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죠. 그녀는 자신의 업적에 관해 NASA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당시 우주에 관한 수학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만의 교과서를 썼습니다.”
매주 많은 영화가 개봉하고 그 속에는 수많은 영웅이 등장하지만 ‘히든 피겨스’의 세 흑인 여성이야말로 아무도 몰랐던 역사 속 영웅을 소환했다는 점에서 뜻깊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들의 용기와 진취적인 행동들이 한 걸음씩 전진해 이룬 결과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영화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기분 좋은 웃음과 차분한 휴먼 드라마로 이들의 숨겨졌던 삶을 복원해냅니다.
히든 피겨스 ★★★★
숨겨진 세 영웅을 따뜻하게 비추다.
원문: 유창의 무비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