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퀸마마 마켓에 다녀왔다.
도산공원 바로 옆에 ‘어른들을 위한 서점’이 생겼다길래 호기심에 찾았다. 솔직히 「츠타야 서점이 말하는 ‘진짜 기획’」을 써놓고도 츠타야 서점에 가보고 쓴 건 아니니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게 사실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한국에서 이런저런 콘셉트로 서점들이 생겨나는 걸 보며 재미있고 새로운 시도는 맞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돈’으로 연결될지는 의문이 있었다.
퀸마마 마켓을 가본 것도 큰 기대나 연구보다는 주말의 허세에 가까웠다. 그런 점에서 이런 콘셉트가 일단 사람들을 ‘오게 만드는 것’은 맞는 것일 수도… 어쨌든 여기에서 무려 5만 3,800원을 써버렸다. 이 돈이면 내가 좋아하는 너구리를 60봉지나 살 수 있는 돈이고, 매주 2봉지씩은 먹으니까 적어도 반년은 버틸 수 있는 양이다.
5만 3,800원은 책 2권과 마스킹 테이프, 무지 노트 1권. 심지어 놀라운 것은 내가 교보문고에 갔다면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사지 않았을 요상한 책 1권도 샀다는 것이다. 살 때는 몰랐지만 정작 집에 오는 길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 편의점에 들르는 나를 보며, 굉장히 이상한 소비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왜 나는 그 장소에서 그 순간 ‘돈’을 썼을까. 일단 1층에서는 사진 찍는데 더 시간을 많이 쓴 것 같다.
‘오~ 요런 분위기야? 잘 꾸며놨네. 오~ 이런 제품이 있어? 와 근데 개 비싸네.’
여기까지는 여전히 허세의 영역이었다. 나와 그닥 연관성이 없는 제품에 비싼 가격, 하지만 느낌은 있는 그런 곳.
그리고 1.5층에서는 첫 구매가 이뤄졌다.
‘엇, 무지 노트 사려 했었는데 여기도 파네? 에이 근데 좀 비싸… 엇, 싼 것도 있다. 디자인도 괜찮네?’
마침 1.5층 알바생도 내 스타일이었다.
‘오ㅎ’
말도 걸어 봤다.
“이 공간은 어떤 공간이죠?”
“어…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곳이요.”
직원도 어떤 라이프스타일인지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길래 더는 안 물어봤다.
2층으로 올라갔다. 실용성은 없지만 독특한 제품들이 있었다. 마치 돈보다는 내가 어떤 곳인지 보여주기 위해 안달이 난 곳 같았다.
‘야… 이런 건 뭐 하루에 2개는 팔리나?’
3층으로 올라갔다. 드디어 서점이 나왔다. 일단 소위 말하는 요즘의 베스트셀러는 단 한 권도 없었고, 베스트셀러라는 푯말도 하나 없었다. 다만, 한쪽 벽이 탁 트여서 도산공원을 바라보고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햇살과 바람이 딱 적당히 들어오는 테라스가 있었다.
‘오, 저 자리에서 책 읽다 가야지.’
그러고 나서 책들을 살펴보니 온통 주제가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미니멀리즘, 덕후, 여유 있는 삶에 대한 책들이었다.
이제부터 내가 책을 고르는 선정기준은 ‘저 예쁘고 느낌 있는 테라스에서 지금 당장 읽을 책’이 되었다. 이게 결정타였다. 내가 교보문고에서 책을 고를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준으로 책을 고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삶의 여유와 여백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야.’
심지어 책을 2권 사서 나올 때는 나름 느낌 있어 보이는, 하지만 나에게는 절대 필요가 없는 마스킹 테이프까지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마지막 4층으로 올라갔다. 길쭉한 테이블이 한가운데를 차지했고, 봄을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은 테라스도 있었다. 사람들이 제일 많은 공간이자, 수다를 분출하는 공간이었다. 3층까지 올라오며 한껏 ‘나는 이런 인간이야’라는 멋에 취한 사람들이 4층에서 그 멋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1-3층은 음악도 향도 분위기도 아주 조용하고 차분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 공간에 어울리기 위해 아주 조용하고 차분했다. 그래서 4층은 배설의 공간인 것 같았다. 아마 테라스에 자리만 있었다면 나도 동참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게 내가 퀸마마 마켓에서 6개월 치 너구리 살 돈을 한꺼번에 소비하게 된 과정이다. 정리하자면 일치감이었던 것 같다. 공간의 분위기, 인테리어, 알바생의 외모, 음악, 향기 그리고 여기에 어울리는 제품 구성. 이 모든 게 통일되어 그곳에 동화되게 만든다.
퀸마마 마켓이 있는 4층짜리 건물의 외벽은 바깥 공간과 다른 ‘삶’로서 이 안에 있을 때의 나를 평소의 나와 철저히 구분시켜줬고, 음악과 향과 인테리어와 알바생들은 이 공간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말’이 아닌 ‘진짜’로 느끼게 만든다. 대부분의 제품이 나와 상관도 없고 가격도 비쌌지만 공간의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울렸고, 개중에 필요성과 가격 면에서 그나마 나와 맞는 제품을 만났을 때는 바로 지갑을 열게 됐다.
그리고 3층까지 올라갔을 때는 이미 나의 구매 기준마저 달라져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통일되어 나를 설득했다.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이야’라는 ‘말’은 알기 쉬운 콘셉트로서 사람들이 이 공간까지 찾아오게 만드는 단계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그다음부터는 말로 하지 않는다. 웹과 모바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공간’의 힘을 최대한 활용한다.
내가 가봤던 한국의 서점(사실 서점은 한 층에 불과하지만) 중에 지적 자본론에서 말하는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가장 잘 이해한 서점인 것 같다.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라는 것은 공간이 가지는 모든 요소를 통일성 있게 활용해 동화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안은 실제로 ‘돈’도 쓰게 만들더라. 이 모든 게 ‘공간’이 가지는 힘이다. 우리가 외국이라는 낯선 공간에 가면 조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라이프스타일 제안은 곧 공간의 설득이다.
원문: 이재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