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학생일 때 다툼이 벌어졌다. 난 그때 한 연구과제 팀장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새로운 연구과제가 열렸다. 팀장들끼리 누가 새로운 과제를 맡을 것인가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아무도 본인의 연구와 관련 없는 일을 맡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 과제는 새로 들어온 박사과정 학생에게 돌아갔다. 그 학생도 그 연구를 하려고 박사 진학한 건 아니었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1년 반 동안 독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돌아와 보니 그 과제는 새로 들어온 석사생들이 하고 있었다. 나는 팀장으로 복귀했고 팀원들과 연구 세미나를 시작했다. 나는 서로 연구 내용을 나누고 독일에서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과제 진행 보고 같은 거 말고 정말 논문 읽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만 발표하자고 제안했다.
첫 세미나 발표 때 분위기가 이상했다. 석사생들끼리 ‘이 연구는 내가 먼저 발표했어’, ‘이 아이디어는 내가 먼저 낸 건데 왜 네가 발표하니’, 이런 얘기가 오갔다. 결국, 그런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발표를 중단시키고 개인 미팅을 하며 두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명 중 먼저 들어온 석사 학생이 새로 시작된 과제 팀장을 맡게 되었단다. 그리고 6개월 후에 두 번째 석사 학생이 들어왔고 그 둘이 같이 과제를 하게 되었다. 첫 번째 팀장 학생이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내놓은 상태였는데, 아직 구현하고 검증할 만한 실력이 안 되었다. 그 사이 두 번째 학생이 그 아이디어를 구현해서 교수님께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때부터 그 둘 사이는 경쟁 관계가 되었고, 선배들의 지도를 받는 것부터,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 주제를 정하는 것까지 둘은 계속 부딪쳤다. 늦게 시작한 친구는 성격이 사교적이라서 선배들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 팀장 친구는 성격이 우직하고 자존심이 강해서 물어보기보다는 혼자 끙끙 앓는 스타일이었다.
둘 사이의 대화는 단절되었고, 두 번째 친구는 선배들 도움을 받아 계속 아이디어를 구현하며 결과를 내는 사이에, 첫 번째 팀장 친구는 점점 연구실 사람들과는 멀어지고 뒤에서 남몰래 칼을 갈며 혼자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그 팀장 친구는 내가 돌아오자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두 번째 친구가 지금껏 해 놓은 것은 사실은 다 본인이 처음 제시한 아이디어였고, 그 아이디어를 빼앗겨서 너무 억울하고, 이제는 자기를 인정해주고 자기편이 되어달라는 울부짖음이었다.
그날 둘은 정말 심하게 싸웠다. 선배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 연구가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는데 어떻게 중재할 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그다음 주에 독일에서 학회가 있어서 그 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독일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독일 연구실의 연구 분위기. 하고 싶은 연구 마음껏 할 수 있고, 서로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고, 생각이 다르면 치열하게 토론하고, 그리고 관심 분야가 같으면 자연스럽게 협력하고… 이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해보자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들이 싸울 수밖에 없던 근본적 원인
그동안 내가 경험한 독일 연구실과 다시 경험한 한국의 연구실 분위기가 겹쳐 보였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왜 같이 연구하는 동료끼리 싸워야 할까?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분노와 이유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독일에서 다니던 교회를 찾아가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물었다. 무엇이 잘못된 거지? 그 녀석들이 이상한 친구들인가? 아니면 교수님이 선배들이 지도를 잘 못 해주었나? 그 연구과제가 문제인가?
그러다가 문득 그 문제의 원인이 바로 나에게서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그 과제는 내가 거절한 과제였다. 내가 내 일 바쁘다고 내가 관심 없는 연구라고 다른 팀장에게 미루고, 결국 그 일은 미루고 밀려 새로 들어온 석사생에게 돌아간 것이다. 연구가 무엇인지 배우기 위해 석사생이 된 친구에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배우기 전부터 연구과제를 책임지고 수행하게 된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친구인데 ‘모르겠습니다’라는 말보다는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연구실에 처음 들어와서 선배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 보았고,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 혼자 밤새가며 책을 뒤적거렸을 것이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또 후배가 자기보다 더 인정받는 걸 보며 얼마나 불안했을까?
이런 어렵고 힘든 상황이 그들에게 주어진 건 바로 나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이었다. 독일로 교환학생 가기 전에 새로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내가 맡고 있던 일들을 마무리하기에만 급급했다. 이런 나의 2년 전 이기심이 내리고 내려와 한창 재밌게 공부하며 연구를 배워가야 하는 석사생들에게 그 모든 무거운 짐을 지게 했구나.
그 모든 분노와 슬픔은 자책과 회개로 변하였다. 통곡하면서 울었다. 내가 항상 비판하며 조소했던 우리나라 연구 환경에 내가 일조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혼자만 거룩한 척 혼자만 선진 문물을 경험한 지식인인 양 행세했다. 후배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불만만 가지고 있었다. 후배들이 연구에 열정이 없다고 비난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는 그 친구들을 도와주리라 다짐했다. 내 이기심으로 고통받는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왜 그런 사람들을 놓치게 되는 걸까
일 년 뒤 그 두 친구는 다행히 무사히 석사졸업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힘들게 졸업연구와 과제를 병행하며 그 두 친구 모두 연구의 재미와 보람을 찾지는 못했다. 모두 진학은 하지 않고 회사로 취직했다.
그들이 연구에 소질이 없었을 수도, 열정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상황에서 석사과정을 보냈다면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운이 좋아서 석사과정도 박사과정도 좋은 선배들 지도받으면서 재미있는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독일로 교환학생을 두 번이나 다녀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친구들 같은 상황이었다면 내가 계속 연구를 하고 싶어 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쉽게 ‘나는 그래도 연구를 계속했을 거야’라고 대답할 자신은 없다.
그 이후로도 연구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포기한 친구들을 몇 명 더 보게 되었다. 그중에는 정말 똑똑하고 재능이 많은 친구도 있었다. 왜 이런 사람들을 놓치게 되는 걸까?
졸업 이후 독일로 와서는 지금까지 총 9명의 석사 학생들을 지도해왔다. 첫 번째 지도한 중국 학생은 석사 때 로봇 분야에서 가장 좋은 학회 논문 2개에 저널 논문 1개 쓰고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두 번째 지도한 러시아 학생 역시 좋은 학회 논문 쓰고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우리 연구실에 다른 석사 학생은 학회에서 베스트 페이퍼도 받았다.
이들이 한국의 내 후배들보다 더 똑똑하지도 않다.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주어진 시간에 공부하고 연구 방법을 배우고 지도를 받아 성실히 단계를 밟아 가는 것뿐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말이다. 독일의 연구실과 한국의 연구실이 슬픔 가운데 겹쳐 보이던 그 날 이후부터 나는 지금까지 이 질문을 멈출 수가 없다.
‘왜 한국 학생들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없을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다는 것 알고 있다. 한 두 개 바꾼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힘들다고 이 문제를 그냥 모른 체 해야 할까? ‘하고 싶은 연구’, 그 말은 곧 ‘꿈이 있는 연구’라는 뜻이다. 꿈이 있으므로 연구가 하고 싶은 것이다. 모든 것이 경제논리로 결정되는 이 세상에서 꿈이 없는 연구에서는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 나올 수 없다.
포닥펠로우쉽 제도를 확대하는 것은 어떨까
나는 이 문제의 실마리를 포닥펠로우쉽 제도를 확대함으로 풀어보고 싶다. 이 제도는 하고 싶은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품었던 꿈을 놓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제도이다. 불신과 감시보다는 신뢰와 자율에 의지한 제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추구하는 제도이다.
포닥이 박사과정을 도와주고, 포닥이 석사과정을 지도하며 노하우가 전수될 수 있다. 스펙, 실적, 졸업 이런 것이 목표가 되는 연구가 아니라, 정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연구가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더 이상 내 후배처럼 무거운 짐을 진 채 연구 실적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학생들은 서로의 짐을 내려 줄 수 있고, 같이 생각을 나누며 그 속에서 더 창의적인 연구가 나올 것이다.
연구 분야와 상황에 맞게 중소기업과 연구소도 포닥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 이들의 젊음과 전문성, 자율성은 업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이들이 서로 교류하며 산학연 협력의 매개체 역할을 할 것이다. 그 안에서 진정한 융합 기술이 만들어질 수 있고 실제 창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돈만 벌기 위한 아이디어성 창업이 아니라 정말 독창적이고 성숙한 기술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는 창업 말이다.
원문: Koosy Koo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