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Financial Times에 게재된 Janan Ganesh의 ‘Masculinity crisis? What crisis?’를 번역한 글입니다.
뉴욕에 머물면서 뉴욕의 남녀 성비를 보고 있으면, 혹시 제가 모르는 세계대전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똑똑한 여성들이 대도시에서 일합니다. 이런 현상은 도시 남성들에게 더욱 낭만적인 기회를 제공하면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압박을 조금 해소해 주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남성성이 위기에 처했다고 하지만 뉴욕에 있으면서 저는 그런 점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런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로운 남성의 역할이 이 시대 남자들에게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성성의 위기라는 개념은 성 평등 연구에 나오는 하나의 개념에서 이제는 마치 지금 시대에 아주 당연한, 의심할 여지 없이 존재하는 하나의 사실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주 틀린 개념은 아닙니다. 쇠락한 공업지대(rust belt)의 남성 자살률이 올라가고 있고, 약물을 남용하는 남성의 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남성들과 함께 자기 자신의 욕구를 그 어느 세대보다 충분히 충족시키면서 사는 다른 남성들도 많습니다. 과연 남성성은 진정 위기에 처한 걸까요?
남성성의 위기는 일반화하기에는 지나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반세기의 세월은 어떤 남성들에게는 가혹했지만, 다른 그룹의 남성들에게는 많은 기회를 주었습니다. 남성성의 여러 가지 면 가운데 근면·성실한 성향, 가정을 보호하고 싶은 욕구,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는 가장으로서의 자존심 등은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남성적인 욕구, 예를 들면 탐험하고, 마음껏 즐기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싶은 욕구들은 오히려 더욱 충족되었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을 하고 보수적인 습관을 지닌 사람들은 육체적 노동이 주는 고귀함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합니다. 이들에겐 배우자를 만나는 과정도 힘들어졌습니다. 도시에서 자라고 많은 교육의 기회를 누렸던 남자들에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 이후 언론들은 트럼프의 당선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전자의 경우가 마치 전체 남성을 대변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남성성의 위기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인 것처럼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천만 명의 남성들은 새로운 시대가 제공한 기회를 잡고 그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누리지 못한 자유를 그들은 누리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는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가져볼 기회가 없었으며 매우 좋은 직업을 가진 여성과 결혼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약해 보일 기회가 없었으며 주변의 소문과 시선에 젊은 세대보다 훨씬 더 취약했습니다. 그들이 젊은 세대를 부러워한 나머지 남성성이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번 주말에 서른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소위 남자들이 득세하던 시절에 태어났다면 저는 지금쯤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저에게 제공된 보다 폭넓은 선택권이 좋습니다.
저는 계층 간의 격차가 훨씬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 계층 남자(Working-class men)야말로 본인의 위기라고 주장할 권리가 있고, 언론에 의해 더 많이 알려져야 하고, 학계는 이런 계층을 연구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정부 지원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