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노트는 유치원, 어린이집 대상 스마트폰 알림장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의 이름이자 서비스 명칭이다. 2012년 4월 설립되었고, 2015년 1월 카카오(당시 다음카카오)가 100% 지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얼마 전 이 키즈노트 서비스가 몇 가지 기능 업데이트를 하면서 유료 수익 모델을 내놨는데 그 방법이 좀 놀랍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키즈노트를 쓰는 사용자분들이나 스타트업 업계에 계시는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키즈노트의 ‘일괄 다운로드’ 기능
키즈노트는 주로 선생님이 써주는 알림장이나 사진, 동영상을 보기 위해 사용한다. 유치원,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 찍어 올리는 사진이 키즈노트에 매일 쌓이고 학부모들은 이 사진, 동영상을 컴퓨터로 다운로드 받아 둔다.
그런데 키즈노트에는 사진, 동영상 일괄 다운로드 기능이 없었다. 얼핏 생각하면 이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사실 그렇지가 않다. 사진 1장을 다운로드하려면 원하는 앨범을 클릭하고 특정 사진을 클릭한 다음 ‘원본 다운로드’라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400장의 사진이 있다고 가정하고 1장당 다운로드 시간이 20초 걸린다면 단순히 계산했을 때 8,000초가 걸린다. 학부모가 컴퓨터 앞에서 꼬박 2시간가량 마우스 노동을 해야 내 아이의 사진을 전부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사진 일괄 다운로드’ 기능의 부재는 수백 장의 사진을 일일이 다운로드해야 했기 때문에 공인인증서와 인터넷 결제만큼이나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키즈노트의 내 아이 사진, 동영상을 일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능을 크롬 확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배포하여 나도 쓰고 다른 사람도 이런 고통에서 해방되기 바랐다.
그러나 한동안 잘 사용하던 이 크롬 확장 프로그램이 언젠가부터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때마침 키즈노트에서 개선한 서비스를 통해 ‘일괄 다운로드’ 기능을 정식으로 지원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반가운 일이었다. 프로그램도 이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능을 사용해 보기 위해 다운로드 버튼을 눌렀는데 웬걸, 선택한 개월 수에 따라 $2.19 ~ $4.39씩 결제를 해야 했다. 선택한 개월이 12개를 넘어가면 재결제까지 해야 했다.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강제로 쓰면서 내 아이의 사진을 내려받는데 돈을 내라니” 짜증을 넘어 분노의 감정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크롬 확장 프로그램의 404 CORS 이슈를 수정해 재배포하려 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현재 해당 프로그램을 ‘미등록’ 상태로 변경하여 링크가 있는 사람만 볼 수 있고 크롬 웹스토어 검색은 되지 않는다) 이유야 어쨌든 ‘일괄 다운로드 기능’을 돈을 받고 팔기로 결정한 키즈노트의 비즈니스를 망칠 수 있기도 했고 – 크롬 확장 프로그램으로 내가 얻는 수익은 없지만 – 의도치 않게 유, 무형의 부당 이익을 취하게 되는 위험성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부당한 감정의 근원
키즈노트를 쓰면서 종이 수첩에 아이들 사진을 인쇄해서 오리고 붙이는 과정이 줄었으니 분명 선생님들의 업무에는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학부모들도 자의 반 타의 반 쓰게 되었지만, 그때그때 오는 푸시 알림으로 사진을 볼 수 있고 기존에 불가능했던 동영상까지 가능하니 나쁘지 않았다.
반면 학부모가 종이 수첩과 키즈노트 사이에서 어떤 것을 사용하고 싶은지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은 불편했다. 그리고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키즈노트가 내 아이의 사진을 가지고 돈을 받겠다고 했을 때 불편함은 부당함이 되었다.
서비스의 성격
비석세스의 키즈노트 보도자료에 따르면 키즈노트의 사이트 재방문율이 99%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사이트 재방문율의 의미를 사용자의 만족도를 반영한 지표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etention Rate로 표기되기도 하는 재방문율은 분명 서비스 분석과 평가에 중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키즈노트 서비스엔 해당되지 않는다. 키즈노트를 사용하는 유치원, 어린이집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종이 수첩 알림장, 키즈노트, 그리고 다른 알림장 서비스 사이에서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 어린이집이 결정하면 학부모들은 따라야 한다. 매일 받아봐야 하는 아이의 소식을 다른 방법으로 받을 수 없으니 키즈노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접속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달성한 재방문율 99%는 서비스 평가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키즈노트 서비스에 감춰진 문제점과 풀어야 할 숙제를 역설한다.
‘나쁜’ 수익 모델
서비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학부모들에게 ‘내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돈을 주고 내려받게 하는 것은 나쁜 수익 모델의 전형이다. 한 장 한 장 개별로 내려받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좋은 질문이다. 나쁜 수익 모델의 공통점은 이렇게 얼핏 생각해보면 타당하고 잘못된 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특징이 있다. 더구나 키즈노트의 ‘추억 다운로드하기’ 유료 서비스는 기존 고객들에게 원래 없었던 고통(Pain point)을 새로 만든 다음, 이를 돈 받고 해결해 주겠다는 점에서 질이 더 나쁘다.
아래는 이런 문제와 관련된 ‘나쁜 이익은 회사를 좀먹는다’라는 위클리 비즈 칼럼의 일부다.
몇 년 전 이탈리아 출장 중 묵었던 부티크 호텔에서 겪은 일이다. 필자는 긴요하게 해외 연락이 필요해 객실에서 전화와 팩스를 사용했다. 이틀 동안 전화 회의 한 시간을 포함해 다섯 통의 전화를 걸었고 전화 회의 중에 10페이지의 회의 자료를 팩스로 보냈다. 그런데 체크아웃을 하면서 사용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숙박료는 600달러 정도였지만 전화와 팩스 비용이 2000달러가 나왔기 때문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매니저에게 왜 처음부터 서비스 요금 등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냐고 항의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필자는 그 호텔의 팩스 비용이 장당 10달러이고, 비싼 전화 요금에 더해 부가수수료까지 붙는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씁쓸한 마음을 안고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베인 앤 컴퍼니 분석에 따르면 이런 ‘나쁜 수익’이 전체 이익의 25%에 이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 스팸 광고 영업 전화인 줄 알면서 가입과 사용을 방치하며 가입비와 통화료를 얻는 통신사, 과다 연체 수수료를 물린 미국의 DVD 대여 체인 블럭버스터(Blockbuster), 전화, 팩스, 청소 등의 부가서비스에 높은 비용을 책정하고 제대로 고지하지 않는 호텔 등이 이런 ‘나쁜 수익’의 예다.
키즈노트의 ‘진짜’ 재방문율
자녀가 키즈노트를 쓰는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상태에선 이 앱을 쓰지 않으면 아이 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종이 알림장을 선호하는 학부모도, 키즈노트 서비스를 쓰고 싶지 않은 학부모도, 모두 선택권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키즈노트의 진짜 재방문율을 알기 위해선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를 가진 학부모들이 얼마나 다시 키즈노트에 방문하는지를 봐야 한다.
아이가 졸업한 후에도 학부모들이 키즈노트에 방문해 뭔가 하도록 만들 기회는 길어야 6년(어린이집 입학~유치원 졸업)이다. 전국 유치원, 어린이집의 30%가 쓰고 있다고 가정하면 사실상 6년이 안 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 기간은 키즈노트가 이탈하는 고객을 잡고 충성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소중하고 유일한 기회다. 그러나 키즈노트는 지금 그 시간을 단돈 몇 달러를 버는데 투자하고 있다. 12개월 치 사진 일괄 다운로드 비용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4.39다. 키즈노트는 이 수익을 얻고 1명의 고객을 잃는다. 다른 기업들이 1명의 신규 고객 유입을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 비슷한 규모의 비용을 책정하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냥 웃으며 지나칠 일이 아니다.
물론 키즈노트가 이런 수익화를 기반 삼아 더 잘될 수 있다. 그건 전적으로 키즈노트의 역량에 달렸으며 한 명의 소비자가 예측하거나 좌지우지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은 키즈노트의 고객으로서 드는 생각은 조금만 더 버티면 졸업을 하니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과 다음에 입학할 곳은 제발 키즈노트를 안 쓰는 곳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마무리하며
키즈노트는 스마트폰의 편리함을 줬지만 종이 수첩 알림장의 장점을 모두 빼앗아갔다. 키즈노트를 쓰지 않는 곳에 다닐 때 썼던 종이 수첩 알림장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책장에 꽂혀있지만 키즈노트 알림장은 그렇지 못했다.
차라리 한 학년이 끝나고 그동안의 이야기와 사진, 동영상을 예쁜 종이 수첩으로 만들어 주는 유료 서비스를 했다면 어땠을까. 없던 고통을 만들어 학부모를 괴롭히지 않고, 종이 수첩의 상실감을 보듬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아직도 키즈노트에겐 많은 기회가 남아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새로 자녀를 입학시키며 키즈노트를 설치했던 학부모와 졸업하면서 키즈노트를 지웠던 학부모가 있었을 것이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아파하는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빠르게 수정하고 다시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민첩함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키즈노트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키즈노트를 썼던 아이들이 커서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옛날 키즈노트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서비스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원문: 로디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