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합뉴스의 나무위키 기사 “나무위키 10년…유머로 키운 ‘잡학다식’의 숲”에 코멘트로 응한 것의 풀 버전. 기사 본문에 다른 분들의 멘트와 기초 사실 등 다양한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으니 그쪽을 먼저 추천하지만, 이쪽은 내 견해만 펼친 것.
1. 나무위키 발전 과정 관련
위키피디아는 초기부터 공동창안자인 래리 생어가 “사전”이라는 모델을 상정해서 몇 가지 핵심 규칙을 두었는데, 예를 들어 이런 거죠.
- NPOV: 자체적인 시점을 두지 않음
- verifiability: 정보의 검증 가능성, 즉 자체 결론이 아니라 외부 문헌의 인용이 기본
한편 나무위키는 건담 향유커뮤니티(엔하위키의 엔하가 ‘엔젤하이로’, 즉 건담 연작 중 하나에 등장)에서 건담, 나아가 그 팬층이 즐기는 서브컬쳐 작품들의 관련 설정 축적이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백과의 외양을 띄면서도 사실은 감상 포인트를 교류하는 향유공동체 특성이 훨씬 중요했던 거죠. 그리고 농담과 주관적 설명이야말로 감상 포인트의 핵심입니다.
영어 위키피디아의 규칙을 고스란히 계승한 한국어 위키피디아보다 엔하위키의 더 콘텐츠가 풍부해진 것은 관점을 조율 내지 제거하기, 외부 근거를 확인하고 인용하기 같은 어렵고 지난한 절차 없이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바를 재빨리 공식화하는 쾌감 덕분이라고 봅니다. 게다가 유머라는 요소의 구심력은 특히 한국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구축에 있어서 매우 강한 변인이 되어왔습니다. 유머가 자석이 되어 여러 토픽으로 뻗어 나간 방식을 꼽자면 일베는 물론이고 멀리 나우누리 유머 게시판까지도 올라갈 수 있죠.
2. 나무위키의 전반적 콘텐츠 질에 대해 평가
전반적 콘텐츠 질은, 엇갈리는 관점들이 설명되어야 하지 않고 검증이 이미 된 단순사실의 모음일 경우에는 높은 편입니다. 예를 들어 ‘서양 갑옷’이라든지 말이죠. 하지만 ‘페미니즘’ 항목 같이 엇갈리는 관점들을 조율해야 하며 특히 서술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편견을 통제하는 작업이 필요한 경우, 엉망입니다. 관점의 조율과 통제, 사실 확인 과정이 위키피디아 같은 ‘백과’ 모델과 비교하자면 대단히 부실하기 때문이죠. 서브컬쳐 정리공간에서 유사 종합백과로 폭이 넓어지면서 후자의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위키라는 참여방식 특성상 편향성은 발생하고, 정확도 떨어지는 정보가 올라올 수 있습니다. 관건은 그런 게 적발되었을 때 ‘얼마나 효율적으로 정정이 이뤄지도록 장치가 되어있는가’인데… 온갖 에디터 등급과 온갖 봇과 강력하고 구체적인 규율로 움직이는(그래서 최근 수년간은 오히려 역동성이 떨어진다고 비판받는) 위키피디아와 달리 나무위키는 관리자가 편집을 막는 극단적 조치 빼고는 사실상 단순한 배틀로얄입니다. 마지막까지 계속 덤벼서 고쳐놓는 쪽이 관철되죠. 더 정교한 분쟁 반영체계, 정정 장치 등이 필요합니다.
3. 소유 구조 개선 관련
규모에 적합하게 관리를 하는 것은 돈이 필요합니다. 특히 더 향상된 토론 방식이나 기타 품질관리를 개발하려면 더욱 돈이 필요합니다. 불투명한 소유주의 임의적 투자로 이뤄지는 방식은(한국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대부분 그렇듯) 자선에 의한 것이든 다른 이익을 노리든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식으로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유료 후원회원과 모금과 투자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 바탕 위에서 광고든 관련 상품 제작이든 추진할 수 있겠죠. 물론 장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영리 시비가 붙지 않을 텐데, 뭐 그건 진보넷을 위시하여 여느 시민단체들도 계속해오던 방식이니 충분히 참조할 만합니다.
더 인용하기 편하게 매력적인 사운드바이트로 압축하고 싶었으나, 잘 안되는군요(…) 마음 같아서는 “나무위키는 개드립의 힘으로 컸으나, 이미 대충 개드립으로 넘어갈 수 없는 소재 범위와 위상으로 올라와 버렸다”고 말하고 싶지만, 뭐 그렇습니다.
원문: capcold님의 블로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