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제안되는 “분권형 개헌” “이원집정부제 개헌” 등등은 그냥 아주 쉽게 말해서 “내각제 개헌”이라는 뜻입니다. 현존 세계에는 권력구조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있고, 그 전형에서 약간씩 서로의 제도를 혼용해서 쓰는 중입니다. 현행 우리 헌법은 약 90% 정도의 대통령제 성격을 가졌다고 보면 됩니다.
요즘 나오는 어쩌고저쩌고 개헌안은 약 80% 정도의 내각제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냥 내각제 하자고 하면 사람들이 다 김종필 떠올려서 싫어하니깐 그냥 말만 바꾼 겁니다. 대통령제는 정부 수반을 국민이 선거로 따로 뽑는 것이 핵심이고, 내각제는 정부 수반을 의회가 선출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의전만 담당하는 정부 수반만 국민이 선출하라고 하고, 실질적 권한을 가진 총리는 자기들이 뽑겠다는 말은 그냥 내각제 하자는 말입니다.
대선 전 개헌하자는 말은 한마디로 “대선 사전 불복”하겠다는 말입니다. 대선 전에 개헌해도 대선을 안 치를 수는 없습니다. 현행 헌법에서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으니깐요. 근데 대선에서 이긴 대통령은 취임 즉시 허수아비가 됩니다.
분권이니 뭐니 하지요? 권력을 나누긴 나눕니다. 대통령의 권력을 전부 의회가 가져오지요. 그래서 대통령이 허깨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국민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의사표시였던 대선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겠다는 말이며, 대통령이라는 대한민국 권력을 선출한 국민의 선택을 자기들이 엎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내각제 개헌을 한다면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합니다. 내각제의 국회의원과 대통령제의 국회의원은 그 성격과 권력의 크기가 매우 다릅니다. 내각제 국회의원의 권력이 훨씬 큽니다. 왜냐하면 국회의원들이 정부 수반을 선출하는 권력을 갖게 되니까요.
그렇다면 내각제 개헌과 함께 총선거를 치러서 새로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지금의 국회의원을 대통령제 하의 권력을 행사하라고 뽑아준 것인데, 지들끼리 작당해서 훨씬 큰 권력을 갖겠다고 나서면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입니다. 내각제 개헌과 맞물린 국회의원 총선거가 없다면 그건 합헌의 외피를 둘러쓴 위헌적 권력침탈행위입니다.
저는 내각제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반감이 없습니다. 대통령제에 대한 선호도가 약간 더 높을 뿐입니다. 이거야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그냥 토론하면서 남의 생각을 들어보면 그만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대선 전 개헌을 들먹이면서 내각제를 꺼내는 것은 정말로 실질적 국민주권 침탈행위에 다름아닙니다.
원문: 하승주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