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세 대선후보 토론회가 있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리… 이정희 후보가 참석했다. 후보간 토론에 대해서 문재인 후보는 빨리 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고 박근혜 후보는 ‘아잉 난 몰라잉’한 태도로 문 후보와 단 둘만의 자리를 갖고 싶어했다. 뭐가 그리 부끄러워서 그러나 싶은 생각도 잠시 이정희 후보에게서 나온 잇단 폭탄발언은 박근혜 후보는 물론이오 시청자들 마저 혼란의 카오스로 빠져들게 했다.
그 토론회를 요약한 한 트윗이 인기를 얻었는데, 소개하자면 이런 것이다.
이정희: 나는 잃을 것이 없다.
박근혜: 나는 읽을 것이 없다.
문재인: 나는 낄 데가 없다.
(출처: 트위터 @ballboxx)
본디 덕이란 모든 것을 덕의 눈으로 보고 또한 덕의 눈으로 판단하는 법. 최근 급증하고 있는 야빠들을 위해 준비했다. 대선같은 빅 이벤트를 앞두고 평범한 야빠라면 프로야구판을 빗대 대선 구도를 설명하려 하겠지만, 진정한 덕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역으로 대선 구도를 한국 프로야구판에 대입, 내년의 프로야구 판세를 예상한다!
우린 걱정할 것이 없다: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즈,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현 상황에서 내년시즌 4강 진출이 유력한 팀들이다. 사실 현재 한국프로야구에서 4강 팀은 어느 정도 고착된 상황이다. 최근 5년 동안 4강 팀은 삼성, SK, 두산, 롯데, KIA 다섯 팀 중에서 결정됐다. 5C4의 수열문제와 같다고나 할까. 다음 시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질 공산이 높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는 한국 정치상황과도 유사하다. 올해 4위팀이었던 롯데가 빠지고 KIA가 진입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롯데는 전력누수가 심했다. 반면 KIA는 감독 2년차 선동렬 감독의 지도력이 자리를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호타준족의 김주찬 영입에도 성공하며 부족했던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은 기존 전력을 그대로 유지한 것만으로도 우승후보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는데 심지어 망하지도 않았다. 올 시즌 초반 급격한 부진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올라올 팀’의 저력을 보여주며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성과를 낸 것만 봐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내년이 홀수 해라는 점에서 장원삼의 활약이 올해만 할까라는 의문도 들지만 그를 빼고 생각하더라도 삼성엔 투수가 부족하지 않다. 이승엽, 최형우, 박석민으로 이어지는 폭발적인 중심타선과 탄탄한 수비력까지. 상대팀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SK 와이번스 이만수 감독은 2011년부터 이어진 내부 사태를 비교적 잘 봉합하고 정규시즌 2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리더로서의 역량을 입증한 셈이다. 정우람의 군입대, 이호준의 NC행으로 전력에 누수가 있지만 내년 시즌 4강행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큰 무대에서 삼성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팀으로 꼽히기도 한다. 다만 4번 타자와 마무리를 비워두고 시작하겠다는 이 감독의 고민이 시즌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면 4강을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2012년 가장 의외의 성적을 거둔 팀은 두산 베어스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선수구성, 팀 분위기 등 어느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어 보였다. 개인성적을 봐도 올해 3위라는 성적은 아쉬운 측면이 있다. 이용찬, 노경은 등은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선발진에 힘을 보탰고 프록터를 중심으로 한 불펜도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김재호, 최주환, 허경민, 최재훈 등 어린 곰들이 가세하며 화수분 야구도 보여줬다.
문제는 공격력이었다. 육상부의 위력은 온 데 간 데 없어졌고 중심타자들의 장타는 실종됐다. 두산을 대표하는 김동주는 시즌 내내 이천 쌀밥만 먹었을 뿐 잠실구장에서는 머리털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올 시즌 부진의 원인을 리더십 부재로 파악한 두산 프런트는 홍성흔을 FA계약으로 4년 만에 불러들이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길 바라고 있다. 이러한 처방이 잘 맞아 들어간다면 두산의 내년 전망은 밝은 편에 속할 것이다.
우린 잃을 것이 없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NC 다이노스
이 세 팀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잃을 것이 없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LG와 한화의 경우 내년 시즌 9위를 하면 다소 잃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이 세 팀은 잃을 것이 없다는 입장에서 공격적인 시즌 운영을 할 필요가 있다.
LG와 가을야구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10년 째 섞이지 못하고 있다. 시즌 중후반만 되면 조루증처럼 풀이 죽어버린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는 선발투수 두 명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만에 하나 그 두 선수가 있었다면 LG의 올시즌은 어땠을까?
아무튼 이젠 잃을 것이 없다. ‘강남 도련님 야구’라는 비아냥을 듣는 선수들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잃을 것이 없다’는 식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포수 포지션에 대한 보강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조금 더 탄탄한 전력을 구축할 수 있다. 김기태 감독은 조계현 코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즌 투수를 대타로 내보내는 파격을 선보였다가 괜히 신뢰만 잃었다. 감독은 냉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김응룡, 김성한, 이종범. 이들이 다시 뭉친 곳은 호랑이굴 해태 타이거즈가 아니다. 2013년 대전의 독수리 둥지에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승을 밥 먹듯 하던 팀이 아닌, 지난 시즌 최하위이자 패배를 밥 먹듯 하는 팀에서 만났다. 패배의식에 절어 있는 선수들을 뜯어고쳐 4강에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그리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고등학교 팀 수준인 수비가 가장 큰 문제다. 1년 만에 개선될 가능성이 가장 낮은 부문이기도 하다. 설상가상으로 FA를 통한 외부전력 수급에도 실패했을 뿐 아니라 각종 전력 누수가 만만찮다. 우선 류현진이 팀을 떠나며 연패를 끊고 연승을 이어줄 에이스가 사라졌다. 그나마 불펜의 믿을맨 송신영도 NC로 떠나며 자칫하면 한화의 마운드는 배팅볼 공장이 될 수도 있는 위기에 봉착했다. 펜스를 뒤로 밀었는데 홈런은 더 많이 나오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악조건에 처한 만큼 코칭스탭을 비롯한 선수들도 위기감이 들 것이다. 위기감에서 비롯한 절박함과 끈기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령의 코끼리 감독님은 시즌 내내 참외로 뒷통수를 맞은 듯한 고통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프로야구의 아홉 번째 심장 NC 다이노스. 신생팀이다. 말 그대로 잃을 것이 없다. 프로야구 사상 최저 승률 따위의 ‘사건’만 아니라면 말이다. 같은 지역구 롯데와의 경쟁은 흥행에 큰 도움이다. 현장으로 복귀한 베이징 올림픽 전승우승의 주인공 김경문 감독의 팀 운영을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게다가 특별지명을 통해 전력이 급상승했다. 신생팀의 패기를 보여줄 수 있는 전력은 충분히 갖춰졌다는 평가다. 게다가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마산아재’들의 응원도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보인다. 기존 팀들은 NC를 만나면 항상 긴장해야 한다. 그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잃을 게 없는 외인구단이다.
우린 낄 데가 없다: 넥센 히어로즈
‘낄 데가 없다’고 표현했지만 그래서 내년 시즌 최고의 다크호스다. 한 온라인 야구게임에서 2012년 넥센은 최고 능력치 선수를 세 명이나 (나이트, 박병호, 강정호) 보유한 팀이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이 세 명의 선수가 모두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능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이 정도의 활약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신인왕의 주인공 서건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증된 선발투수와 마무리 그리고 4번 타자. 게다가 국가대표 유격수까지. 이들이 상식수준의 활약만 해낸다면 내년 시즌 강력한 4강 후보로 부상할 것이다.
이장석 넥센 대표에 따르면 신임 염경엽 감독은 ‘팀 체질개선에 적격’인 지도자라고 한다. 이 대표가 밝힌 ‘소통을 통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염경엽 감독에게는 이제껏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단순한 소문이었음을 입증해 지도자로서 인정을 받을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우린 걱정할 것도, 잃은(을) 것도 많다: 롯데 자이언츠
설상가상이다. 전력은 전력대로 빠져나갔고 야구팬들은 야구팬들대로 외면한다. 전력누수는 불가항력적이었다. 김주찬은 애초에 ‘가장 많은 돈을 주는 팀’을 가고자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FA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KIA행을 택했다. 이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김주찬이 50억의 가치가 있는 선수이냐가 논란이 되었는데 그에게 과다지출을 했다고 FA시장 과열을 욕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KIA의 팬이 아니라면 말이다. 경쟁자가 헛돈을 쓰는 건 상대적으로 득이 되는 일이 아닌가.
분위기 메이커 홍성흔도 친정 두산으로 돌아갔다. 고령의 지명타자에게 롯데가 제시한 조건은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허나 4년 보장을 원했던 홍성흔의 입맛을 맞춰준 건 친정팀 두산이었고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사실 전력보다 더 큰 문제는 야구 외적인 부분에 있다. ‘공식적으로는’ 10구단을 반대하는 유일한 구단이라는 딱지가 붙어 팬들로부터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또한 NC 다이노스가 롯데의 지역구였던 창원-마산지역을 연고지로 창단하면서 지역 팬들의 이탈도 예상된다. 일부 부산팬들 역시 상황을 보고 NC 다이노스로 응원팀을 옮기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팬 단속에도 신경 써야 할 상황이다. 예전 2000년대 초반 암흑기 시절의 ‘2연승 기념 할인’, ‘여름기간 관중에게 아이스크림 제공’ 등의 이벤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즌 일정도 최악이다. 이것이 10구단 반대에 따른 KBO의 보복은 아니겠지만 롯데팬들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사항이다. 홀수팀으로 리그를 운영하다 보니 이틀 이상의 휴식을 취하는 팀이 생기게 되는데 그 휴식을 치른 팀들과 가장 많은 경기를 갖는 팀이 롯데 자이언츠가 된 것이다. 쉬고 나온 상대팀의 준비된 원투펀치를 그대로 받아내야 하다 보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현재 롯데는 KBO에 질의서를 제출했고 일정수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일정상의 불리함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이처럼 롯데에게 내년은 힘든 시즌이 될 전망이다. 지난 5년간 항상 상위권에 위치하면서 강팀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2013시즌 4강은 장담할 수 없다. 자칫 하면 암흑기가 재림할 수도 있다. 전력과 일정뿐만 아니라 확 바뀐 코칭스태프가 얼마나 팀을 잘 정비할 지도 의문이다. 또 다시 김시진 감독과 정민태 코치를 만난 고원준은 벌써부터 음주운전을 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