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어릴 적만 해도 e-메일하면 ‘한메일’이었습니다. 제 첫 메일도 한메일이었고 인터넷을 처음 만난 제 세대 모든 친구들이 @hanmail.net으로 끝나는 메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메일은 ‘국민 메일’로 불리우며 승승장구했습니다. 네이버가 검색과 블로그를 앞세워 빠르게 쫓아와도 메일 만큼은 한메일이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철야성 같았던 한메일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8월 기준으로 네이버 메일이 한메일을 제치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출처:네이버 메일, 한메일 추월했다) 2005년만 하더라도 한메일이 네이버 메일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이용자가 많았는데 말이죠.
많은 전문가들은 네이버가 메일만큼은 한메일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메일 서비스와 같이 한 번 쓰게 되면 쉽게 옮겨가지 못하는, 일명 ‘락인효과’가 강한 서비스에서는 후발주자가 1위 사업자를 따라 잡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왜 다음은 네이버에 ‘국민 메일’ 자리를 빼앗기게 됐을까요?
회원제 사이트들의 ‘안티 메일’이 되다
2002년 4월, 다음은 갑작스럽게 정책 하나를 발표합니다. 바로 ‘온라인 우표제’ 입니다. 그 당시는 사회적으로 ‘스팸 메일’이 큰 이슈가 됐을 때입니다. 메일 주소를 개인 정보로 여기지 않았던 그 당시에는, 누구나 쉽게 온라인상에서 메일 주소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획득한 메일을 가지고 음지의 사업자들은 무차별적으로 메일 마케팅을 하게 됩니다. 성인물 광고, 불법 대출 등의 스팸 메일을 엄청나게 보내게 되죠.
이렇게 스팸 메일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자, 국민 메일이었던 ‘한메일’에 책임 있는 역할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오게 된 게, 바로 ‘온라인 우표제’입니다.
온라인 우표제란, 스팸메일의 접근을 막기 위해 메일을 대량으로 발송하는 업체들이 실명으로 메일을 발송하게 하고 대규모 메일 발송의 경우 돈(한 통당 10원)을 지불하게 함으로써 스팸 메일을 줄이고, 메일을 통한 수익화도 꿈꿨던 다음의 1석 2조의 정책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메일은 이로 인해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됩니다.
한메일 수신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메일 발송이 힘들어지게 되자 일반적인 회원제 사이트들이 회원 가입 시 한메일을 입력하지 못하게 해버린 겁니다. 어쨌든 회원제 사이트들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메일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한메일 가입자에게 보낼 경우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회원 가입 시 ‘한메일’을 입력하지 말아 달라는 권고 문구를 추가하게 됩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땠을까요? 지금에야 페이스북, 네이버 등을 통해 회원가입이 쉽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메일은 중요한 인증 수단이었습니다. 또한 사이트의 새로운 소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한메일로는 회원가입이 안 된다고 하니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여러 번 쌓이게 되자 사용자들은 짜증이 났고, 메일과 같이 락인효과가 매우 강한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메일로 갈아타게 됩니다. 바로 네이버 메일이죠.
결국 다음은 2005년 6월, 온라인 우표제를 폐지했습니다. 온라인 우표제는 다음과 사용자,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정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온라인 우표제를 시행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스팸은 잡을 수 없었으며 사용자들은 이미 떠나버리게 됐습니다.
메일을 처음 가지게 되는 ‘아이들’을 잡지 못하다
네이버는 ‘쥬니어 네이버’라는 영유아 및 어린이 대상 포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유아 및 어린이 대상의 서비스는 크게 돈이 되지 않습니다. 인적, 물적 리소스에 비해 ROI가 나오지 않는 서비스죠.
하지만 네이버는 ‘쥬니어 네이버’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꾸준히 PC/모바일 개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앱 업데이트도 굉장히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쥬니어 네이버 검색에 음성 검색을 붙여 타자가 미숙한 아이들이 음성만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꾸준히 투자하고 있습니다. 왜 네이버는 돈이 안 되는 쥬니어 네이버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걸까요?
바로 쥬니어 네이버가 아이들이 처음 만나게 되는 인터넷 포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쥬니어 네이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네이버 계정이 필요합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쥬니어 네이버 계정을 하나씩 만들어주게 되죠. 그렇게 아이는 네이버 계정을 인터넷 첫 계정으로 가지게 되고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네이버 메일, 네이버 블로그를 사용하게 됩니다. 성장하면서 네이버의 충성 고객이 되는 거죠. 그래서 네이버가 잠재적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쥬니어 네이버에 이렇게 열심히 인 겁니다.
그에 반해, 다음은 2004년 잘 나가던 ‘Daum 꿈나무’라는 아동 서비스를 접었습니다. 미국 라이코스 본사를 인수하면서 재정적으로 힘들어지게 되자 돈이 안 되는 서비스들은 접게 되었습니다. ‘Daum 꿈나무’ 서비스도 그중 하나였죠.
여기서 다음은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한메일 계정을 가지고 인터넷을 즐기는 아동층을 형성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그 아이들은 결국 모두, 쥬니어 네이버에서 놀게 됐죠. 쥬니어 네이버에서 놀던 그 아이들은 몇 년 뒤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었고 자신들의 메일로 자연스럽게 한메일이 아닌 네이버 메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사용자가 진짜 필요로 하는 ‘킬러 기능’에 밀리다
네이버는 한메일을 따라잡기 위해 그야말로 고군분투했습니다. 검색과 블로그 분야에서는 다음을 이겼는데 메일만큼은 한메일을 못 잡았습니다. 네이버 메일 담당자들은 이것저것 다양한 기능을 네이버 메일에 추가하며 한메일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생각해 낸 방법이 ‘메일 용량 증설’입니다. 사실 네이버 입장에서는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메일 용량 증설은 천문학적인 서버 비용 증가와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방법을 알고는 있었으나 실행은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메일은 돈을 벌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돈을 펑펑 쓰는 서비스죠. 클라우드 상에 사용자들의 메일을 모두 저장해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한 사용자당 1기가바이트를 메일 용량으로 제공했습니다. 2,000만 명이 써도 2,000만 기가바이트, 20만 테라바이트인 셈입니다.
하지만 네이버는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기존 1사용자당 1GB에서 5GB로 무려 5배나 무료 증설하게 됩니다. 20만 테라바이트에서 100만 테라바이트로 서버 비용이 5배나 더 들게 된 셈입니다. 데이터 비용에 대한 부담은 훨씬 커지지만 사용자들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킬러 기능으로 한메일과 차별화 승부를 띄우게 된 겁니다.
결국, 메일 용량 부족에 시달리던 많은 사용자들은 네이버로 넘어오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생각해보면, 네이버의 전략이 통했습니다. 메일로 사람을 끌어들이니 그 사람들이 네이버를 시작 페이지로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네이버 PV가 올라가자, 광고주들이 메인 배너 광고를 너도나도 수주하려고 하게 되죠. 네이버는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아마 승부수를 던졌을 겁니다.
이에 반해 다음은 메일 용량 증설에 미적거렸죠. 데이터 서버 비용이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광장 사업론’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현재 수준에서의 플러스, 마이너스만 봤습니다. 그 결과, 네이버에 많은 사용자를 넘겨주게 되어 버렸죠.
이 밖에도 다음은 많은 것을 네이버에 빼앗겼습니다. 카페도 다음이 원조지만, 같은 이름을 쓴 네이버 카페에 밀렸죠. 웹툰도 다음이 먼저 선보였지만 결국은 네이버 웹툰의 독보적 1위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음이 이렇게 된 이유에는 결국 ‘검색 고도화 실패’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털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자 핵심적인 기능은 검색입니다. 다른 부가 서비스들이 다 잘 되더라도 기능이 비슷해지게 되면 결국은 검색이 잘 되는 곳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다
음은 네이버에 비해 훨씬 먼저 수익화에 성공했지만 검색 고도화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검색에 밀려버리자 좋은 서비스를 내놓아도 결국은 네이버에 뺏겨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음은 한메일 독주 시절, 너무 안일했습니다. 한 번 한메일을 만든 사람이라면 다음을 떠나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에 사용자가 큰 불편함을 느꼈던 온라인 우표제를 만들었고, 사용자가 큰 불편함을 느꼈던 메일 용량 증설에 미적거렸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의 시작 페이지가 어느 사이트로 설정되어 있는지로 잘 보여지고 있습니다.
해당 사례를 통해 사용자 경험에 끊임없이 가치를 주지 않으면 락인효과가 강한 1등 사업자라도 얼마든지 후발주자에 의해 따라잡힐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