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안 바뀐다
회사가 변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우리가 회사를 다니면서 몇십 년 동안 불만을 이야기하고 험담하지만 변한 것은 문화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차라리 건물 외관이 바뀌거나 회사 브랜드 로고가 바뀌는 게 더 빠를 정도입니다.
대단한 것은 같이 회사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주요 요직을 맡아도 회사는 안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대리 때 회사를 비판했던 사람도 차장쯤 되면 같이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의 하나의 부품이 되어 군말 없이 일하고 불만을 틀어막기 바쁩니다. 회사라는 게 얼마나 안 바뀌는 조직이면 값비싼 경영대학원에서 바뀌는 회사에 관한 케이스 스터디를 할 정도입니다. 왜 그리도 회사는 바뀌기 어려운 걸까요?
조직은 바꾸기 어렵다
회사가 바뀌기 어려운 이유는 바뀌어야 할 대상이 조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자신 하나를 바꾸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의지가 있다면 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의지의 문제이긴 하지만 개인이 ‘오늘부터 금연하겠다’고 마음먹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금연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두 명만 되어도 금연하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둘 다 같은 마음먹는 게 어려운 걸 떠나서, 금연하지 않을 각종 이유와 방법을 각자 만들고 그것을 하느냐 마느냐부터 서로 대화하면서 금연을 하기도 전에 뭐가 맞는 방법인지 토론하다가 허송세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기다가 둘 중 힘 있는 사람이 합리적이지 못한 결정으로 하자고 주장하면 분위기 상할 수밖에 없는 뻔한 실패만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도 있지만 보통 둘 이상의 조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국 회사를 바꾸려면 여러 사람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수평적이거나 완전 수직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회사는 조직으로 구성되어 조직의 구성 방법에 따라 어떻게 일하는지 방법이 판이해집니다. 신문 기사에 연말 정도 되면 주요 기업에서 조직개편안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바뀌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자리 하나, 간판 하나 바꿔도 내부에서는 대단한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경영의 중요한 문제
같은 일을 하는 A기업과 B기업이 있다고 합시다. 사람도 똑같이 주어지고 자원도 같습니다. 그런데 조직 구성만 다릅니다. A기업 같은 ‘사업 단위 분권형 조직’과 B기업 같은 ‘기능 조직이 사업 단위와 매트릭스 형태로 교차 구성된 조직’은 내부까지 같을까요? 어떻게 구성된 조직이 더 속도감 있게 일하기 좋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최적의 정보 인프라와 구성원의 마인드로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A기업처럼 완전한 책임과 권한이 드러난 조직이 더 속도감 있게 일할 수는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B기업은 내부적으로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서 업무 속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전문성 있는 일을 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조직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축구 감독이 포메이션 변화로 전략을 극대화 시키듯 경영은 같은 일을 하려고 해도 어떤 형태로 조직을 짜고 운영하는지에 따라서 전문성 유지와 커뮤니케이션의 빈도 등을 판이하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일이 되기 위해서 변화해야 할 범위
이런 조직이 연결된 큰 집단 조직일 경우에는 일하는 프로세스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위의 조직도를 갖고 있는 회사를 예로 들어 봅시다. 만약 이 기업 내에 영업 조직 중 B사업과 C사업이 하는 일에서 물류 체계를 혁신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가정합시다. B사업과 C사업을 맡은 중간관리자가 영업본부장과 이 사안을 논의해서 뭔가 결정할 수 있을까요?
붉은 원 안에 있는 조직의 규모로는 물류의 프로세스를 바꿀 수 없습니다. 물류의 문제는 물류 본부장과 논의해야 합니다. B든 C든 중간관리자가 스스로 답답해서 물류본부장을 만나도 물류본부장이 영업본부의 승인을 받고 오라고 하면 다시 거쳐야 할 관문이 생깁니다. 영업본부장이 물류 프로세스를 바꾸자고 합의를 해도 역시 물류본부장이 안 해버리면 그만입니다. 이들은 서로 수평적인 관계이기에 자신의 이해에 맞춥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정도 규모의 크기를 벗어나는 이해관계일 경우입니다. 물류 변화가 야기하는 비용이나 인근 물류 회사와의 관계 등 재무와 전략적인 부분까지 합의해야 한다면 일은 지지부진해지고 늘어나는 이해관계 부서의 개수에 비례해서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영업본부에서 우리는 내부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에서라도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었다고 주장해도 그것은 오히려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만 더 나가게 만들 수 있고 나중에 영업 본부장이 바뀌면 이 일은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할 수 있는 부서들끼리만 일을 해서는 일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조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리더에게
결국 최상위 리더의 의지와 권한에 따라서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작은 조직의 리더가 정말 잘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고 그것을 조직을 바꾸는 것으로 일단의 실체를 만들어도, 그것은 일부만을 해결한 것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의 일이 어디까지 관련이 있는지 따져보고 관련 있는 모든 조직이 영향을 입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기존에 일하던 프로세스가 더 복잡해집니다.
별도의 조직을 운영해서도 이런 구조는 바꿀 수 없습니다. 해당 영역에서 인사권과 예산을 쥐고 있는 결정권자가 조직 변경이나 업무 프로세스 변경에 동의하지 않으면 별도로 운영되는 TFT는 구호에만 그치는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습니다. 조직의 리더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CEO의 관심이 문제를 해결한다
크고 어려운 주제일수록 많은 조직, 많은 사람과 연관됩니다. 결국 조직의 최상위권자인 CEO까지 의사결정을 해야 하나의 업무에 관련된 모든 조직과 업무 프로세스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CEO가 어떤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지, 문제를 대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가 조직 변화를 완전히 해내는 끝임을 알게 됩니다. 조직 안에 아무리 혁신가가 있다고 해도 찻잔 속 태풍에 그치며 오히려 유관부서의 미움을 사서 나가떨어질 일만 더 생기는 일도 많습니다.
변화가 없는 회사는 결국 CEO가 변할 의지가 없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CEO가 변화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무엇을 어떻게 변해야 할지 모르고 있거나 변화할 주제를 알고 있음에도 조직에 대한 파악이 약해서 무엇을 바꾸어야 정말 바꿀 수 있는 핵심을 놓치는 경우에도 이런 일은 발생합니다. 혹은 믿고 있던 개별 리더들이 서로 반목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서로를 이용하거나 카르텔을 형성해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인지하지 못할 경우도 많습니다.
어차피 모든 것을 보고받는 경영자라면 몇 명의 임원이 짜고 눈 가리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런 임원들을 곁에 두고 중용하는 것도 결국 CEO의 역량이고, 결국 사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CEO가 변화의 필요를 느끼고 정확한 조직 진단을 이루는 것은 오직 CEO에게만 달린 일입니다. 모두 평가자의 눈치를 보는 기업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원문: Peter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