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이 원격근무 정책을 그만하겠다면서 하는 소리가 “어깨와 어깨를 맞대자”래. 야후가 그랬다가 참 좋은 꼴 났지 아마?”
트위터에서 위와 같은 DHH의 트윗을 보고,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하고 기사들을 찾아봤다. IBM이 원격근무 정책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다른 곳도 아니고, 글로벌 대기업 중에 가장 먼저 선두에 서서 원격근무 정책을 실험하고, 연구 자료를 남기고, 시행에 나섰던 회사가?
IBM은 어떻게 원격근무를 시행해 왔나
IBM이 사무실 공간 줄이기에 나서기 시작한 건 1995년 정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련의 물리적인 사무공간을 줄이는 실험의 과정과 이를 통해 달성한 성과, 어떻게 하면 회사 차원에서 원격근무를 도입 및 실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미국 정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제언이 담긴 연구자료를 2009년 공개한 바 있기도 하다. 여기서 서술된 원격근무의 장점은 아래와 같다.
- 사무실 임대 비용 및 유지 비용 절감
- 업무의 끊김 없는 지속성 (자연재해,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출퇴근이 불가능할 때도 업무 지속 가능)
- 교통체증 감소
- CO2 배출 감소
- 장소에 관계없이 어디서든 업무 수행 가능
- 업무 만족도 상승
- 일과 삶의 균형
이것저것 다 적어놓았지만 IBM이 원격근무 시행을 통해 얻고자 의도한 최우선 목표는 바로 부동산 비용의 절감이었다. 위의 리포트와 다양한 보도자료에서 IBM은 ‘글로벌 경제 위기와 이로 인한 예산 감축이 긴급한 비용 절감의 필요성을 촉발시켰’다고 하면서, ‘부동산 및 부동산 관리 비용이 원격근무 시행 일체의 ‘prime target’임을 거듭 명시하고 있다.
90년대 초반까지 IBM은 1억 8천 6백만 평방 피트(약 1천 5백 6십만 평방 미터)의 사무 공간을 소유/임대하고 있었다. 1995년부터 IBM은 원격근무 시행을 통해 약 7천 8백만 평방 피트의 사무 공간을 축소해왔으며, 기존에 소유한 사무 공간의 매각을 통해 약 19억 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2009년까지 IBM이 사무공간 축소를 통해 절약한 비용은 약 1억 달러(한화 약 1,130억 원)에 이른다. IBM에서 일하는 약 38만 명의 직원들 중 40% 가까이가 원격으로 근무하며, 내부 사정과는 별개로 IBM은 일단 최근까지 이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2월 초, 영국 IT 전문 미디어 The Register가 IBM 미국 마케팅 부서를 대상으로 한 사내 영상 메세지를 습득, 이를 토대로 아래와 같은 독점 기사를 연속으로 내보냈다.
- IBM’s Marissa Mayer moment: Staff ordered to work in one of 6 main offices – or face the axe
- Big blues: IBM’s remote-worker crackdown is company-wide, including its engineers
- 2009 IBM: Teleworking will save the WORLD! 2017 IBM: Get back to the office or else
6개 지사 중 하나로 출퇴근하거나, 사표를 쓰렴
요약하자면, 모종의 경로를 통해 The Resgister에 IBM의 마케팅 총괄책임자(CMO) Michelle Peluso가 미국의 마케팅 부서 소속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영상 메세지가 전달되었다. 이 영상에서 Michelle Peluso는 직원들에게 IBM의 미국 내 6개 주요 지사(New York, San Francisco, Austin, Cambridge, Atlanta, Raleigh) 중 하나에서 현장 근무를 하던지, 아니면 회사를 떠나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에게 이에 대한 대답을 결정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30일이다.
이 이해가 가지 않는 영상 메세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 이제까지 1) 앞에서 말한 6개 대도시의 IBM지사가 아닌 중소도시의 IBM사무실에서 일해왔거나, 2) 원격근무를 해온 미국 마케팅 부서의 직원들은 (사표를 내지 않는 한) 앞으로 회사에 의해 정해진 6개의 지사 중 한 곳으로 배정되게 된다. 직원들은 자신이 희망하거나 자신의 주거지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할 수 없으며, 이들의 새로운 현장 근무지는 사측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뉴욕 주에서 거주하며 함께 협업하는 대부분의 팀원들이 캘리포니아에 있다면 이 직원은 사측에 의해 샌프란시스코 지사로 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이 직원은 현재 거주지에서 함께 오랜 시간 지낸 가족이 있든, 또 다른 사정이 있든 관계없이 약간의 이동 경비를 받고 미국을 횡으로 가로질러 직항으로만 6시간하고도 반이 걸리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거나 아니면 사표를 내야 한다. 현 거주지에서 생활비가 훨씬 비싼 도시로의 이동이 요구되어도, 이로 인한 연봉 인상에 대한 보장은 전혀 없다(한 예로, 샌프란시스코의 침실 하나짜리 스튜디오의 평균 월세는 시애틀에 비해 2배가량 높다).
이 영상 메세지에서 IBM의 CMO는 이런 급작스러운 정책 변경의 이유로 ‘더 높은 생산성’,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일하는 경험’만을 이러한 정책 변경의 이유로 언급하지만, 실제 이유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IBM 직원들 및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과연 IBM이 급작스럽게 직원들에게 단 두 개의 극단적인 선택지만을 남기게 된 진짜 이유는 뭘까?
그 답은 바로 인건비 절감을 위한 인원 감축이다.
‘몸값 높은’ 직원들을 손쉽게 해고하기 위한 움직임?
IBM은 최근 몇 년을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클라우드 서비스, AI, 모바일로 전환 및 집중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몇몇 분야로의 집중을 위한 전환 과정에서 인원 감축은 필수적이었다. 20분기 연속으로 수익 하락을 기록해온 IBM의 경영진에게는 인원 감축을 통해 따라올 인건비의 절감 및 중소도시의 사무실 폐쇄 역시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El Reg, however, has heard that within the IBM rank and file, the move is being seen as more of an excuse to cut a portion of the workforce, and in particular one specific portion. Multiple sources believe that the move will disproportionately affect older workers who have already put down roots with a home and family in a specific area. Thus, this decision to move people across the country might be by design to cut loose older and more expensive workers.
By requiring that workers move to hub cities such as San Francisco, Austin, or New York, IBM could both rid itself of older workers and make the jobs more appealing to younger, lower-salaried professionals.
– Big blues: IBM’s remote-worker crackdown is company-wide, including its engineers (The Register, 2016/02/09)
해당 기사에서는 IBM 평사원 및 업계 관계자들의 입을 빌려 IBM의 이러한 행보가 인원 감축, 그리고 사측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이는 소위 ‘몸값이 높은’ 경력직들을 주로 타겟으로 삼는 것으로 이어지게 될 거라 보고 있다(아예 이런 정책 변화가 경력 많은 직원들을 타겟으로 이미 계산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속속 나오고 있다고..).
상대적으로 높은 확률로 부양가족이 있고 이미 한 곳을 삶의 터전 삼아 자리 잡았으며 경력에 따라 높은 연봉을 받는 시니어 직원들에 비해, 이러한 사측의 행보에 발 빠르게 맞춰 대도시로 이동할 수 있는 건 몸값이 저렴한 젊은 주니어 레벨 직원들이라는 것. 대도시라는 근무지가 좀 더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연령층 역시 젊은 연령층이며, 이들은 ‘lower-salaried professionals’이다. 즉 이는 지금 당장뿐만 아니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IBM의 인건비 감축에 도움을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기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영상 메세지에 등장하는 ‘사측의 현장 근무 정책에 찬성하는 지지자들’이 모두 하나같이 젊은 직원들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우연찮게도, 이 현장 근무를 옹호하는 사내 영상 메세지에 등장하는 사무실의 직원들은 상당수가 젊은 직원들이다. 원격근무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이들 말이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도 잠시 올라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워졌다. – Big blues: IBM’s remote-worker crackdown is company-wide, including its engineers (The Register)
이전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공유했던, 하버드대에서 Innovation and Design 관련 강의를 하는 Beth Altringer 교수가 2015년 시행한 디지털 노마드의 재정 및 커리어 관련 연구를 참조할 만 하다. 이 조사에서, ‘상당수의 디지털 노마드가 최근 대학을 졸업했거나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밀레니얼 세대일 것이라는’ 연구 전 예상과는 달리, 조사 참가자 중 34%만이 밀레니얼 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 시행자들은 서술한다.
이는 원격근무가 많은 경우 피고용인의 ‘협상력’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경력이 없는 사회 초년생보다는 전문 스킬을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 경력이 있는 이들이 원격근무를 하기에 좀 더 유리한 상황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반드시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Toptal’이나 ’10x Managerment’의 예만 봐도 시장에서 수요가 높은 개발자들, 그중에서도 숙련된 기술자층은 클라이언트와의 협상을 통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용이하게 원격근무를 할 수 있다. 바로 ‘협상력’이 높기 때문이다.
흔히들 ‘새로운 업무 형태와 유연한 기업 문화’를 매우 강하게 추구하는 세대가 바로 밀레니얼 세대라고들 하지만, 실상은 이들에 비해 경력이 있고 전문 스킬이 있는 경력자층이 오히려 밀레니얼 세대들이 원하는 업무 형태를 고용주와 협상하기에 유리한 고지에 있다. 특히 자녀가 있는 이들의 경우 원격근무 등에서 오는 유연성과 자유를 자녀에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위해 원격근무가 허용되는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Toptal의 공동창업자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기도 하다.
‘디지털 노마드, 원격근무라고 하면 자유를 추구하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젊은 밀레니얼들’이라는 기존의 스테레오 타입과는 달리, 실제로 이러한 업무 형태를 요구/획득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들 상당수가 바로 시니어 레벨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IBM은 원격근무 정책을 무기로 몸값 높은 이 사람들을 대거 잘라낼 태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마무리
처음으로 이 유출된 비디오를 바탕으로 기사가 나온 게 2월 8일인데, 지금까지도 IBM의 공식 입장 표명은 없고, 처음으로 독점 기사를 낸 이 미디어 역시 IBM으로부터 아무런 코멘트를 듣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도 익명을 전제로 제보를 받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지난해 글래스도어에 올라온, 자그만치 20년을 재직했다는 IBM직원이 회사를 떠나며 남긴 이 글을 봐도 그렇고(“지금껏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원격근무 하나 보고 버텼는데, 이제는 그것도 없다. 경영진 너네는 어떻게 이런 짓을 하고도 살 수가 있니?”) 이러한 IBM의 움직임은 내부에서 이미 존재해온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들에서는 이러한 정책 변경이 미국 내 마케팅 부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다른 부서, 더 나아가 영국 지사를 시작으로 다른 유럽 지사들에도 확대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IBM이 원격근무 정책을 전사적으로 야심 차게 추진해온 이유는 바로 부동산 비용 절감이었다. 이번에는 같은 목적, ‘비용 절감’을 위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원문: DARE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