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보면 상대방의 목소리 톤을 주의 깊게 듣게 된다. 특히 무력하면서도 격앙되어 있는 톤은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대리운전 4년만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인간은 처음 봅니다. 술도 별로 취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맨 정신으로 사람을 그렇게 대하나요?”
직장을 퇴직하신 후 초저녁에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려가시던 기사님은 그 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재현시키셨다.
“초저녁에는 손님들이 그렇게 많이 취해 있지는 않아요. 그날도 저녁 8시 좀 넘은 때였는데, 한 남자손님이 대리를 불렀더라고요.”
차에 탄 승객은 기사님에게 몇 마디 농을 던졌는데, 기사님의 리액션이 마음에 들지 않자 갑자기 짜증을 냈다고 한다.
“제가 오른쪽 손가락 3개가 없어요. 소싯적에 공장 다닐 때 잘못 돼 가지고. 그래서 손 이야기 하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그 손님이 제 손을 걸고 넘어지는 거에요.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계속 ”병신 새끼“라고 욕을 하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요.”
결국 기사님은 대리운전 중인 차를 정차시킨 후 승객에게 ‘욕을 그만하라’고 요구했지만, 승객은 막무가내였다.
“손님, 보시다시피 제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니, 다른 욕은 몰라도 ‘병신새끼’라는 욕은 하지 마시라고요, 계속 하시면 녹음할겁니다”
“병신을 보고 병신이라고 하는데 뭐가 욕이냐? 이 병신 새끼야!”
결국 기사님은 당시 장애 비하 욕설이 반복되는 상황을 10분 정도 녹음하고, 경찰을 불렀다. 승객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 까지도 거침이 없었다.
이런 사소한 일로 경찰을 부른다며 경찰이 오기 전에 “역시 장애인 새끼”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기사님이 보내주신 녹음파일을 들어보았다. 상황이 그려지면서 분노가 솟구친다. 어떻게든 처벌을 시키고 싶은데 좀 애매한 지점이 있었다.
형법상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모욕적인 말을 ‘공공연하게’ 해야 한다. 즉, 길 한가운데나 공공장소와 같은 곳에서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게 모욕을 해야 이 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기사님에게 욕설을 한 승객은 자기 차 안에서 욕을 한 것이므로 이 ‘공연성(公然性)’을 갖춘 것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2008년부터 시행 중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2조 제3항에는 이런규정이 있다.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학교, 시설,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집단따돌림을 가하거나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같은 조 제4항에는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사적인 공간, 가정, 시설,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장애인 또는 장애인 관련자에게 유기, 학대, 금전적 착취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고 되어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악의적으로 위반하면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기사님,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상하셨겠습니까. 이런 경우는 형사처벌을 받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는 법이 있는데 이 법을 바탕으로 고소장을 작성해서 경찰서에 제출하는 것이 어떨지요?”
“그런 법은 처음 들어봅니다만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님.”
재빨리 고소장을 작성하여 녹취록과 함께 당일 경찰서에 접수를 하였다. 위 3항 또는 4항에 해당되는 행위이니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경찰서라면서 전화가 왔다.
“이 고소는 받을 수가 없어요. 3항을 적용하려면 학교, 직장과 같이 ‘공연성’이 있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어야 하는데 이 사건은 차 안에서 일어났으니까 안 되고요, 4항에는 ‘학대’라는 요건만 기재되어 있지, ‘모욕’이라는 요건은 없어서 안 됩니다.”
당황스러웠다. 일반적으로 ‘공연성’이 요구되는 범죄에는 ‘공연히’라는 요건이 기재되어 있다.
이 조문에는 그런 기재가 없음에도 담당 경찰은 ‘학교나 직장 같은 곳은 여러 사람이 있는 곳이니까 공연성이 당연히 전제되어 있는 곳이다’라며 이 사안에 3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4항에는 ‘모욕’이라는 행위유형은 없지만, 장애인복지법에서는 분명히 ‘장애인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학대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장애인에게 장애를 비하하는 욕설을 한 행위와 학대행위는 다른 행위라며 잘못된 고소라는 주장이었다.
아무리 법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해도 ‘고소장을 반려하겠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굳이 고소장을 받길 원한다면 고소를 각하(却下)시키겠단다.
“수사관님. 사건을 조사하고 검찰에 송치하는 경찰에서 법률해석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당하는 장애인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법에 써 있지도 않은 요건을 해석으로 덧붙여서 법의 적용범위를 좁히는 해석을 해야 할까요? ”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다음날 고소요지보충서를 통해 이 고소의 취지와 법률의 의미를 정리해서 제출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 고소는 특별한 추가 조사도 없이 각하되었다.
“변호사님,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저도 그냥 그때 참지말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실컷 할 껄 그랬습니다.” 깊은 수치심와 모멸감에 괴로워하시던 기사님을 위하여 정신적 손해배상을 위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법이 현실에 스며들기 위하여,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은 자꾸 구체적인 현실을 상상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장애인 비하 발언들이 그렇게 ‘대놓고’ 이루어질까? 학교에서나 또는 일터에서, 보는 사람 없이 단둘이 있을 때 장애를 이유로 괴롭히고 욕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인권존중을 위해 입법되었다.
법이 ‘장애가 언제 어떻게 비하되는 지’ 상상하지 않는다면, 그 법은 돌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다양한 인권의 결을 보듬으며 현실에서 함께 숨쉬는 법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가 계속 상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원문 : 법과인생 by.조우성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