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대선 시즌이라 그런지 미래를 이야기하는 키워드들이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특히 “제4차산업 혁명”이라는 단어가 각 캠프에서 논의될 정도면 이 이슈가 뜨겁기는 뜨겁나 보다.
IT업계에 있으면서 그리고 공적인 역할을 조금 해보면서, 한국의 미래먹거리라는 정보통신산업, 소프트웨어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비교적 많았다. 소프트웨어 개발부터 시작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취미로 했었고, 기획/전략 업무를 하고 정책업무까지 해봤으니 SW 제품을 만드는데 대표 빼고는 다해본 것 같다.
일반인들에게는 제4차산업 혁명보다는 당장 컴퓨터 브라우저를 죽이는 ActiveX가 더 큰 문제겠지만, 아주 작지만 넓게 느끼는 문제부터 매우 크지만 멀리 있는 문제까지 소프트웨어 기술이 미치는 우리의 생활에 대한 영향을 어마어마해졌으며, 미래의 대안으로도 논의가 되고 있다.
사실 이 논의는 이전에도 “지식경제”, “창조경제, 소프트웨어 중심사회” 등 다양한 이름으로 형태는 달라도 계속 이야기가 진행돼왔다.
그 가운데에는 인터넷에 기반을 둔 소프트웨어기술과 서비스가 존재했으며, 최근에는 하드웨어와의 결합을 통해 비트(가상정보/소프트웨어)와 아톰(물리적 실체/하드웨어)이 상호 오가는 시대를 이야기하며 제4차산업 혁명이라 불리는 듯하다.
그리고, 이를 오가는 기술로서 최근 논의되는 다양한 기술들이 논의되고 있어 소프트웨어, 곧 정보기술에서 시작된 혁명은 이제 실세계 전반으로 퍼져나가 모든 사회, 경제의 모습을 바꾸려는 중이다.
이를 혁신하는 데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융복합 인재라던가, 이러한 인재들이 만든 기업과 단체들이 혁신을 주도하는 것이 전체적인 흐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재와 기업 단체들의 특징으로는 개방성, 연결성, 협력성 등을 따질 수 있는데 이는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맞는 체계를 갖추었는지가 의문이다. 여전히 대부분 정책은 글로벌 시장에 나가서 싸울 대기업을 키우는 것을 기준으로 되어있으며 이는 마치 올림픽을 목표로 한 국내 프로 스포츠 시스템 같다.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순위권 안에 드는 스포츠 강국임을 내세우지만, 국민이 하는 평상시의 운동이라고는 끊어놓고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는 헬스가 전부이다. 이는 음악, 미술 등의 거의 모든 예체능도 마찬가지이며, 사실 우리가 학창시절 죽어라 중요하다고 여긴 국영수 역시 진로를 택하고 나면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초, 중, 고, 대학 인큐베이팅 시스템까지 모든 것을 잘하기를 요구받는다. 평균을 내서 줄을 세우니 결국 가점이 높은 국, 영, 수에 전 국민이 몰빵을한다. 그 이후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고, 사실상 취업까지 하게 되면 자기 삶의 방향을 설정함과 동시에 그동안 쌓아온 지식을 한 분야 빼고는 모두 버리는 상황을 맞게 된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수학은 필요 없다 하고, 어떤 이들은 소프트웨어는 수학에서 가르칠 수 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논리가 왕이라고 한다. 이러한 지식의 배타적 문화는 사회적인 시스템상 다른 곳을 보고 연결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업이 야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다른 것을 볼 수는 없다. 융합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많은 사장이 지금 당장 먹고살기에 급급하고 생존이 급급한데 무슨 개소리냐고 한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에게 가끔은 융합형 아이템을 가져오라고 종용하는 게 현실이다.
애석하지만, 융합은 외도에서 발생하며 외도는 여유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을 키우는 육성정책은 어떨까? 일단 타이틀이 되는 기술과 아이템을 고르고 사회적 파급력을 선정하고, 예산을 쪼개서 뿌린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혁신은 하나의 기술 바운더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결성에서 발생한다. 단순히 인공지능 기업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의료를 연결한 데서, 인공지능과 예술의 연결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런 아이템은 비용이 두 배다. 인공지능 개발자와 의사를 구해야 하고, 인공지능 개발자와 아티스트를 섭외해야 하니…. 그리고 각 업계의 특성을 갖게 된다.
초기 기업의 투자 규모는 이 정도면 되지만, 몇%고 이런 VC들의 평균이 정말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하나의 문제를 단순한 아이디어로 혁신하는 서비스형 아이템의 경우는 초기 비용이 비슷할 것 같다.
청년 창업을 종용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정말로 청년 창업을 가르칠 준비는 되어있을까? 실패한 후에는 무엇을 보장하고 있는가? 돈이나 공간만 준다고 되나? 창업공간을 찾아가 보면 생각보다 썰렁함에 놀랄지도 모른다.
정작 공간 없이 열심히 하는 기업이 지원을 받으려면 실사를 받을 수 있는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창업 지원이라고 괜히 뭔가를 지어대기만 하는 것 같다.
그럴 돈으로 그냥 실사 부분을 고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각종 수수료와 등기 비용이 비싸고 복잡한 것도 놀라웠다. 지금 인터넷 은행등은 실시간 이체, 수수료 무료를 외치고 있는 시대인데….
멘토링이나 심사를 하시는 분들의 전문성에도 가끔은 의심이 가는 경우가 있다. 물론 대학생들보다는 낫겠지만, 시니어 창업이고 특정 도메인 융합 창업이라면 해당 도메인에 대한 이해가 창업자보다 낮은 경우도 꽤 많은 것 같다.
물론, 반대로 이러면 창업자가 심사위원들에게 사기 치기도 좋겠지만, 결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견실화란 아이템, 개별 창업자, VC, 심사위원, 성장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경쟁력을 함께 갖추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아직 스타트업으로 성장해서 멘토링, 투자,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이들도 부족하고, 설사 아니더라도 그 한 명의 성공사례가 표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많은 성공 스토리들은 각기 다른 모습들이었고, 심지어는 우리가 모범으로 삼는 미국에서도 문제는 터진다.
아마도, 문제는 또 터질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정책 스타일이라면 문제가 터졌기 때문에 그 정책은 실패했다고 비난받으면서 폐기될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스타트업이 무엇인지….
스타트업의 정책도 스타트업이 되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실패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기회”를 주는 것이 핵심이다. 천편 일률적으로 기업 성장단계로 나눈다든가, 업으로만 나눈다든가 하는 것은 단편적이다.
결국, 개별 건별로, 단계*업의 곱이라던가, 곱할 개수는 더욱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기회의 수가 있다. 그것이 융합이다. (그리고 대체로 이러한 혁신방법은 그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알고리즘화 된다. 문제는 법과 제도는 알고리즘과는 한참 벗어나 있다.)
그리고 이것의 파급효과가 단순히 “돈”과 “인력”으로만 측정되는 것 또한 이러한 융합시대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혁신하는 것이 반드시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러한 스타트업과 혁신을 할 인재와 기업 혹은 조직을 키울 수 있을까? 아니 애당초 그러한 사람과 조직을 용인하는 문화인가?
난 주니어 시절 융합을 카메라에 핸드폰 붙인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경력이 쌓인 지금, 융합은 결과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고 있다.
융합은 문화고 사회라는 생각이 들고 있는데, 한국이 목표를 외치고 가열차게 돌진하면 성과는 나오지만 뭔가 왜곡되는 것은 문화를 바꾸지 않고 결과물만 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결과중심주의의 사고를 바뀌어야 한다. 제4차산업 혁명과 미래에 중요한 건 과정이고, 경험이고, 프로세스고 소프트웨어와 문화다.
원문 : 숲속얘기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