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5일, 스타트업 위크 2016@테헤란로 프로그램 중에 구글 캠퍼스에서 열린 ‘Campus Talks: 스타트업의 브랜딩 전략’ 강연을 듣고 왔습니다. 얼마 전 ‘배민다움’이라는 책을 쓰신 홍성태 교수님과 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님의 강연이었습니다.
강연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1. 업의 본질(brand concept)을 재정의한다
배달의민족은 배달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2. 브랜드를 내재화(internal branding)한다
이슈가 된 배민 포스터나 배민 굿즈들은 처음 시작은 직원들의 배민다움을 위한 것이었다
3. 타깃 초점(pinpoint)을 설정한다
음식을 주문하는 ‘막내’들을 타깃으로 그들의 B급 문화를 연구했다
강연을 들으면서 역시 디자이너 출신이라 그런지 브랜드의 정체성과 일관적 소통(회사 내/외부 + 장기적 관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배달통이나 요기요 같은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배민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이해가 되는 강연이었습니다.
브랜딩과 퍼포먼스 마케팅의 ‘개념적 차이’
강연 내용에 대해서는 ‘배민다움’ 책도 있고 저 말고도 다른 분들이 요약을 더 잘해주실 것 같고, 저는 브랜딩과 퍼포먼스 마케팅의 개념적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원래 전산을 전공한 공돌이이지만, 부전공이었던 경영에 더 끌려 전략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랜드로 이직한 후에는 인하우스 컨설팅 부서를 맡으면서 주로 30여 개 중국 이랜드 패션 브랜드들의 고객 조사와 포지셔닝, 리뉴얼 등의 프로젝트에 관여해 왔습니다. 10년 전 마케팅 교과서를 펼치면 나오는 3C(Customer, Competitor, Company) –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 – 4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 같은 작업을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마케팅을 하면서도 코딩하던 공돌이 기질이 남아있어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면 좀 더 정교하게 브랜딩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한동안 전략과 마케팅 관련 일만 하다 보니 전공했던 전산이 아쉬워서 파트타임 과정으로 빅데이터 석사과정을 밟았고, 배운 것을 좀 더 적용해보고자 최근 삼성SDS로 이직하면서 소위 말하는 ‘디지털 마케팅’ 세계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기존에 하던 좀 더 전통적인 마케팅과는 개념이나 용어, 사용 도구에 차이가 있어 YouTube 동영상들도 보고 책도 보고 디지털 마케터들의 브런치 글도 읽으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의문점이라 해야 할지 컬처쇼크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앞에 ‘디지털’이 붙긴 했지만) 마케팅 책이고, 마케팅 동영상이고, 마케터의 글들인데 브랜드 정체성, 포지셔닝, 타깃 고객 같은 이야기가 없다
특히 스타트업에 보면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직책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디지털 마케터’라고도 하고 ‘Growthhacker’라고도 하는 것 같네요. 어쨌든 이분들의 주 업무는 검색엔진 최적화(SEO), 앱스토어 최적화(ASO), 각 채널별 프로모션 효과 분석 및 최적화(channel optimization) 등인 것 같습니다. 디지털 마케팅 관련된 글을 보면 MAU, ARPU, CAC, PPC 같은 용어들과 GA 등의 도구들에 대해 언급하지만, 정작 브랜드 정체성과 타깃 고객 페르소나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알리기(프로모션)는 결국 WHO – WHAT – HOW입니다.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셋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누구에게 전할지가 정해져야 메시지도 구체적으로 정하고 채널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누어서 본다면 브랜딩, 혹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마케팅이 WHO와 WHAT을 주로 결정하고, 최근 트렌드인 디지털 마케팅이 좀 더 채널(HOW)과 효과(HOW effective?)에 집중하는 느낌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마케팅’이란 용어를 ‘브랜딩’과 거의 interchangeable 하게 사용합니다. 제가 알던 마케팅은 그것에 가까우니까요. 주관적 의견이지만, 위의 WHO-WHAT-HOW를 생각하면 지금의 디지털 마케팅은 사실 4P 중 하나인 ‘Promotion’을 온라인에서 좀 더 정교하고 효과를 측정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어떤 채널로 Promotion 할 것인지 Place도 조금은 다루고 있고, 고객 반응에 따라 Product나 Price도 건드리는, 즉 4P에 모두 관여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고객 세그먼테이션이나 포지셔닝 등을 관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케팅에 대한 일부의 “오해”
요 며칠 이 고민을 하다 오늘 강연을 들었고, 배민은 스타트업이지만 퍼포먼스 마케팅이 아니라 제대로 된 브랜딩을 고민한 드문 케이스다 싶어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마치 전 직장 CMO님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이전 회사에서 고민했던 많은 고민을 저분도 하셨구나, 심지어 더 치열하고 완성도 있게 하셨구나 하는 반가움마저 들었습니다.
사건(?)은 이후 질문시간에 발생했습니다. 강연 후에 Q&A가 꽤 길어져서 마지막으로 세 분만 질문을 받겠다고 하셨는데, 마지막 세 번째 분의 질문이 제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을 건드렸습니다.
질문을 기억나는 대로 요약하면,
스타트업에서 KPI를 관리하는 퍼포먼스 마케터입니다. 강의는 잘 들었지만 아직도 왜 브랜딩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그냥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가요?
제가 ‘마케팅’이라는 단어에 무슨 부심이 있는 꼰대도 아니고, 퍼포먼스 마케터 분들을 비판하거나 공격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지만, 일부 퍼포먼스 마케터들이 마케팅에 대해 혹시 오해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퍼포먼스 마케터라고 해도 갓 졸업한 스타트업 마케터부터 여러 agency/기업 경력이 있는 마케터까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요)
첫째, 기술이 발전하면서 HOW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요.
어떤 메시지를 고객이 원하는지는 A/B testing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어떤 채널이 효과가 좋다고 나오면 그 채널이 우리 타깃 고객이 많은 채널이다. 혹은 좀 더 극단적으로 그 채널을 쓰는 사람들이 우리의 타깃 고객이라고 정의하자.
WHO와 WHAT에 대한 답을 HOW에서 찾으려는, 순서를 거꾸로 가는 방식인데 이렇게는 브랜딩 할 수 없습니다. 비슷한 (극단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강점이 있고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지만 이력서 구성과 자기소개서 내용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여러 회사 채용팀과 헤드헌터들과 채용사이트들에 원서를 넣어보면 가장 효과적인 채널과 나를 원하는 회사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내가 누구고 어떤 회사에 가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그 회사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의 어떤 면을 부각해야 합격할 확률이 높아질지는 그다음 고민일 것 같습니다.
둘째, 타깃 고객과 브랜드 포지셔닝은 다른 사람(대표이사, 전략기획, 외부 에이전시)이 고민할 문제이고 마케터의 미션은 우리 서비스/앱을 최대한 홍보하는 것이다라고 스스로 업무 정의를 내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대부분 타깃 고객과 포지셔닝, 브랜드 정체성은 창업 초기부터 대표이사가 고민합니다. 왜? 공동창업자들을 모으고 투자를 받아야 하니까요. ‘우리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 XXX가 되려고 합니다’라고 사업계획서에 쓰여있습니다. 타깃 고객과 벤치 마크할 해외 사례를 given으로 보면 마케터가 할 일은 주어진 조건 하에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 사용자 수를 늘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지금 특히 스타트업의 ‘디지털 마케터’ 혹은 ‘퍼포먼스 마케터’ 분들의 과업이 프로모션 중심이 되어가는 것은 이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반면 대기업에서 브랜드 정체성 고민을 안 하는 마케터 분들이 있다면 이 경우는 전략기획이 그 고민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외부 에이전시가 멋지게 뽑아와야 할 문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스타트업에서 이 생각이 위험한 이유는, 대표이사와 전략기획 모두 타깃 고객과 브랜딩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것이 그들의 주 미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초기 창업 멤버들이 이 고민을 하지만, 대표이사는 조직이 조금만 커져도 인사관리의 이슈가 생기고, 투자자들을 만나는 것이 과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전략기획도 마찬가지로 계속 큰 틀에서 사업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고민을 하게 되고, 고객과의 최전방 접점에서 일어나는 디테일한 요소들을 챙기기 어렵게 됩니다.
결국 마케터가 회사의 브랜딩에 대해 고민하고 고객과의 접점에서 디테일한 부분들을 챙기지 않으면, 어느 시점이 되면 회사에 마케팅팀은 있는데 브랜드에 대해서는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 시점이 반드시 옵니다. 이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제 폰에 깔려있는 국내 스타트업 앱 중에 그런 의심이 드는 앱들이 이미 몇 있기 때문입니다.
마케터도 ‘마케팅의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비즈니스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퍼포먼스 마케터 분들에 대해 공격할 의도는 전혀 없고, 또 많은 퍼포먼스 마케터 분들이 이미 브랜딩에 대한 고민도 하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다만 혹시 공학이나 수학/통계 쪽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 마케팅의 업무 scope 자체를 각종 최적화 도구들을 사용한 사용자 수 극대화로만 이해하고 있으신 분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좀 더 넓은 개념에서의 마케팅 안에 자신의 업무가 어떤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고민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회사의 브랜딩이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마케터도 ‘마케팅의 본질’을 고민해야 합니다. 본인의 역량을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저도 잠시나마 창업을 준비했었고 Lean Analytics, Lean Startup, Growthhacking등을 읽었습니다. Growthhacking 책은 상당히 공격적으로 기존의 마케팅의 패러다임은 갔고 이제는 Growthhacking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책들에 나온 방법론(HOW)에는 동의하지만 미안하지만 그 방법론이 본질적인 브랜딩을 대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민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오늘 강연에서 김봉진 대표님은 계속 법인의 인격과 메시지의 일관성, ‘배민다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습니다. 배민 안에도 퍼포먼스 마케팅팀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배민을 치열한 경쟁 가운데 승자로 만들고 유력한 유니콘 후보로 만든 것은 기존의 마케팅 패러다임, 브랜딩입니다.
원문: 장영학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