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직을 단행(?)하면서 중간에 시간이 좀 주어졌다. 다니던 회사에 휴직을 신청할 당시에는 어디로 이직할지 정해진 게 없었다. 그래서 창업 등 여러 가지 옵션을 염두에 두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각 옵션들을 재보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는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창업을 하건 이직을 하건 그전에 내가 스스로 묻고 싶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일을 해야 하는가?
외벌이에 딸까지 있는 가장이 헬조선에서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묻는 것 자체가 사치지만, 어렴풋이라도 이 질문에 답을 얻어야 앞으로 어디서 일하든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의미를 두고 일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주변인의 추천과 우연한 웹서핑으로 두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Start with Why)』 사이먼 사이넥 지음, 이영민 옮김
-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신정길 옮김
첫 책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업은 How와 What보다 Why를 먼저 답해야 한다
즉, 모두가 어떻게 만들 것인지(프로세스/시스템) 혹은 무엇을 만들 것인지(제품/서비스)를 외칠 때, 우리 회사가 또는 우리가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애초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뇌는 중심의 변연계와 신피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변연계에서는 의사결정과 감정을 담당하며 신피질은 분석과 언어를 담당한다. 즉, 뇌에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영역은 언어를 관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왜 아내분과 결혼하셨어요?’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는 그 이유를 말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끊임없는 자기합리화와 세뇌로 읍읍읍)
마찬가지로, 고객은 ‘왜 이 제품/서비스를 구매하셨어요?’ 같은 질문을 받으면 입으로는 뭐라고 뭐라고 합리화시켜 이유를 대지만 실제로는 그 회사가 소통하는 ‘why’에 무의식적으로 동의가 되었기 때문에 구매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그 존재의 이유가 명확하게 소통될 때 직원도, 고객도 그 회사에 대해 충성심이 생긴다. 여기서 명확하게 소통된다는 것의 의미는 홈페이지와 회사 벽 어딘가에 써 붙여 놓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제품·서비스와 무엇보다 회사에서 내려지는 모든 의사결정들이 그 회사의 why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애플이, 할리 데이비슨이,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성공한 비결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을 직원 입장에서 역으로 생각해보면, 회사의 why에 동의가 되면서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좀 더 회사에 만족하며 일에서도 의미를 찾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일의 의미보다는 월급 때문에, 혹은 순전히 개인의 스킬적 성장을 위해 다니기 쉽다.
나 자신을 돌이켜볼 때, 회사의 why에 동의가 되는지에 대한 직관 지표 두 가지는 두 가지였다.
- “내가 우리 회사 제품을 자주 쓰게 되는가?” (내가 우리 회사의 타깃 고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 “우리 회사를 친한 친구에게 입사하라고 추천하겠는가?” (친구의 스펙이 회사에서 찾는 인재상과 부합한다면)
만약 이 두 가지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없다면, 월급을 떠나서 직장생활이 그다지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 책은 회사의 존재 이유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뿐 회사의 구성원들이 왜 일을 해야 하는지에는 명쾌하게 답해주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책의 원제는 『Start with Why』이다. 회사 입장에서 존재의 이유를 먼저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지 원제에는 직원들이 왜 일을 해야 하는지라는 의미가 없다. 속은 것이다…)
이 책에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how와 what보다 why를 먼저 고민하라고 할 뿐 그 why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는 사실 답이 없다. 세상을 바꾸라던지, 사회에 기여하라든지. 물론 수많은 기업들의 why는 제각각 다 다를 테니 이 책에서 어떤 답을 듣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반면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는 1장부터 제목의 답을 제시한다. 그런데 그 답이 참 재미있다.
“왜 일하세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답한다. “먹고살기 위해서죠.”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보수를 받는 것은 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먹고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단지 그 때문일까?
나는 내면을 키우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다. 내면을 키우는 것은 오랜 시간 엄격한 수행에 전념해도 이루기 힘들지만, 일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
(…) 천 년을 버텨온 고목처럼 무수한 고난을 이겨내며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풍성한 삶을 일구고 훌륭한 인격을 키워낸 사람.
(…) 이것만은 명심해주기 바란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관적으로 우리가 일하는 이유를 ‘훌륭한 인격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을 읽다가 큰 감명을 받았는데, 동양에서 일을 인격 완성의 도구로 본 이나모리 가즈오와, 저번 글 「당신을 성장시켜주는 조직」에서 소개한 정신 성숙도(사회적 정신 → 자기통제 정신 → 자기변혁 정신)의 개념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하는 이유는 인격의 성숙
즉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정신(인격)의 성숙을 위해서이며, 성숙을 위해서는 우선 자기 일에 깊이 몰입하며 정신을 단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적절한 피드백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성숙을 돕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것은 ‘왜 일하는가?’질문했을 때 ‘먹고살기 위해서’ 다음으로 떠오르는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 제일 위층인 ‘자아실현’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자아실현이 꿈꿔온 무언가를 이룩하는 외적 성과의 개념이라면, 인격의 성숙은 철저하게 내면적인 개념이다.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자아실현은 성과를 타인에게 인정받는 면이 따를 것이며, 인격의 성숙은 타인의 인정보다는 아마 본인이 자신의 인격 수준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나모리 가즈오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언급을 한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뉴브리튼 섬에 사는 부족민들은 ‘열심히 일해야 좋은 마음이 우러난다’, ‘좋은 일은 좋은 생각에서 생겨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일은 힘든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 반면 인류에게 근대 문명을 안겨준 서양은 일은 책임이자 짐으로 여겨왔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보면, 인류의 시초인 그들은 신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다. 그 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서양 사람들은 인간이 원죄 때문에 노동이라는 의무를 떠안았고, 그 때문에 일을 한다는 책임의식이 강하다. 다시 말해, 서양 사람들은 일이란 책임이 수반된 의무행위이자 빨리 덜어내야 하는 짐으로 여긴다.
(참고로 이나모리 가즈오는 원래는 무교로 여러 종교의 서적들을 보다가 모든 것을 이룬 후(?)에 불교로 귀의하였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리스도인이지만 서양 사람은 아닌 나는 이렇게 해석하였다.
아담과 이브의 원죄로 노동이 시작된 것은 맞다. 그러므로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면 노동은 벌이며, 당연히 하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심판자 이전에 아버지시다. 벌로써 노동을 주셨지만, 동시에 그 노동을 통하여서 인간이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놀랍게 계획하셨다.
노동은 오해하면 끝없는 벌이 되지만, 그 의미를 깨닫는다면 인격의 성숙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특별한 도구, 축복의 통로가 된다.
이것을 깨닫고 난 후에 직장 생활에 생각하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돈보다는 나를 성장시켜 줄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평소에도 생각했었는데, 그 성장의 기준이 전에는 스킬(skill)적인 측면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스킬과 함께 인격의 성숙을 고려하게 되었다. 동시에 과거에 내가 직장생활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성숙했나를 반성하게도 되고, 내가 주변 사람들의 인격 성숙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도 생각하게 됐다.
회사 입장에서 본다면, 기존에는 회사의 존재 목적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주주가치’ 내지는 ‘영속적인 사업’ 같은 전통 경영학 관점에서 논의되었다면, 앞으로는 ‘조직원의 전인격적인 성장’이 하나의 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프레임에서는 생산성, 효율화 같은 키워드로 직원들을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그 직원들의 성장이 없으면 주주가치도 영속적인 사업도 만들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에 대한 셀링포인트가 보상 수준과 회사 브랜드에서 개인의 스킬적 성장과 자유로운 문화(탄력 근무, 의상 자율화)를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왔다면, 앞으로는 이에 덧붙여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들의 팀인가, 조직원들의 인격을 성숙시켜 주기 위한 어떤 계획과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는가가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원문: 장영학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