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따뜻하게 주세요. 물은 반만 넣어 주세요.”
“손님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물이 한가득하다.
“물을 반만 넣어 달라고 했는데요.”
“진하게 달라고 하신거 아닌가요?”
“아뇨. 그냥 물을 반만 넣어 달라고만 했는데요.”
“그러면 진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샷을 3개 넣었어요.”
“저는 진하게 달라고 말한 적 없고요, 물을 반만 넣어 달라고 했잖아요.”
직원은 구시렁거린다. “그게 그거지, 까탈스럽긴.”
“이봐요. 당신이 말을 잘 못 알아듣고 당신 맘대로 만든 거잖아요. 왜 그걸 나한테 까다롭다고 해요?”
언어의 역할 중 하나는 ‘생각을 나르는 도구’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상대의 생각을 자신의 마음대로 재단하는 사람이 많다. 또 반대로 명확하게 말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나의 생각을 알아서 파악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말은 위험하다. 기억력이라는 놈은 얼마나 잔망스러운지 원하는 기억만 하려고 한다. 왜곡되고 맘대로 해석되는 일은 다반사다. 결론부터 말하자. 회사에서는 가능한 명확한 용어로 말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간에 오해가 생기지 않고 불필요한 일을 하는 경우가 없어진다.
윗사람의 ‘명징한’ 언어생활
수많은 상품을 품평하고 그중에서 판매할 상품과 가격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상품을 준비한 바이어가 상품을 설명한다. 설명을 들은 본부장이 한 상품을 두고 말한다.
“작년에도 이만 원으로 팔았지만 판매율도 좋았고, 시장 최저가로 의미도 있었지. 이만 원에 파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이만 오천 원에 팔면 좋겠습니다. 전년 가격이 이만 원이었지만 워낙 마진이 낮았으니 퀄리티를 올리고 판매가도 올리면 더 이익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부장님이 말씀하시면 이만 원으로 하겠습니다.”
“아니 내 말은 꼭 그렇게 하라는 건 아니고, 시장 최저가가 의미가 있으니 그게 좋겠다는 겁니다. 결정은 바이어가 하세요.”
“본부장님은 저의 최종 상사입니다. 그 상사가 의견을 준 것을 직원이 바꾸는 것은 지시를 어기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상황에서 바이어의 의지대로 했다가 판매가 저조하면 모두 제 탓이 되어버리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본부장님의 지시를 어길 수 있는 직원이 있을까요?”
위의 본부장의 사례가 실무자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상황이다. 의견만 내고 결정은 실무자에게 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대한민국 직장인 중 누가 임원의 말을 거스른단 말이냐. 차라리 명확하게 ‘이렇게 하게’ 라고 말하는 것이 낫다.
한 번 더 말하면 회사에서는 명징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의미가 혼동될 수 있거나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말은 가능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결과에 대한 책임도 명확해지며 성공, 혹은 실패하더라도 명확한 분석이 가능해진다.
누군가는 “회사도 사람 사는 조직인데 그렇게 하면 너무 정 없고 딱딱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회사도 사람이 만들어 가는 곳이다. 하지만 정만으로 일하는 곳은 아니다. 그렇기에 명확한 용어의 사용은 필수다. 애매모호한 표현 때문에 잘못된 이해로 삽질을 수없이 해 본 경험이 있다면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오해 없는 커뮤니케이션의 틀
업무의 Role을 나누는 기법 중에 RACI라는 것이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나는 일에 대한 정의와 목표를 세우고 마일스톤을 짜고 나면 반드시 RACI를 정한다. 이것은 일에 대한 책임자, 실행자, 조언자, 인폼자 (Responsible, Accountable, Consulted, Informed) 이렇게 나뉘어진 업무의 책임에 대한 구분이다.
이렇게 일을 나누면 명확해진다. 쓸데없이 답 없는 회의는 줄어들고 일은 체계적으로 나뉘게 된다. 누가 이 일을 해야 하냐? 네 일이냐 내 일이냐? 이러면서 다투는 경우는 많이 줄어든다.
나는 외국계 회사에서 9년간 일을 했다. 약 2년간 글로벌 소싱 업무를 맡았기에 외국인들 특히 영국인들과 대화할 기회가 매우 많았다. 그들과 일하며 좋았던 것은 명확한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점은 일의 속도를 빠르게 해 주었다. 내 영어 실력이 네이티브가 아니기에 이해가 어려운 단어나 문장은 반드시 다시 물었다. 그러면 상대는 쉬운 용어로 풀어서 설명했고, 서로가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고 일을 했다. 나의 부족한 어휘는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더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하기를 원하면 “니가 이 일을 하기 원한다.”라고 말했다. 가능하다면 “내가 그 일을 언제까지 해서 주겠다.” 피드백이 왔다. 만약 어렵다고 생각되면 나는 “이 일은 어렵다. 그 이유는 이렇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방법을 제안한다. 네가 컨펌해 주면 내가 언제까지 하겠다.” 대화의 기본 틀은 이렇게 감정이 스며들지 않은 오해 없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 하기 원하는 일은 “하기 원한다. (Want)” 라고 말하면 된다.
- 정보를 알려 주려면 정보만 알려주면 된다. (Inform)
- 내가 받을 것이 있다면 이유와 함께 요청하면 된다. (Inquire)
- 결정이 필요한 일은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Decide)
이렇게만 해도 커뮤니케이션은 간단해지고 오해는 사라질 것이며, 삽질은 줄어들게 된다.
회사에서는 감정의 소비를 하지 않길 바란다. 쓸데없는 감정의 소비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행동이나 말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대화를 하고서 ‘그게 이런 뜻이었나? 내가 이렇게 하기를 바라는 걸까? 뭐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감정은 피곤함을 몰고 온다. 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일을 지연시키고 직원들을 삽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만약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상사라면 일은 더 복잡해 지고 짜증은 하늘을 찌르게 된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나서도 “야, 내가 언제 이렇게 하라고 했냐?”라며 아무것도 없이 고구마를 입속에 쑤셔 넣는 답답함만 생긴다.
일은 요리가 아니다. 간 보지 말자. 일은 연애가 아니다. 밀당도 하지 말자. 깔끔하게 일 좀 하자.
원문: 직장생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