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직장에서 ‘척’ 한다.
(실제 역량보다 더) 능력 있는 척하고,
(까라면 까라는) 윗분 의견에 동의한 척하고,
(개소리로 점철된 내 보고서대로) 일이 잘 되고 있는 척하고,
(사표를 가슴에 품고) 회사에 만족한 척한다.
An Everyone Culture: Becoming a Deliberately Developmental Organization
Robert Kegan, Lisa Laskow Lahey 지음 /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출판 (※ 아직 국내 번역은 되어있지 않습니다)
회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 보상을 주는데, 하나는 물질적인 보상이고 하나는 감정적인 보상이다. (물론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고 있긴 하다)
그리고 이 책은 감정적인 보상의 핵심을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가’로 정의하며, 사람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조직을 ‘Deliberately Developmental Organization (DDO)’로 정의한다. 의역하자면 ‘의도적 성장 중심 조직’ 정도이다.
이 책의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우리 모두는 회사에서 아무도 시킨 적이 없는 second job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인 척하는 일이다. 만일 회사에서 모두가 그 second job을 그만둬도 된다면, 그 회사의 생산성과 효율은 놀랄 만큼 향상될 것이다.”
“원래의 나를 집에 두고 포장한 나로 출근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려면, 나를 ‘전인격적으로’ 받아주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회사가 나의 강점만 골라서 쓸 수는 없다. 회사가 나를 쓰려면 나의 약점도 강점과 같이 따라온다. 회사가 나의 약점을 공격하고 이용하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내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약점을 숨기는 것에 쓸 수밖에 없다.”
“사람이 먼저냐, 성과가 먼저냐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성과는 사람이 낸다. 조직의 성과가 좋아진다는 것은 단지 조직의 사람이 성장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우리의 정신 성숙도는 ‘사회적 정신’, ‘자기통제 정신’, ‘자기변혁 정신’의 단계로 구분되는데, 훌륭한 리더는 자기통제 혹은 자기변혁의 단계를 가지고 있다. 학교와 사회생활을 거치며 대부분 사회적 정신의 단계까지는 성장하는데, 모든 사람이 저절로 자기통제, 자기변혁의 단계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숙해지려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피드백만이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조직은 평가 시즌이 되어야만 일회성 피드백을 주며, ‘평가’를 목적으로 (네가 왜 A를 받을 수 없는지 납득시키기 위해) 피드백을 준다.
DDO에서는 ‘사랑’을 기반으로 동료의 ‘성장’을 위해 피드백을 준다. 모두가 피드백을 주고받도록 만드는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항상 피드백을 할 수 있도록 자체 개발한 앱까지 활용한다. 적합하지 않은 피드백을 주는 사람, 피드백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직급으로 뭉개려는 사람들을 모니터링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직원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제도와 시스템이 갖춰졌을 때, 직원들은 회사에 진정으로 만족하고 경쟁사에서 더 높은 연봉 제안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그런 직원들이 모인 회사는 성과가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회사의 모든 사람이 동참해야 한다. 모두가 피드백을 주고,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의 피드백을 업계에 20년 근무한 임원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EVERYONE culture이다.”
아, 써놓고 보니 전혀 간단하지 않다. 사견을 섞어서 정리해 본다면,
- 신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성숙하지만 정신은 모든 사람이 꼭 어른이 된다고 성숙하는 것은 아니다. 더 높은 단계(자기통제, 자기변혁)에 이르려면 남들과 지속적으로 사랑에 기반한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그러한 환경을 조직문화와 시스템적으로 제공하는 조직이 DDO이다.
- 이러한 조직의 구성원들은 더 빠르게 성장하게 되고, 조직의 성과란 결국 조직의 구성원들이 성장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DDO는 지속 가능하게 경쟁사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특히 국내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은 ‘아, 내 조직과 완전 딴 세상 이야기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DDO에 다니고 싶다’고 느낄 것이다. 나도 최근의 직장생활은 대부분 주변의 기대에 맞춰 ‘척’하는 것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부었으며, 스스로의 성장이 멈춰있다고 느꼈다. 내가 제대로 된 아이템도 아직 못 정한 채 창업을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DDO를 찾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 빠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또, ‘대기업은 DDO가 아닐 것이고, 스타트업이 DDO일 수 있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DDO가 아닌 조직에 일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다 회사를 뛰쳐나와 스타트업으로 이직할 수도 없다. 더 큰 함정은, 스타트업이라고 DDO스러운 조직문화를 갖추고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DDO는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여름에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것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DDO는 서로가 서로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아무리 자율적인 분위기의 스타트업도 결정적인 순간 CEO가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고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그곳은 DDO가 아니다.
그리고 아마 우리 회사가 DDO가 아닌 이유를 회장님과 우리 팀의 상사로부터 찾으려 할 것이다. 그래 맞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가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든지, 아니면 내가 맡은 팀부터라도 변화시켜 보든지.
상사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된다면 자기 동료나 후배에게라도 피드백을 주고받는 연습을 시작해보라. 열린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주세요’ 부탁해 보라. 혹시 당신의 부하가 당신을 보면서 ‘저 사람은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를 않네’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좀 더 익숙해지면 서로 피드백을 계속 주고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만들 수 있다. 여러 스타트업에서 시도되고 있는 타운홀 미팅이라든지, 피드백만 주고받을 목적의 별도 툴을 사용해 본다든지. DDO가 되고 싶다면 피드백을 일회성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다양한 사람에게 주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진짜 ‘제대로’ 피드백하는 법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은, 피드백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저 사람이 더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주는 것이라야 한다. 책에서는 아예 ‘LOVE’라는 단어를 쓴다. 당신 팀원을 사랑하는가? 자녀를 대하듯이 대하며 가르쳐 줄 수 있는가?
너랑 도저히 일 못 하겠으니 돌직구를 날리는 것은 공격이지 피드백이 아니다. 그런 피드백은 사람이 더 움츠러들고 자기의 약점을 숨기고 에너지의 대부분을 ‘척’하는 데 쓰게 만든다.
반대로, 저 사람이 내 피드백에 부정적으로 반응할까 봐 약점은 하나도 언급하지 않고 장점만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도 성장할 수 없고 그 사람과 일하는 나도 계속 피곤할 것이다.
결국 피드백도 해봐야 는다. 피드백 주는 것도,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것도 서로 더 성숙해지기 위해 연습해야 할 영역이다. 피터 드러커도 인간이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피드백이라고 했으니, 조직에서 일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피드백을 좀 더 잘 주고받을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당신이 리더라면 말이다.
책에는 없는 이야기지만, 피드백에 대해 몇 가지 뻔한 팁을 들어 본다.
1.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무턱대고 “김대리는 일 처리가 깔끔하지 못한 것 같아” 하는 것은 핀잔이지 피드백이 아니다. “오늘 AA를 처리하면서 BB 같은 내용은 미리 꼭 챙겨야 하는 부분인데 놓친 것 같네. 잘 못 하면 CC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다음부터는 꼭 미리 챙기는 게 좋겠어” 같이 구체적인 내용과 이유가 있어야 배울 수 있다.
사실에 기반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fact가 없을 경우 감정적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팩트폭행이라는 말이 요즘 유행이듯이, 팩트에 기반했다고 감정적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2. 적시적소에 제공해야 한다
부서 연말 회식 자리에서 술에 반쯤 취한 채로 “그런데 올 초에 AA 건은 그때 왜 그랬어?”라고 하면 역시 피드백이라기보단 뒤끝(?)이 된다. 올 초는 이미 거의 1년 전 이야기인 데다 회식 자리도 피드백에 적당하지 않다. 가장 좋은 원칙은 최대한 빠른 시간에, 일대일로 피드백하는 것이다.
3. 피드백도 피드백해야 한다
내가 누구에게 무슨 피드백을 받았는지, 그 피드백 때문에 성장했는지를 트랙킹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쉽게 놓치는 부분은 내가 누구에게 언제 무슨 피드백을 했는지, 그 피드백을 상대방이 받아들였는지를 피드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피드백을 줘야 하는 상황에서 바빠서, 혹은 불편해서 속으로 삼키고 넘어가지 않았는지, 아니면 구체적인 설명 없이 감정적으로 짜증만 내고 지나가지 않았는지 하는 부분이다. 피드백을 줘야 하는 상황을 그냥 넘어갔다면 그 상황은 아마 조만간 다시 발생할 것이다.
마무리하며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결국 직원들이 ‘저분 밑에서 일하면 좋겠다’ 생각하는 상사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가 피드백을 잘하는 것, 그리고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로는 ‘칼퇴근하는 팀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나를 성장시켜주는 팀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생각하지 않나 싶다. (아닌가?)
결국 ‘팀원을 성장시켜 줄 수 있는가?’가 팀원에서 리더로 넘어가기 위한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며, 팀원을 성장시킬 방법은 제대로 된 피드백밖에 없다. (물론 업무에 피드백이 가능하려면 그전에 업무를 맡길 때부터 제대로 분배하고 충분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이 글의 초점을 벗어나는 것 같다)
물론 업무는 항상 바쁘고 시간은 항상 모자라며 팀원을 붙잡고 피드백하는 것은 공식적인 업무 시간 외에 틈날 때, 아니면 퇴근길이나 회식 자리에 해도 충분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당신이 실무자가 아니라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되려면 당신의 업무시간 중 상당한 비중이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하며, 또한 동시에 팀원들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간이 없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리더(leader)라기보단 그저 직급이 높은 관리자(manager)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완성시키려면 정신적으로는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잘 맺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교제를 맺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자신을 살찌워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톨스토이
원문: 장영학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