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헐리우드 가수가 한국 남자 아이돌의 노래를 자신의 콘서트에서 부른 적이 있다. 이들은 더 나은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아시아인 얼굴’ 분장을 했다고 말했다. 아시아인을 흉내 내기 위해 검은 가발을 쓰고, 피부색은 노랗게 했으며, 눈도 찢어지게 아이라인을 그려놨다. 한국 보이밴드의 특징인 ‘메트로 섹슈얼’ 이미지를 강조하는 옷차림과 몸짓까지 선보였다.
콘서트에 있었던 아시아 출신 관객들이 인종 차별이라며 비난하자, 놀리려는 의도가 아닌 공연과 예술을 위한 순수한 의도였다는 변명을 내놓았다.
얼마 후,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 네티즌들은 격렬하게 항변했다. 21세기 미국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일각에서는 해당 가수의 음반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몇몇 국가에서는 가수의 입국 금지 청원 움직임까지 나타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마마무의 퍼포먼스 사건이다. 두 사건의 성질이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가? 마마무의 퍼포먼스는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1.
당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흑인은 아직도 소수이고, 흑인 역사에 친숙하지 않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들 말했다. 미국처럼 흑인 억압 역사를 갖지도 않았기에 모르는 건 당연하다고.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피부가 까마면 놀림을 받고 너도나도 하얘지자고 미백크림을 쓰는 상황에서, 흑인 분장은 과연 순수한 의도만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10년 전, 아니 불과 5년쯤 전만 해도 웃기기 위해 개그 콘서트에서 공공연히 흑인 분장을 하며 아프리카 부족을 희화화했다. 이런 맥락에서 흑인 분장이 인종 차별 비판을 피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2.
놀리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위에서 보듯이 서양인들이 우리 외모 특징을 콕 잡아서 얘기하거나 흉내 내면 우리도 당연히 기분 나쁘다. 배낭 여행을 해본 사람이면 다들 경험이 있겠지만 아시아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눈을 찢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고, 우리는 이를 ‘인종 차별’이라며 분노한다.
희화화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모든 동양인 눈이 찢어진 것도 아니고 모두들 비슷하게 생긴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내 외모가 다른 사람 눈에 ‘신기’하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쁠 것이다.
3.
백인은 따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왜 흑인을 따라 하면 문제가 되냐고 반문할 수 있다.
백인을 따라 하는 것도 인종 차별이다. 단지 Positive racism이라고 해두자. 어릴 때부터 백인처럼 생긴 미미인형과 바비인형을 갖고 놀며 백인처럼 생기기 위해 코를 높이고 턱을 깎고 미백크림을 바르는 한국에서, 우리는 모두 인종 차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백인 우월주의는 우리가 느끼고, 비판하지도 못할 정도로 우리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흑인 인형이 나오는 판에 정말 아시아인답게 생긴 한국 인형 장난감은 우리나라에 찾아볼 수도 없고 왜 필요한지도 모른다. Positive racism이기에 문제 되지 않는 것이지, 이것도 인종 차별주의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도 흑인과 유색인종, 비 백인, 비선진국인 외국인은 공공연히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상황까지 더해졌을 때, 이들을 따라 하는 건 당연히 인종차별 행위이다. 단순히 하나의 사건을 콕 집으면 인종 차별이라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인종 차별을 판단하기 위해선 사회적 맥락과 역사를 언제나 고려해야 한다. 누가 누구에 의해 타자화되고 조롱되는지, 누가 기득권층인지에 따라 행위의 의도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 모델들은 멋있어 보이기 위해 남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자 연예인들은 웃기기 위해 여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사회적 맥락에 따라 같은 행위도 차별이 될 수 있다.
4.
우리나라에 흑인이 많지도 않은데, 굳이 이렇게 불편하게 신경 써야 하나?
우리나라에 흑인 많다. 그리고 K-pop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애초에 마마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던 것도 콘서트에 참석한 해외 팬들 때문이었다. 설사 흑인이 별로 없다고 해도, 소수라고 해도 그들의 감정이 다쳐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이다. 불과 일 년이 지난 지금, 더더욱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과 다양한 인종이 우리나라에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K-pop과 드라마는 전 세계적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국 문화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네가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건 좋지만, 우리는 네가 기분 나빠도 크게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는 대단히 옳지 않은 태도이다.
원문: MultiKul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