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무관심 버튼을 도입한다?
혹시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버튼 대신에 “무관심” 버튼을 도입할 계획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기사를 처음 본 것은 위키트리에서였다. 위키트리의 기사에 의하면…
23일(현지 시각) 미국 ABC 방송을 비롯한 외신들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에 대해 이용자들이 거부감을 표현할 수 있는 기능을 개발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페이스북이 “좋아요” 대신 새로운 버튼을 개발할거라는 뉴스는 내 기억엔 해외언론에서 들어본적이 없는 얘기였다. 아마 ‘좋아요’ 이외의 버튼이 나온다면 페이스북에서 프레스 이벤트를 열 정도의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ABC 방송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원본 기사를 찾아봤다. 안타깝게도 그런 뉴스는 없었다. 대신 참고했을것으로 예상되는 기사가 있었는데 제목은 “Facebook to Let You Say Why You Hide News Feed Posts”였다.
“Over the next few months what you will see from us is more on why people like and don’t like certain things in their feed,” Facebook’s Product Manager for Ads Fidji Simo told ABC News. “We are planning to refine those so users can tell us exactly the reasons they are hiding that piece of content.”
“앞으로 몇달간 당신이 페이스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뉴스피드에서 어떤것을 왜 좋아하고, 왜 좋아하지 않는냐에 대한 더 많은 정보들이다.” 페이스북 광고 프로덕트 매니저 Fidgji Simo가 ABC 뉴스에 말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좀 더 다듬어서 사용자들이 왜 컨텐츠를 숨기는지 말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페이스북 사용자가 뉴스피드에서 어떤 글이나 광고를 숨길때, 왜 숨기게 하는지 피드백 하는 기능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위키트리의 기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퍼나르는 기성 언론들
처음 이 뉴스가 위키트리에 소개되고 나서부터 언론사들은 너도나도 질 수 없다는듯 서로 기사를 퍼다나르기 시작했다. 처음 위키트리에서 기사를 봤을때는 위키트리 자체가 전문화된 기자들이 글을 쓰는 곳이라기보다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이슈화 되는것을 기사처럼 만드는 곳이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게 이곳저곳으로 퍼날라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사가 나온 대표적인 언론사는 다음과 같다.
· 경향신문 “페이스북, 7가지 ‘싫어요’ 버튼 추가된다”
· 조선일보 “페이스북, ’싫어요’ 기능도 개발해 싣는다”
· 전자신문 “페이스북, 7가지 반대의견 기능 넣는다”
· 아시아경제 “페이스북 ‘무관심’·’오해’ 꾹~ 7가지 ‘싫어요’ 버튼 도입”
이외에도 더 있다. 여러 언론사들 중 그나마 정확히 내용을 전달한 곳은 ZDnet Korea뿐이다. “페이스북, 새기능 추가…’싫어요’ 도입?”이라는 낚시성 강한 제목이지만 본문에는 게시물을 숨길 경우에 피드백을 주는 기능이라는걸 명시하고 있다.
기본적인 팩트 체크도 할 줄 모르는 한국 언론의 자화상
공신력이 있어야 할 언론사에서 독자가 오해할수 있는 오보를 내는건 큰 문제다. 물론 변명거리는 있다. 기사 안에 ‘싫어요 버튼’이라는 구체적 언급은 없다. 하지만 기사의 댓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와 같은 새로운 버튼이 생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는 제목에 ‘좋아요 버튼’을 언급해서 독자들을 오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낚시이기보다는 오보라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외신 기사를 한번만 제대로 읽어보고 기사를 써도 피할 수 있는 오보가 나왔다는데 있다. 언론사에서 제대로된 팩트 체킹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제대로 팩트체킹이 되지 않은 상태로 기사가 나오는건 너무 쉽게 찾아볼수 있다. 페이스북 기사뿐만 아니라 일본 방사능 돌연변이 식물 사진 기사도 그렇다. 방사능 돌연변이 사진이라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이라고 기사를 써서, 인터넷에 이런 사진이 올라왔다라는걸 기사화 할 목적이라면 큰 문제가 없는것 같지만, 저 기사를 보고 어떤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기사에 올라온 사진으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실제 돌연변이 레몬 사진은 2011년 2월 17일(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에 텀블러에 올라온 사진이라는걸 알 수 있다. 즉, 일본 방사능 오염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기사를 내기 전에 이 정도의 간단한 확인은 전문적인 기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앞선 기사들이 팩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면(또는 사실을 전달하는 척 사실을 오해하게 만들었다면), 들풀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모란봉악단은 왜 미니스커트를 포기했는가”라는 글에 나온 사례는 이 모든 일들의 종합판을 보여주는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외신 기사 하나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는 언론에게 북한의 모란봉악단 소식에서 사실 확인을 한다는건 너무 고난이도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양치기 소년이 된 언론, 이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언론의 팩트 체크와 관련된 내용은 들풀님이 작년 11월 대선 즈음에 관련된 글을 쓴 것이 있다. 대선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 팩트 체크에 대한 얘기만 인용해 보면…
외국 언론사에서는 팩트 체커를 언론사에 입사해서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하는 업무로 규정한 곳도 많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우선 팩트 체커부터 되어야 한다. 훌륭한 기자 중 많은 사람이 팩트 체커 출신이다. 한국 언론사 대부분은 사실 확인 부서나 담당자를 따로 두지 않고, 그런 기능을 편집부가 수행한다. 따라서 신입 언론인을 편집부에서 상당 기간 수련시키는 것은, 기자 자신을 위해서나 해당 언론사를 위해서나 더 나아가 한국 언론 전체의 품격을 위해서나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편집부에서는 기사라는 상품의 두 핵심인 사실과 문장에 대해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언론사의 편집부는 그 역할을 안하고 있는것 같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글을 퍼다 기사 형식으로 소개를 하고, 그 기사 덕분에 트래픽이 발생하면 끝이다. 그 과정에는 아주 간단한 수준의 사실 확인조차 없는것 같다. 똑같은 사진이라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이 기사화되는 순간 많은 사람들에게 공신력을 가질수 있다는건 생각하지 않는것 같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실수로 생각하기에는 언론의 책임과 관련된 좀 더 심각한 문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언론은 어느 순간 ‘양치기 소년’이 될 수 밖에 없고, 정작 나중에 중요한 뉴스를 정확하게 전달하더라도 사람들은 믿지 않게된다. 이런 문제는 이미 몇몇 정치성향이 뚜렷한 언론들에서는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정보 속에서 나침반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언론은 고장난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