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긴 글 세 줄 요약
1.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관리하는 소수의 측근들로 하여금 국정을 관장하도록 하는 스타일이다.
2. 그 결과 소수의 측근 그룹은 매우 강력한 위치를 굳히며 이는 YS 정부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3. 그 실패를 막기 위해서, 노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직속 위원회들을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 출범 6개월, 구성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박근혜 정부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매우 독특하다. 대통령마다 결정을 내리고 정부를 운영하는 방식은 다들 다르기 마련이겠지만, 지금까지 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전 정부들과는 굉장히 다른 방식과 스케줄로 움직이고 있다. 총리부터 내정자들이 사퇴하는 소동들을 거쳐 내각 구성을 완료하는데 52일이나 걸린데다, 여전히 청와대에는 공석이 있다.
현재 청와대는 정무수석이 공석인데, 이정현 현 홍보수석이 정무수석에서 옮겨간 점을 생각하면 윤창중 성추행 사건으로 이남기 당시 홍보수석이 사임한 이래 빈 수석 비서관 자리가 아직도 충원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전 정부들에서라면 권력의 핵심 청와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정무 수석 비서관이 정부 출범 5개월째인 지금까지도 비어있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다. (주 : 8월 5일 정통 외교관 출신 박준우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이는 정치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구성도 늦었지만, 윤창중 전 대변인의 미국순방 중 성추행 사건, 개성공단 철수결정, 국정원의 대선개입 및 남북정상회담록 유출 등의 굵직한 사건들이 연일 터지는 와중에도 박근혜정부의 대응은 전 정부들과는 매우 달랐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섰던 노무현정부의 대북송금특검이나 이명박정부의 소고기 파동 및 촛불시위에 대한 그들의 대응과는 매우 다르게 이번 정부는 어떠한 사태에도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지 않았다. 그를 대변할만큼 공인된 실력자 혹은 측근들 또한 없었다. 그렇다고 책임인사가 있었는가 하면 대통령이 직접 경질한 이는 개인적 추문을 일으킨 윤창중 전 대변인 1명 뿐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가? 아니 그 이전에 얼마나 이전 정권과 다른가? 이에 대한 대답이 가능하려면 박근혜정부가 임기를 종료하고 나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박 대통령의 정부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정국을 보는 한 방법으로서, 취임 이후 7월까지 두 전직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차이점들과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몇마디 조언을 덧붙일까 한다.
비교 대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정했다. 국정백서로 정리된 공식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한계선이기도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같은 당 소속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이어받은 사례로서, 이 전 대통령은 민주당계 정권들 이후 정권교체로 집권한 보수정권의 사례로서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매일이 바빴던 노무현과 이명박, 조용한 박근혜 정부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특징이라는 면에서, 대통령의 업무진행이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공식 일정을 분석해 보았다. 각기 취임일로부터 7월9일까지의 일정을 대상으로 하여 국무회의를 비롯한 대통령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들과, 수석-비서관 회의, 집권 초기에 집중적으로 행해지는 업무보고,외교활동인 회담, 그리고 공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연설/기자회견 회수를 조사했다. 두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각각의 국정백서(노무현, 이명박) 를, 박 대통령의 경우는 청와대 홈페이지의 일정 소개를 활용하였다.
가장 특징적인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수석-비서관 회의와 그외 위원회 회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타 대통령보다 3배에 달하는 – 사실상 거의 이틀, 사흘만에 한 번 꼴이었음 – 수석-비서관 회의 회수는 참여정부 시절 수석비서관들이 가장 대통령과 밀착해 있던 이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왕수석”, 그리고 “대선후보” 문재인 의원의 시작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타 대통령들은 보통 수석 비서관 회의만을 진행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구분없이 비서관들과도 잦은 회의를 가졌다.
또한 국정과제회의만으로도 박 대통령의 전체 위원회 회의보다 많은 회수를 기록했는데, 이 회의가 매트릭스 조직론에 영향을 받은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범부처, 관민 위원회였다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타 대통령의 서너배에 달하는 정상회담 회수가 눈길을 끈다. 그 대상도 미중일 등 강대국뿐만이 아니라 캄보디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뉴질랜드, 수단 등 자원부국들에 걸쳐있다는 점에서 이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가 취임 초기부터 실행에 옮겨지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제중시, 현장주의는 업무보고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특이하게 국제행사 또는 개발사업이 진행되던 지자체 네 곳(전라북도, 제주도, 인천, 충청북도)에게서도 업무보고를 받았다.
사업현장에서 받은 것도 있지만, 이동하지 않으면서도 받기도 해서 토목개발사업에 대한 관심이 잘 드러난다. 재정전략회의를 이틀 연속으로 열어서 결론을 도출해 낸 것 또한 이 전 대통령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와 함께, 그의 통치 스타일이 관심사에 대해서는 직접 나서서 현장을 챙기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일정을 보면, 많이 알려졌다시피 일정 자체가 적다. 수석 비서관 회의도 확대 회의 한 번 없이 수석 회의만 있으며, 그나마 회수가 높은 업무보고도 대부분 연관성이 있는 부처들을 묶어 처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적으로 4월18일에는 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신위원회-원자력안전위원회에게서 업무보고를 받았는데, 취임 초기부터 원자력 분야에 대한 인식(원전 비리를 인지하고 있었다고도 보인다.)이 있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어떻게 하루만에 방대한 업무들을 처리하는 저 세 부서 모두가 업무보고를 하는 일이 가능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대통령도 활발히 토론에 참여했다고 하지만, 일정을 보면 그럴만한 시간이 있기나 했을지 의심이 간다.
외교상 회담 또한 회수가 너무 적어서 두 전직 대통령들의 기록에서는 세지 않은 환담, 면담까지 중요하다고 생각된 몇몇은 포함시킨 회수인데, 제대로 된 회담은 사실상 미국-중국 순방이 전부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회의를 보더라도 7회 중 외교안보장관회의가 3회에 달한다. 국민대통합위원회 회의가 1번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경제와 무역 관련이다. 북한과 개성공단 문제로 인해 안보관련 회의들이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로부터 대통령의 관심사를 알기는 힘들다. 그 결과도 긍정적이지는 않다. 북한의 위협에 개성공단에서 인력 임시 철수라는 강수를 놓았지만 결국 지리한 협상 중이다.
5월 16일에는 재정전략회의를 열어서 지역개발예산을 삭감해 복지 등 공약사항들로 돌리는 공약가계부로 불리는 재정정책을 확정했으나, 바로 새누리당의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지역개발 예산계획을 따로 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가시적인 결론이 나오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현재로서는 회의로 결정된 내용들조차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뭘 하는지 알기조차 힘든 박근혜 정부, 누가 정부를 움직이는가?
일정과 그 이후의 업무진행들을 보아서는 박 대통령이 누구와 자주 접촉하는지, 또한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두 전임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이 취임 후 초기 일정 정리만으로도 잘 드러나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의아한 일이다. 취임 100일을 맞아 하루가 48시간이면 좋았겠다는 발언도 했었고, 당선 전부터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손 놓은 채 놀고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면 비공식적인 접촉, 즉 막후 조정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박 대통령의 내각과 청와대 구성을 보면 무난한 관료 위주임을 알 수 있다. 자신를 지지한 전력이나 개인적 인연 없이도 발탁한 인사들도 꽤 된다. 취임 초기에 빈발했던 내정자 낙마 사태들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박 대통령이 실무 능력 위주로 인선했다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관료들 위주의 내각은 대통령의 뜻보다 관료조직의 이해를 우선하기 쉽다. 박 대통령은 공공기관 인사에 대해 낙하산 인사를 부정해왔음에도, 관치금융-낙하산 논란에 이번 정부의 공공기관 인사를 결국 일시중단해야 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대표하는 민주당의 중진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각료로 임명하고, 이 전 대통령이 자신과 친분이 깊은 강만수, 이재오 등을 장관으로 기용하고 총리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은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에서 대통령의 뜻을 받아 정부를 조정하는 인물들은 누구인가? 조선일보에서 보도한 9인회가 그 대표적인 막후조정모임으로 보인다. 일부 참석자들만이 그 존재를 인정한 인정한 이 모임은 새누리당에서 황우여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 김기현 정책위원장이, 정부측에서는 정홍원 총리, 현오석 경제부총리,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이, 청와대에서는 허태열 비서실장,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정현 홍보수석이 참여했다고 한다. 실제로 대통령이 자주 독대하는 이들이 현오석 경제부총리, 정홍원 국무총리, 허태열 비서실장,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이정현 홍보수석, 조원동 경제수석 등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 모임의 인물들이 상당수 망라되어 있다. 다루어지는 안건들도 정무, 경제 등 가리지 않고 폭넓었다고 한다.
이 모임의 실무진행을 위해서 따로 김기현 당 정책위원장,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등이 실무진을 모아 “실무 당정청” 회의를 진행했다고 하니 이 모임이 단순히 당정청의 의견교환과 소통을 넘어서 정책 결정과 진행을 위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이 9인회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은 역시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이다. 긴 기간 정부에서 일해온 관료출신이지만 박근혜정부 내각에서는 드물게 인수위부터 참여했던 인물이다. 인수위 인물들을 중용하지 않은 박 대통령이 이전 국무총리 산하에 있던 이 직위를 장관급으로 끌어올리면서까지 임명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막후조정모임인 9인회에서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바로 다음으로 내각을 대표하는 인물인 것이다. 실무조직에도 참여하고 있다. 거기에 대통령이 비공식 보고를 받을 때에 배석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던 것이 이상할 정도다. 국무조정실이 세종시에 위치한 이유도 있겠지만, 대통령의 신임과 비공식적인 직책을 고려하면 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곧 박근혜정부의 방향을 알려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한 명 지목하자면 남재준 국정원장이다. NLL관련하여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록을 유출하여 정치적 논란의 한 중앙에 선 인물이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을 그에게 일임함으로서 새누리당에서조차 일던 비판을 무력화시켰다. 또한 그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적은 수의 정권핵심그룹에도 낀 것으로 보인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과 같이 군 출신인데다 국정원장이라는 막강한 지위에 더해 거의 유일하게 대통령의 공개적인 신임까지 얻은 남 국정원장이 박근혜정부에서 단순히 정보조직의 수장에 그칠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이미 그는 국정조사까지 불러온 정치적 다툼의 최선봉에 서 있는 이다.
소수 측근에 의존하는 박근혜의 인사 스타일, 그 위험성
박근혜 대통령은 진중하고 신뢰를 주면 확실히 믿는 인사 스타일로 유명하다. 이는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의 조직 관리 방법론 상 당연한 귀결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정부를 실무진은 관료, 학자 등의 전문가들을 뽑아 구성하고 그들을 관리, 감독할 소수의 강력한 측근들을 비공식적으로 직접 챙기는 식으로 조직해 왔는데, 이렇게 되면 소수의 측근들은 그 자리가 튼튼할 수 밖에 없다. 비공식 조직은 제대로 파악하고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암묵적인 룰로 움직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다. 바쁜 업무 중에서 인물 교체 후 적응기를 길게 두기엔 너무 부담스럽다. 결과적으로 쓴 사람 또 쓰는 인사결과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기까지 한 상황이다.
하지만 소수의 측근그룹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김현철의 충성심과 성공의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나,그의 전횡은 결국 김영삼 정부의 파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임기 초반에는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금융실명제도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바로 전 정권까지 10년 넘게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하나회를 숙청하는데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가 아는데로 최대의 경제위기를 불러온 정권이 되고 말았다. 소수의 측근조직은 결국 대통령의 임기가 지나갈수록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게 된다. “정치9단”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막지 못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매우 유능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상도동계만큼 능력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이 비공식 통로를 이용한 소통보다는 공식적인 계통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공식적인 계통”의 의미는, 정부조직의 지휘 체계를 뛰어넘지 않는다는 의미가 강하다. 즉 상급자가 있으면 철저히 상급자와만 소통하고, 하급자가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일을 없애겠다는 말이다. 이는 필요할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실무자를 만나거나, 또는 측근들을 해당 장차관 자리에 임명하여 정부를 장악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하지는 않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극상”을 제일 싫어한다는 평을 들었던 박 대통령답다면 다운 것이겠지만, 상급자들만 대하면서 실질적으로 조직을 장악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정부 조직에 대한 통제력 없는 대통령이 성공하기란 더욱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정 상으로 보아도, 언론보도를 통해 보더라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리는 스타일이지만, 박근혜정부의 장악과 성공을 위해서 많은 이들과 만나고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9인회가 지금까지는 충성심으로 뭉쳐있고, 박 대통령이 잘 제어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대통령도 측근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그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또다른 비선라인을 통해서 사찰이라도 할 것인가? 아니면 남 국정원장의 정보에 기댈 것인가. 대형 회의체에서 여러 인물들과 실무진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말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 그렇게 싫어하신다는 하극상이 아니다.
측근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서, 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이 활용했던 매트릭스 조직론과 국정과제회의를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시길 바란다. 이미 참여정부의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와 비슷한 부서를 구성하셨었는데, 국정과제회의 또한 박 대통령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경선에서 자기와 경쟁했던 중진 의원들을 내각에 중용하면서도 이러한 직속 위원회들을 관장함으로써 국정에 대한 통제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군림하는 것만으로 국가원수의 업무가 끝나는 게 아니다. 통치하기 위해서 대통령은 많은 이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글이 매우 길어졌다. 세줄 요약 들어간다.
1.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관리하는 소수의 측근들로 하여금 국정을 관장하도록 하는 스타일이다.
2. 그 결과 소수의 측근 그룹은 매우 강력한 위치를 굳히며 이는 YS 정부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3. 그 실패를 막기 위해서, 노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직속 위원회들을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