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조금 식상한 주례사 중에 그런 말이 있다.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신랑과 신부는 그렇게 하겠다고 서약한다. 하지만 신랑과 신부를 죽음이 갈라놓고 나서는 어떨까? 조금 억지를 더 해서 저 질문을 뒤집으면, 죽음이 갈라놓고 나면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어쩐지 발칙한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이기적인지라, 상대가 나의 죽음과 상관없이 영원히 나를 사랑해주길 원한다. 그건 어쩐지 잔인한 이기심이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애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현재의 살아 있는 나는 죽은 후의 나를 상상하지 못하고, 그냥 애인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상상에만 화가 났다. 하지만 머리를 조금만 차갑게 하고 생각해보면 서로가 가장 행복한 방법은 둘 중 하나가 죽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삶을, 그리고 또다른 사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사랑이 한 사람만을 영원히 그리워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면 현대의 사랑에선 나 이후의 새로운 사랑을 이해하고 권할 수 있는 것이 미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뉴욕 타임스에 올라온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Amy Krouse Rosenthal)의 글 ‘제 남편과 결혼하는 것은 어떻습니까(You May Want to Marry My Husband)’는 《현대의 사랑(Modern Love)》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글이 아닐까 싶다. 대단히 가슴 아프고, 아름다운, 감동적인 이야기다. 전문을 번역했다.
한동안 이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만 모르핀과 육즙이 흘러내리는 치즈버거가 없다는 사실─5주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다─은 제 에너지를 빼앗아 버렸고, 동시에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갔습니다. 게다가 문장의 중간마다 저를 글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간헐적인 선잠은 제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글을 쓸 수 없게 방해했습니다. 하지만 인정하자면 그것들은 꽤 멍한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마감이 코앞이기 때문이죠. 특히나 이번 마감은 꽤 압박스럽습니다. 저는 이 글을
- a) 여러분의 관심과
- b) 저의 맥박이 살아 있을 때
(적절하게) 써야만 합니다.
저는 26년간 대단히 훌륭한 남자와 결혼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또 다른 26년을 함께할 계획이었죠.
기분 나쁜 농담을 하나 해드릴까요? 한 남편과 아내는 2015년 9월 5일 늦은 밤, 응급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여러 검사를 하고 난 후 의사는 아내가 오른쪽에서 느끼는 이상한 고통이 대수롭지 않은 충수염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그보다는 난소암인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이 커플이 9월 6일 이른 아침, 어떻게든 이 모든 일의 막연한 충격 속을 뚫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가슴 아픈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 날이 공식적으로 집이 비는 첫날이라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의 세 아이 중 막내가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나는 날이었거든요.
갑작스레 많은 계획이 휙 하고 사라졌습니다.
남편과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남아프리카로 여행을 가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됐습니다. 이제는 하버드 롭 펠로우십에 신청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아시아로 여행을 가려던 꿈도 사라졌죠. 인도, 밴쿠버, 자카르타에 있는 멋진 학교들에서의 작가 연수도 없어졌습니다. 암(cancer)이라는 단어와 취소(cancel)라는 단어가 비슷한 건 당연해 보였습니다.
이때 우리는 플랜 “Be(역자 주: 현재를 살아가자는(Be) 계획이 플랜 B와 발음이 같은 걸 이용한 것)”를 생각했습니다. 오직 현재만 살아가자는 계획이었죠. 하지만 미래를 위해 제가 이 글의 주인공이자 신사인 제이슨 브라이언 로젠달을 소개할 기회를 줬으면 합니다.
그와 사랑에 빠지는 건 쉬운 일입니다. 저는 첫날에 그랬죠.
잠깐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제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엉클” 존은 제이슨과 제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 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이슨과 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죠. 저는 대학에 가기 위해 동부로 떠나야 했고, 첫 직장을 캘리포니아에서 구했습니다. 제가 시카고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존—존은 제이슨과 내가 서로에게 완벽한 상대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은 우리에게 소개팅을 시켜줬습니다.
그때가 1989년이었습니다. 우리는 겨우 24살이었죠. 저는 그때 아무런 기대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 작은 집 문을 두들겼을 때, 생각했죠.
“이 사람에겐 매우 호감 가는 무언가가 있어.”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엔 제가 이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이슨은 어땠냐고요? 그는 1년이 지나서야 그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틴더나 범블, e 하모니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제이슨의 간단한 프로필을 한 번 써보겠습니다. 9,490일 동안 같은 집에서 함께 산 경험에 기반 둔 프로필입니다. 가장 먼저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죠. 그의 키는 178cm입니다. 체중은 72kg입니다. 검은 머리에 흰머리가 드문드문 섞여 있고, 개암나무 색깔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 적어 내려가는 특징의 순서엔 별다른 기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겐 모든 특징이 똑같이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는 맵시 있게 옷을 입을 줄 압니다. 우리의 장성한 아들, 저스틴과 마일스는 종종 그의 옷을 빌려 입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혹은 그의 바지와 신발 사이의 작은 틈을 보게 된 사람들은—그에게 멋진 양말을 고를 줄 아는 훌륭한 안목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는 몸이 좋고, 몸 관리를 즐깁니다.
만약 우리 집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집은 제이슨이 묘하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특히 음식에 관해서 그렇죠, 그는 요리도 할 줄 압니다. 긴 하루가 끝났을 때 그가 문으로 다가와 조리대에 장바구니를 놓고 제게 올리브와 맛있는 치즈를 주는 것보다 더 달콤한 즐거움은 없습니다. 그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그것들을 가져와 내게 이쁨을 받으려 합니다.
제이슨은 라이브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건 우리가 함께하길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19살 딸, 패리스가 다른 누구보다도 그와 함께 콘서트에 가려 한다는 점도 적어둬야겠네요.
제가 제 첫 자서전을 쓰고 있었을 때, 저는 제 편집자가 더 늘려 썼으면 했던 부분에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그녀는 “이 인물에 대해서 더 많은 글을 알고 싶어요.”라고 말하곤 했죠. 물론 저도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매혹적인 인물이거든요. 하지만 어쩐지 재밌기는 합니다. 그녀가 그냥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거든요.
“제이슨. 제이슨에 대해서 더 써주세요.”
그는 정말로 훌륭한 아버지입니다. 누구에게라도 물어보세요. 코너에 서 있는 남자가 보이시나요? 그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대답해줄 것입니다. 제이슨은 인정이 많습니다. 그리고 팬케이크를 뒤집을 줄도 압니다.
제이슨은 그림을 그립니다. 저는 그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저는 그가 법학 학위 때문에 시내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9시부터 5시까지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것만 빼면 그를 예술가라고 불러줬을 겁니다. 제가 아프기 전만 해도 적어도 그는 예술가였습니다.
만약 바로 같이 여행을 갈만한 꿈 같은 친구를 찾고 있다면 제이슨이 당신에게 딱입니다. 그는 작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작은 스푼, 조그만 병, 벤치에 커플이 앉아있는 걸 표현한 작은 조각품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는 그 조각을 제게 보여주며 우리 가족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떠올리게 해줬습니다.
제이슨이 어떤 남자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는 제가 첫 임신을 하고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 꽃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언제나 일찍 일어나는 그는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커피포트 근처의 물건들을 이용해 별난 웃는 얼굴을 만들어서 저를 놀라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스푼, 머그컵, 바나나 같은 것들로요. 그는 마트나 주유소에서 나오면서 “손바닥 줘 봐.”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짜잔, 색색의 풍선껌을 건네줍니다. 그는 제가 하얀색을 제외하면 모든 맛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쯤이면 그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합시다(역자 주: 틴더에서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하면 상대방이 좋다는 의미다). 아, 잠깐만요. 제가 그가 엄청나게 잘생겼다는 얘기를 했던가요? 저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걸 그리워할 겁니다.
만약 제 이야기 속의 그가 왕자처럼 보이고 우리의 관계가 동화 같이 들린다면 그렇게까지 거리가 먼 얘긴 아닐 겁니다. 26년간 함께 가정을 꾸려가며 있었던 모든 일상적인 일들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그리고 제가 암에 걸린 부분도 빼야 할 테고요. 우욱.
암 진단을 받기 전에 쓴 제 가장 최근 자서전에서 저는 독자들에게 짝으로 타투를 하자는 제안을 하고 독자들이 응모하게 했습니다. 작가와 독자가 잉크로 묶인다는 아이디어였죠. 저는 그 아이디어에 완전히 진지했고 응모하는 이들 또한 진지하길 바랐습니다. 수백 건의 응모가 있었습니다. 몇 주가 지나 8월이 됐고 책이 출판될 때 저는 밀워키에 사는 62세의 도서관 사서 폴레트 씨의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녀는 “조금 더(more)”라는 단어를 제안했습니다. 책 안의 에세이에 언급되어 있는 얘기인데,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던 말은 “조금 더”였습니다(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단어는 제가 마지막으로 말하는 단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사실이 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
9월, 폴레트 씨는 시카고 타투 숍에 있는 저를 만나러 차를 몰고 왔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처음 말한) 자신의 단어를 왼쪽 손목에 새겼고, 저는 왼팔의 아래쪽에 제 딸의 손글씨로 저의 단어를 새겼습니다. 그건 제 두 번째 타투였습니다. 첫 번째 타투는 25년간 제 발목에 있는 좀 더 작은 소문자 “j”입니다. 아마 j가 무엇의 첫 글자인지는 맞추실 수 있을 겁니다. 제이슨 또한 타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단어가 많죠: “AKR”
저는 제이슨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제 아이들과도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목요일 밤, 그린 밀 재즈 클럽에서 마티니를 홀짝거릴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있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 행성 위에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며칠 정도뿐입니다. 근데 제가 왜 이 글을 왜 쓰고 있는지 궁금하신가요?
저는 이 글을 밸런타인데이에 마무리했습니다. 거짓 없이 제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선물은 좋은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제이슨을 찾아 또 다른 사랑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신들 둘이 새로운 시작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의도적으로 이 아래는 빈 공간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모든 사랑을 담아서, 에이미.
원문: Yoon Ji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