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자료를 바탕으로 경향신문에서 ‘박근혜 4년, GDP보다 집값 3.5배 뛰었다’는 기사를 내었다. 이런 숫자를 바탕으로 된 기사나 주장은 조금 조심히 볼 필요가 있다. 여러 경제 고수님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 3.5배는 전국 주택 시가총액 증가금액과 같은 기간 GDP 증가금액을 비교한 것인데, 어떻게 이 두 금액의 증가금액을 비교할 발상을 했는지 그 독단적인 창의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어쩌다 비교할 만큼 숫자가 주어지더라도, 시가총액은 저량(Stock)이고 GDP는 유량(Flow)다. 즉 시가총액은 1년이 가고 2년이 가도 어디로 날아가는 게 아니지만 GDP는 그냥 당해연도에만 해당하여 흘러가는 물줄기와 같다는 것이다. 여튼 이는 페북의 여러 경제 고수님들이 그 허구성은 이미 짚어주셨으니 넘어가고, 나는 역대 정권과 부동산 가격의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정책의 시차에 대해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보통 사람들은 정치가 바뀌면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라 기대를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의 상관관계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단적으로 아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아파트 가격 안정세를 미덕으로만 따지자면 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성군은 없다. 조금 더 들여다보자면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러한 범주에 포함될 수 있겠다.
먼저 밝혀두자면 나는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간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말은 갈수록 내 수중에 있는 현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가지고 있으면 X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가치가 떨어질 이 현금은 어떻게든 시장이 풀어야 하며, 투자를 통해서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돌려야 한다. 시장에 돈이 돌아야 세금도 걷히고 파이가 커져서 기회도 많아지게 된다.
그럼에도 부동산 가격은 급격하게 오르거나 급격하게 내리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급격히 오르면 무주택자가 집을 장만할 가능성이 줄어들며 급격히 내리면 하우스푸어가 양산된다. 따라서 정책을 통해 조금 안정적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 어떤 성향의 분들이 정권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다소 그 정책은 달라지게 된다.
참여정부 때를 기억해보자. 참여정부는 분양권 전매금지, 재건축 조합원 지분 전매금지, 종합부동산세의 도입, LTV, DTI,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의 적극적인 규제를 내걸었지만 아파트 가격은 상승했다. 이는 규제를 통해 시장에 변화를 준다고 즉각적으로 컨트롤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정책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시차가 발생한다. 인식과 결정, 그리고 집행에 따른 내부시차와 외부시차가 발생하여 꼭 해당 정권의 정책이 해당 정권의 기간 내에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까 김영삼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시장이 안정된 것은 그 이전 노태우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규제정책을 세웠던 것이 뒤늦게 발현된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어느 한 정부에서의 경제지표를 가지고 그 정부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하는 말은 조금은 디테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아무리 한국 경제가 국가주의 시장경제로 평가받더라도 자유시장 경제는 자유시장 경제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역대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글로벌기업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부디 그러한 고급 기술을 저기 저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지에 전파해 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한 부분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마는 시장의 영역에서 정치의 변화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정권이 교체되어도 부동산 가격은 조금씩 오를 것이며 국민 모두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리 만무하다는 말이다. 행정부는 원활한 시스템을 만드는 곳이지 집단경제를 이끄는 곳이 아니다.
좋은 정치를 하는 사람, 좋은 정부를 만들 사람을 뽑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대통령이란 지도자가 대한민국의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질 수는 없는 일이다. 아울러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아 해외에서 발생한 충격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생산이 위축될 수도 있고 환율에 따라 수출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통계청 지표상세 무역의존도 항목을 참조하면 “OECD 자료에 의하면, 2009년 현재 한국의 GNI 대비 수출입비율은 약 78.7%로 미국(18.2%), 일본(30.1%), 독일(73.8%) 등 주요 선진국들보다 높은” 편이다. 그러니까 정부가 어쩌지 못하는 거시적 변수로 인해 경제지표도 변동될 여지가 많다는 말이다.
현명한 판단을 하려면 신문의 머리기사보다는 본문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본문에 숫자가 나오면 휴대폰 계산기로라도 대충 두드리며 맞는 말을 하는지 스스로 계산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고 분노한다면 분노의 과녁이 제대로 조준되지 않을 가능성을 남겨두는 일이 될 것이다. 부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분노하더라도 조금은 따져가며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