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우수가 벌써 지났지만 날씨는 여전히 매섭다. 동장군은 쉽게 물러가지 않을 태세다. 어떤 해는 4월에 눈을 내리게 한 적도 있다. 남녘의 화신(花信)은 여태 전해오지 않고 있다. 대동강 물이 풀리려면 아무래도 달을 넘겨야 할 모양이다.
영하의 날씨에 홑껍데기 차림으로 한데서 떨고 있는 소녀상이 못내 안쓰럽다. 소녀상이 안쓰러운 건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정부 당국의 가증스러운 처사가 더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소녀들이 강제로 끌려가던 그때나 70년이 지난 지금이나 권력은 늘 그들 편이 아니었다.
소녀상을 두고 외무부가 또 헛발질하고 있다. 최근일 외무부는 부산 동구청에 공문을 보내 일본 총영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다른 데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도 마찬가지로 이전을 촉구했다고 한다. 앞장서서 소녀상을 세우고 관리해도 모자랄 판에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외교부 대변인의 말은 참으로 가증스럽다. 조준혁 대변인은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외교부는 부산 일본총영사관 후문 옆에 설치된 소녀상의 위치가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 및 관행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누차에 걸쳐 밝힌 바 있다”며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오래 기억하기에 보다 적절한 장소로 소녀상을 옮기는 방안에 대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이 처음 건립될 때만 해도 우리 정부는 별말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녀상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전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일본 정부의 압력과 요구 때문이다. 일본이 소녀상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우리 정부가 맞장구를 치고 나선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이 조선총독부 통치시대가 아닌 다음에야.
외교부가 밝힌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 및 관행”은 물론 존중돼야 한다. 문제는 ‘국제예양’을 거론할라치면 일본이 먼저 제대로 된 사과와 진상규명 등에 나섰어야 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통한의 역사를 단돈 10억 엔에 ‘엿 바꿔 먹듯’ 졸속으로 처리했다. 그들 눈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분노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한일관계만 보이는 모양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외교부가 아베 정권의 한국 출장소냐?”며 일갈한 것은 결코 과하지 않다.
2015년 말 한·일 정부가 합의한 ‘위안부 협상’은 두고두고 말썽이 되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가 협상 당시 일본 정부에 소녀상 이전을 약속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정부는 속 시원한 해명은커녕 관련 시민단체 등의 정보공개 요구마저 묵살했다. 양국 간에 ‘물밑거래’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뭔가 구린 데가 없지 않고서야 이럴 순 없는 노릇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협상 결과를 두고 ‘최종적 및 불가역적(不可逆的)’이라고 밝혔다. ‘위안부 협상’은 과연 되돌릴 수 없는 것인가? 근현대 한일관계 및 독도 영유권 문제 전문가이자 2003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는 “일본도 1993년에 ‘고노담화’를 검증해서 사실상 무효화시켰다. 일본도 사실상 한번 교정한 것을 바꾸어 놓았던 사실이 있다”며 “(위안부) 합의가 어떻게 이뤄졌고 그 배후에는 뭐가 있었는지 정확한 검증이 이뤄진 다음에 얼마든지 재협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먼저 ‘12.28 합의’를 철저하게 검증해 정당성을 확보한 후 우리 정부는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소녀상은 지난 2011년 12월 14일 열린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처음 등장했다. 이후 소녀상은 국내외를 포함해 30곳이 넘으며, 일각에서는 ‘작은 소녀상’ 보급운동을 펼치고 있다. 외무부의 희망대로 서울과 부산의 소녀상을 이전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소녀상은 한국인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대한민국 외무부’는 더 이상 헛발질을 하지 말라.
원문: 보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