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대로’ 김제동, 평범한 우리의 공감과 가치를 말하다
3월 첫날에 방송된 <말하는 대로>에는 김제동이 출연했다. 평소 <김제동 톡투유>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사람의 사는 이야기를 주제로 말하는 그는 지금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말하는 기회를 돌려주면서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기회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김제동을 무척 좋아한다.
우리는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이 함께 감동해주고 함께 울어줬으면 한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쉽게 사람과 소통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공감이 어려워졌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겪는다. 외로움을 겪고, 마음이 허해지다 보니 잘못된 일에 손을 대거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쫓아다닌다. 어쩌면 지금 저 광장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거나 촛불을 밝힌 사람 중 조금 과격한 사람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김제동은 하하와 유희열을 비롯한 다른 게스트와 말하는 자리에서 한 학생의 사연을 말했다. 그 사연을 짧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학생 저 학교 가기 싫어요.
김제동 그렇다면, 가지 않아도 괜찮아. 가지 마.
학생 어떻게 학교를 안 갈 수가 있어요? 순진한 소리 하고 있어요.
김제동 그러면 가.
학생 학교 가기 싫다니까요.
김제동 그러면 가지 마.
… (반복)
학생 그래도 감사합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했는데, 가지 말라고 말한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김제동이 들려준 이야기는 대단히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공감’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막대한 부나 권력이 아니라 우리를 지지해주는 작은 사람의 응원이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줄 때, 가슴이 벅차오르게 마련이니까.
김제동은 <말하는 대로> 본무대에 들어가서 프랑스에서 본 한 건물을 사례로 들면서 버스킹을 시작했다. 그 건물에는 “이 건물이 이 사람들의 수고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이렇게 존중받는 사람들이 과연 건물을 허투루 지을까요?’라고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사회는 비참하게도 ‘돈을 줬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지.’라는 말로 사람의 존엄을 무시하는 일이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난다. 우리 사회에 일어났던 갑질 논란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람의 존엄성을 보장받는 일이 어려운지 보여주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공무원을 꿈꾸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공무원이 된다면 적어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품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 자신이 왜 공무원이 되었는지를 잊고, 자신이 당하기 싫었던 갑질을 다른 사람들에게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이 돌고 돌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병들어가고 있다.
어릴 적에 우리는 ‘공부 안 하면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해야 하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해야 한다.’는 말을 정말 흔하게 들었다. 김제동은 이 말을 언급하며 이 말도 굉장히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더 섬뜩한 것은 우리가 그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나도 그랬었다.
사람을 보지 못했던 그 시절에 나는 무조건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공부하면 배우자 얼굴이 바뀐다.’ 같은 잔인한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결과만 바라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과정보다 무조건 내가 내는 결과가 더 중요했다.
그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가 어떤가? 학교에서는 비인간적인 학교 폭력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우리 사회는 대통령이 1+1이 되어버리는 최악의 권력 사유화 사태가 일어났다. 더욱이 무서운 것은 여전히 잘못된 방법으로 결과를 낸 사람들이 일부 세력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점이다.
김제동은 이어 울산의 한 공단의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울산에는 정주영 회장님의 ‘하면 된다.’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함께 걸어주면 안 될까? 왜 우리는 돈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따라가야만 하는 존재일까? 왜 우리는 중요한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는 걸까? 왜 우리는 쓸모있는 사람이어야만 가치를 인정받을까?
돈 있는 사람들의 자기계발서를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우리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나’가 없다는 사실이다. 왜 우리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를 포기해야 하고, 무조건 좋은 성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우리의 노력은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에 있다. 한때 우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갈채를 받았지만, 결과 지상주의에 떠밀려 우리는 결과가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우리는 언제나 상대가 원하는 답을 내기 위해서 나를 연기해야 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본연의 나’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김제동은 말한다.
가만히 있다고 쓸모없다고 평하는 모든 것을 대적해야 한다. 너희들의 쓸모로 우리를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 우리가 본연의 나로서 인정받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우리의 가치를 멋대로 평가하는 외부에 저항하는 것이다.
우리는 홀로 살 수 없기에 결과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보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볼 수 있게 되고, 자신을 볼 수 있게 되면 나를 지지할 수 있게 된다. 오로지 성과를 내야 인정받는 외부의 나를 스스로 인정하는 자존감을 세울 수 있다. 그렇지 않을까?
사람보다 결과만 중요시하게 여겨진 우리 사회에 사람의 중요성을 말한 김제동. 그의 <말하는 대로> 버스킹은 그가 늘 하던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평범한 사람이 가치를 인정받아야 우리가 웃을 수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많은 사람이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의 마지막으로 김제동이 버스킹 마지막에 남긴 시를 남긴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를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 비스듬히, 정현종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