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로건〉의 추천사입니다. 영화의 시놉시스, 예고편에 공개된 정도의 정보와 기타 〈엑스맨〉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울버린〉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
2006년 기존 〈엑스맨〉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엑스맨: 최후의 전쟁〉이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혹평을 받으며 퇴장했을 때부터 울버린 단독 작품은 꼭 나와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원작의 리더 격인 사이클롭스를 단역(…)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엑스맨〉 시리즈는 울버린을 중심에 세웠었죠. 그의 탄생에 대한 수수께끼와 자아에 대한 고뇌는 1편과 2편의 핵심 주제였습니다. 그럼에도 〈엑스맨: 최후의 전쟁〉은 그 테마를 마무리하는 데 실패했고, 따라서 많은 팬이 누군가 나서서(기왕이면 브라이언 싱어가) 울버린의 못다 한 이야기를 정리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울버린〉 스핀오프 시리즈는 썩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실망스러운 구성과 전개로 일부 팬들 사이에서 〈울버린〉 시리즈는 ‘믿고 거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었죠. 전작 〈더 울버린〉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이번 〈로건〉에서도 메가폰을 잡자 이런 우려는 시사회 직전까지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입니다. 〈로건〉은 히어로 영화 최초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프리미어에 올랐고, 팬들은 이 맨골드가 그 맨골드가 맞냐며 예상치 못한 선물에 기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네. 〈로건〉은 지금까지의 〈울버린〉 시리즈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를 동시에 의미합니다. 첫 번째는 완성도 측면에서 전작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작품의 전개와 분위기, 나아가 장르 측면에서도 〈울버린〉 시리즈와 궤를 달리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의 〈엑스맨〉과도 완전히 다른 작품
이는 곧 〈로건〉이 〈엑스맨〉 시리즈와 다르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소수자에 대한 은유라는 사회적 메시지와는 별개로 〈엑스맨〉 시리즈는 히어로 영화의 문법에 충실했습니다. 〈로건〉 역시 그 문법을 애써 피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부차적입니다. 때로는 히어로라는 캐릭터의 정체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졌다고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는 작중 가장 크고 화려한 액션 신이 대결 신이 아니라 자동차 추격 신이라는 점에서 확연히 나타납니다.
사실 영화의 돌연변이들은 이미 히어로라 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로건은 리무진 운전으로 겨우 생계를 꾸리며, 찰스는 언제 발작할지 모르는 치매 환자입니다. 정말로 늙어버린 배우들만큼이나 영화 속 세계도 어둡고 무겁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사람이 로건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의 딸을 어디론가 데려다주기를 부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전형적인 서부극의 플롯입니다.
실제로 〈로건〉은 히어로 영화가 아닌 서부극의 구조를 매우 충실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강하지만 무언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주인공, 우연히 맡게 된 임무, 그것을 쫓는 악당, 말과 마차의(자동차의) 추격 장면, 샷건을 맨 카우보이들. 나아가 〈로건〉은 아예 영화 속에서 1950년대 명작 서부극 〈셰인〉을 직접 보여주며 인용합니다. 액션 신보다 그 과정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할애하는 것조차 〈셰인〉과 닮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로건〉은 구조적으로 히어로 영화일 수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 히어로 영화라고 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히어로 캐릭터만 빼 와서 서부극의 구조에 던져 넣은 가족 영화/로드 무비라는 게 가장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로건〉에 대해 누군가는 극찬을, 또 누군가는 혹평을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시지 계승
작품 속 분위기뿐만 아니라 작품의 구조까지도 전작과 크게 달라졌지만, 시리즈의 연속성에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로건〉이 기존 시리즈, 그러니까 〈엑스맨〉 시리즈와 스핀오프 〈울버린〉 시리즈의 메시지를 모두 잘 계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엑스맨〉 시리즈의 핵심 메시지, 그러니까 물리적 강자와 사회적 약자라는 역설은 이번 작품에서도 주된 갈등 축으로 등장합니다. 근래의 이런저런 이슈와 엮어 보여주는 감각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언젠가의 엑스맨이 흑인을, 또 가까운 시일의 엑스맨이 성소수자를 은유하고 상징했다면 〈로건〉의 ‘돌연변이’ 역시 분명히 누군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많은 사람이 〈엑스맨〉을 기념하고 좋아하는 이유이자, 〈로건〉이 〈엑스맨〉이 아니면서도 〈엑스맨〉일 수 있는 이유이겠지요.
더욱 훌륭한 것은 전체 시리즈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나던 울버린이란 캐릭터의 고뇌를 드디어 하나로 종합해내고, 나아가 마무리까지 해냈다는 것입니다. 영화 세계관에서 울버린이란 캐릭터는 이 두 가지 단어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계와 본성.
압도적인 강력함을 지닌, 죽지 못하는, 남들과는 다른 존재. 특히 죽지 않는다는 건 그러잖아도 특별한 돌연변이를 더 특별하고도 고독하게 만들었지요. 친구와 연인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가는 과정에서도 기어코 살아남는 건 어쩌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듯, 최악의 저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울버린은 더욱 관계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입니다.
돌이켜보면 〈엑스맨〉 시리즈는 울버린이라는 방랑자 캐릭터가 돌연변이 사회, 작게는 프로페서 X의 영재학교에서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엑스맨을 믿지 못하던 그였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며 점점 신뢰와 애정을 쌓아 나갑니다. 시리즈 마지막에선 나아가 엑스맨의 리더처럼 활약하지요. 물론 그는 언제나 이런 관계를 부정하고, 싫어하는 것처럼 말하지만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매번 서로 으르렁거리고 다투던(예컨대 가운데 클로…) 사이클롭스에게조차 미소 짓는 그 모습은 그래서 단순히 팬 서비스를 넘어 서는 중요한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울버린〉 시리즈는 로건의 관계를 더 직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서 연인 케일라와 형 빅터, 그리고 그에게 ‘호의를 베푼 가족’, 〈더 울버린〉의 마리코와 유키오, 그리고 이치로까지, 모두 울버린의 존재, 그 힘과 불사성으로 인해 형성되고 적대하고 종말하게 된 관계입니다. 〈로건〉은 다시금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테마로 돌아갑니다.
바로 가족입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이 연인과 형제,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가 탄생시킨 울버린에 집중했다면 〈로건〉은 완성된 캐릭터로서 울버린이 자신을 똑 닮은, 마치 딸과 같은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다시금 본성에 대해 고민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그립니다. 쫓기던 울버린 일행이 신세를 지게 된 가족의 집에서 제이비어를 아버지로, 로라를 딸로 소개하는 장면, 그리고 그 이후 찰스가 “이런 게 삶이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작품의 시작과 끝부분, 그리고 시리즈 전체와 맞물려 묘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으로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언제든지 평범한 (다수의) 인간을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로서 돌연변이는 필연적으로 그 본성에 대한 의문과 연결되었습니다. 딱히 울버린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엑스맨: 아포칼립스〉에서 다시금 가족을 잃게 된 에릭이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며 이게 내 본성이냐고 울부짖는 장면은 〈엑스맨〉 시리즈를 통틀어 손꼽힐 명장면이었지요.
기억을 잃어버린 울버린은 끊임없이 자신의 본성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두려워했습니다. 그 공포는 평생 로건을 괴롭힌 악몽으로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엑스맨〉 시리즈의 주인공을 넘어 하나의 캐릭터로서 울버린의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적인 테마였습니다.
이 테마는 〈엑스맨 2: 엑스투〉에서 한 번의 정점을 맞이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울버린의 창조주인 윌리엄 스트라이커는 울버린에게 외칩니다. 너는 짐승이라고. 나는 발톱만 줬을 뿐이라고.
〈로건〉의 로건은 어린 시절 친부를 죽였던, 또 막 아다만티움을 얻고 혼란에 날뛰던 원형의 제임스로 다시금 돌아간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시리즈의 첫 작품인 〈엑스맨〉(2000)에서 보여줬던 까칠하고 이기적인 것보다 훨씬 더 까칠하고 이기적으로 굽니다. 그의 옆에는 패고 싶던 (단역) 사이클롭스도, 사랑하던 진도, 아끼던 로그도 없습니다. 심지어 능력은 형편없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극적 흥미를 넘어 울버린, 아니 로건이란 존재의 본성을 들여다보기 위해 언젠가 꼭 필요했던 장치일 것입니다.
그리고 〈로건〉은 영화 〈셰인〉과 울버린을 꼭 닮은 어린 로라를 통해 드디어 그 답을 제시합니다. 그 과정에서 전작의 장치와 주제를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것 또한 잊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서 다뤄졌어야만 하는 것들이 이제서야 언급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긴 여운에도 〈울버린〉 시리즈가 끝났다는 게 확실히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끝나는 순간까지 〈엑스맨: 로건〉이 아니라 〈로건〉임을 잊지 않습니다. 배트맨의 마지막을 그린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비교해도 재밌는 감상이 가능할 듯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다른 글을 통해 다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로건〉은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 역 작품인 동시에 패트릭 스튜어트의 마지막 프로페서 X 작품이라고 합니다. 한 시리즈의 한 역할을 누구보다 오래도록 맡은 두 배우의 마지막 작품이 잘 나와서 팬으로서도 정말 기쁩니다.
문득 이렇게 또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끝난 이후 참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입니다. 아마도 〈엑스맨〉 시리즈는 계속되겠지만, 우리 세대는 아마 휴 잭맨을 울버린으로, 패트릭 스튜어트를 프로페서 X로 기억하겠죠. 여하튼 다음 세대의 엑스맨을 고대하며.
Q. 다른 시리즈도 다 보고 가야 할까요?
솔직히 말해 〈로건〉 단독으로는 만듦새가 굉장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영화는 아닙니다. 늘어지는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고 또 어떤 부분은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도 넘어갑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20여 년 가까이 누적된 휴 잭맨의 울버린과 패트릭 스튜어트의 프로페서 X 캐릭터 그 자체로서가 전하는 메시지 덕택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부분과 생략된 부분도 이런 맥락에서는 이해가 됩니다. 오히려 저는 타임라인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적당히 생략해버리는 선택이 좋았습니다. 본작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전작을 되돌아보고, 또 빈 공백을 상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었죠. 물론 정말 중요한 정보들은 작품 내에서 다 언급이 됩니다.
다만 기존 세계관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이런 언급은 정말 단편적인 이야기로 지나가 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캐릭터의 동기가 그간 쌓아 올린 관계와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소소하지만 기존 시리즈에서 울버린이 수행한 상징적인 액션이 어린 로라로 통해 재현되는, 팬이라면 흐뭇하고 감동할 수밖에 없는 장면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기존 시리즈와 단절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깊이 연결된 역설적인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단독으로 보더라도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나 전개는 없습니다만, 당연히 그 감동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작품의 가장 중요한 코드가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기왕 이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으셨다면 〈엑스맨 2: 엑스투〉, 〈엑스맨 탄생: 울버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 세 편 정도는 한번 보고 가시길 추천합니다. 원작 코믹스 격인 『울버린: 올드 맨 로건』은 배경이나 분위기 말고는 본작과 거의 관련 없으니 굳이 안 보셔도 됩니다.
원문: 김고기의 영화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