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징과 이름의 힘을 가끔 간과한다. 상징과 이름은 사람들의 사고를 쉽게 지배한다. 괜히 20세기 철학의 중심 사조가 언어철학이 아니었던 것이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 나아가 문화를 얼마나 관통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가장 주된 연구항목이었다. 버트런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계 거성이 등장한 것도 이런 맞물림에 의한 것이다. 어렵게 철학으로 갈 것도 없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만 읽어봐도 신(新)어로 사람들의 사고를 통제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나치와 전범의 상징 하켄크로이츠
몇 해 전 인기 아이돌그룹의 멤버가 입은 무대의상에 ‘욱일승천기’가 그려져 있어서 크게 논란이 일었다. 실제로 욱일승천기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에서만 쓰이고 정식 용어는 ‘욱일기’가 맞다. 욱일기는 과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일본군의 상징으로 쓰였고 현재도 자위대의 깃발로 쓰이고 있다.
유럽을 위시한 서구사회에서 과거 히틀러가 수반이었던 나치(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 문양은 이유 불문하고 금기시된다. 그 문양을 사용한다는 것은 평화를 저해하는 메시지를 옹호한다는 의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아시아권에서도 일제의 욱일기 디자인 역시 강력하게 금기가 되어야 함이 옳다.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는 ‘卍(만)’ 자의 변용이다. 卍(만)은 아리아인들에게서 기원을 찾는 전통문양인데 이는 인도로 퍼지며 불교와 힌두교 등 다양한 종파에서 사용된다. 종교와 지역에 따라 의미는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지만 기본적으로 소용돌이치는 모양이 형상화된 표의문자다. 히틀러는 이 글자를 회전시켜서 나치의 상징물 하켄크로이츠로 사용했다. 참고로 하켄크로이츠는 고리(hook)를 뜻하는 하켄(haken)과 십자가(cross) 크로이츠(kreuz)의 합성어다.
히틀러는 나치를 상징하는 깃발을 휘두르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유대인을 무려 400만이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 전범기의 상징인 나치 문양은 결국 폭력과 전쟁의 표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애초에 동양 종교권에서는 卍(만)자가 ‘평화’와 ‘행복’을 상징한다. 그래서 심심찮게 우리가 사찰이나 부적에서 卍(만)자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평화와 행복의 상징으로 400만에게 학살을 자행하는 과정을 납득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잘못된 상징은 우리의 사고를 바꿔버렸다.
촛불과 태극기
다시 돌아온 3월 1일. 해마다 1919년 그 날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나와 순국열사를 기억한다. 누군가는 태극기와 국경일을 나라에 대한 사랑을 강요하는 행위로 맞이할 수 있겠으나 좀 더 직관적으로 우리의 지금을 만들어준 과거에 대한 감사 표시로 생각한다면 의미가 피부에 더 와 닿을 것이다. 일종의 예의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광화문 일대에는 3.1절이 아닌데도 태극기가 자주 보였다. 심지어 성조기도 보인다. 그들도 나라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나온 것일까?
촛불과 태극기도 또 하나의 상징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전자는 부정한 권력자를 심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후자는 그런 심판을 반대하는 상징이다. 이 둘은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가. 혹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처럼 왜곡된 의미로 사용되는 건 아닐까.
촛불은 본래의 의미를 잘 유지하고 있다. 촛불은 폭력과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무언의 메시지다. 촛불집회의 기원은 1968년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시위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2002년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여중생 ‘미선이·효순이 추모 집회’ 때 처음 사용됐다. 그 이후 거의 모든 집회에서는 촛불이 쓰이며 비폭력 평화시위를 기치로 삼는다. 외신들이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심각성보다도 집회의 방식에 더 집중하는 것도 그들의 집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태극기는 상징으로서 그 쓰임이 아무래도 어색하다. 태극기는 국기(國旗)다. 우리나라와 국민 모두를 상징하는 것이다. 특정 집단의 상징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뜻하고 가운데의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나타낸다. 사방의 4괘는 하늘·땅·물·불을 뜻하며 이는 조화를 상징한다.
매주 토요일 광장에 나오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태극기를 들고 모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태극기를 들지 않고 있는 반대편 집회는 애국심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이 조금은 다를 뿐 태극기를 들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들이 ‘애국자’들의 적이 되어야 하는지 큰 의문이 든다. 태극기라는 상징물이 본래 가진 평화와 조화가 ‘반공’과 ‘피의자들에 대한 비호’로 쓰이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두 해가 지나면 3.1 운동이 있었던지도 100년이 된다. 근 1세기 전,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고 바랐던 우리의 조상들은 일제 치하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며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모여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가 1,678만여 명인데 서울에만 50만 명이 모였다고 하니 그 규모는 가히 조선 건국 이래 최대의 인파였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테다.
숭고한 의미를 지닌 그 날의 태극기와 그 날의 조상들의 염원을 퇴색하지 않으려면 지금 광장에 모인 수십만의 ‘태극기 집회’는 태극기를 거두어야 한다. 더 이상 태극기를 잘못된 감옥에 넣어두어선 안 된다.
원문: 고덴의 영화읽기